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대로 둘 수 밖에
[서부 전선 이상 없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날 즈음, 서부 전선의 독일 병사 보이머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깨닫는 바가 있다. 포탄의 폭발로 움푹 파인 구덩이에서 프랑스 병사 한 명을 칼로 찌른다. 피 흘리며 죽어가는 프랑스 병사를 보면서, 그는 문득 깨닫는다. 자신이나 그 프랑스 병사나 똑 같이 평범한 한 사람일 뿐, 목숨을 내놓고 싸울 아무 이유가 없는 사람들일 뿐이란 걸. 그들은 국가 권력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허수아비일 뿐임을 깨닫는다.
휴전 협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오히려 전투는 더욱 치열해진다. 엄청난 폭격,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할 수 없을 치밀한 묘사. 병사들은 전쟁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조금만 더 견디면 이 전쟁도 끝이다. 하지만 이 마지막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허망하게도 보이머는 맹렬한 폭격 속에 죽는다. 그날도 서부 전선에서 전쟁 수뇌부로 전문이 어김없이 전달된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즈음,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의 기세에 퇴각하는 독일군, 그 와중에 그래버는 오랫동안 미루어졌던 휴가를 받게 된다. 그래버는 3주간의 휴가를 보내고 다시 동부 전선으로 돌아와야 한다.
꿈같은 휴가를 기대하고 돌아온 그래버에게 현실은 정말 꿈이었으면 더 좋았을 상황이었다. 그것은 악몽이었다. 집은 연합군의 공습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가족의 행방은 알 수가 없다. 전쟁 수뇌부를 자극하는 어떤 의도나 시도도 나치 친위대를 피하기 어려운, 그런 공포 정치가 자행되고 있었다. 공중에서는 무자비한 폭격이, 땅에서는 살벌한 친위대의 감시의 눈길이. 나치는 자신들의 말로가 점점 가까워 오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며 탐욕스럽게 그 맛을 즐기기 위해 부러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그래버는 학교 동창 엘리자베스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결혼하게 된다. 그가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면 그녀는 군인 연금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머는 결혼이 그녀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꿈같은 며칠을 보낸 후 그래버는 전장으로 복귀해야만 한다.
다시 전장, 그래버는 헛간에 갇힌 독일군에 대항하는 게릴라로 의심받는 농부들을 지키는 임무를 맡는다. 러시아 군의 진격과 독일군의 퇴각, 퇴각 전에 독일군의 친위대 장교가 헛간에 있던 농부들을 사살하려고 한다. 막으려는 그래버와 죽이려는 친위대 장교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고 그래버는 장교를 사살한다. 그리고 헛간의 갇힌 농부를 풀어준다. 도망가던 젊은 농부가 떨어진 총을 들어 그래버를 조준한다. 그래버의 눈에 총구가 점점 또렷해지고 커진다. 총소리를 들을 틈도 없이 무성한 푸른 풀이 그래버를 향해 슬로우 모션으로 다가온다
레마르크의 전작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서도 반전사상이 뚜렷히 나타나 있다. 전쟁의 잔혹성은, 그 무자비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파멸시키는 힘에 있다. 평범한 사람도,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전쟁에 동원되고, 전쟁을 지원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모두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야 만다.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개인의 어쩔 수 없는 모습이 이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전쟁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뭐가 뭔지 아는지 모르는지, 봄이 되니 꽃이 피고 지고, 잿빛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이 또다시 별빛이 찬란한 맑은 하늘이 되고, 인간의 전쟁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다. 인간의 전쟁은 계절의 변화도 바꿀 수가 없다.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인 것을 어쩌나, 전쟁은 자연을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인간에게 있는 자연을 닮은 그 무언가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래버는 죽지만 아마도 엘리자베스의 뱃속에는 생명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자연이 계속되는 것처럼 그리고 삶도 계속될 것이다.
레마르크는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