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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맨 May 15. 2024

3

오독이 풀리는 깨달음의 순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번째 문장부터 나의 오해와 오독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 읽고, 다시 읽는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느끼는 이 순간 나의 오해를 풀어 줄 깨달음을 얻게 된다.


1

첫 문장이다.  

"오랜 시간,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왔다. 때로 촛불이 꺼지자마자 눈이 너무 빨리 감겨 '잠이 드는구나.'라고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그러다 삼십여분이 지나면 잠을 청해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에 잠이 깨곤 했다."


이후 화자는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비몽사몽간에 느꼈던 정서, 그리고 정신을 차린 후의 상념들, 또다시 잠이 들었다 설핏 꾼 꿈, 다시 잠이 깨면서 자신이 잠들었던 수많은 방들을 어둠 속에서 생각해 낸다. 완전히 잠에서 깬 후에는 지나 온 삶을 회상하며 밤의 대부분을 보낸다.




애초에 나는 이 첫 장면부터가 어린 시절 마르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오독이자 오해였다. 이 장면은 마르셀이 어른이 된 후의 풍경이다. 물론 마르셀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그러나 결국 1부 1장은 마르셀이 어른이 되어 이 소설을 쓰게 된 실마리를 얻게 된 때였던 것이다.


어른이 된 마르셀, 어느 날 어머니가 주신 '마들렌 과자 조각이 섞인 홍자 한 모금이 입천장에 닿은 순간', 마르셀은 자신의 속 깊은 심연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을 느낀다. 그것이 무엇일까? 마침내 그는 그 홍차 맛이 어릴 때 레오니 아주머니가 주던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의 맛이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이를 단초로 그는 콩브레에서의 단편적인 기억만이 아니라, 콩브레 마을의 전체 풍경과 그 마을 사람들 모두를 떠 올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 집 정원의 모든 꽃들과 스완 씨 정원의 꽃들이, 비본 냇가의 수련과 선량한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작은 집들과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 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


드디어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기 시작했다. 소설의 첫 부분은 프루스트가 이 소설을 쓰게 된 사건을 소개하기 위한 장면이었다.  


2

마르셀이 잠에서 깨어 회상했던 풍경은 어린 시절 콩브레에서 살던 때의 기억이었다. 함께 살던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의 처제의 에피소드. 빼놓을 없는 인물은 옆집에 살던 스완씨, 그는 사교계의 저명인사이지만 시골 마을의 중산층인 화자의 가족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사이였다.


그리고 그 기억 중 "의지적인 기억, 지성의 기억에 의해 주어진" 것은 단 하나였다. 다른 모든 기억은 어둠 속에 묻혀있고, "마치 콩브레에는 좁은 계단으로 연결된 두 층만이, 단지 저녁 7시만이 존재"했다고 술회한 것처럼 다른 모든 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고, 단지 엄마의 굿나잇 키스와 관련된 사건만이 남아 있는 기억이었다.


스완씨가 화자의 집을 방문할 때면 저녁 늦게까지 대화가 이어지고, 엄마굿나잇 키스를 애닯게 갈망하는 마르셀은 자신의 침실에서 비탄에 젖어 엄마애타게 기다린다. 그날 어찌 된 일인지 아버지는 마르셀의 신경증적인 그런 행동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엄마가 마르셀슬픔을 위로하며 하룻밤을 같이 지내도록 허락해 준다. 그날 밤 엄마는 마르셀침대 옆에 앉아 <프랑수아 샹피>라는 조르주 상드의 소설을 읽어 주시는데, 어머니의 읽어 주시는 그 목소리와 그 행복과 슬픔이 뒤섞인 그 시간을 마르셀은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는 원문을 충실하게 읽는 낭독자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진실한 감정이 느껴지는 작품에 대해서는 원문을 존중하고 소박한 해석을 하며 또 아름답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읽는다는 점에서는 훌륭한 낭독자였다....... 엄마는 그 문장들을 적절한 어조로 공략하기 위해, 문장 이전에 존재하면서 문장을 구술하게 한, 하지만 단어 자체에는 표시되지 않은 따뜻한 억양을 찾아내셨다.


마르셀의 기억은 이것뿐이었다. 더 이상의 기억은 잃어버린 시간일 뿐이었다.


3

그러나 마르셀은 우연히 어린 시절의 완전한 기억을 되찾게 된다.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켈트족의 신앙에 따르면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은 어떤 열등한 존재나 동물, 식물 혹은 무생물 속에 갇혀 있어, 우리가 우연히 나무 곁을 지나가거나, 그 영혼의 감옥인 물건을 손에 넣은 날까지는 우리에게는 잃어버린 존재가 된다. 그라다 그날이 오면 영혼은 전율하고 우리를 부르며,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는 순간 마법이 풀린다고 한다. 우리 덕분에 해방된 영혼은 죽음을 정복하고, 우리와 더불어 살기 위해 돌아온다. 우리 과거도 마찬가지다.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헛된 일이며, 모든 지성의 노력도 불필요하다. 과거는 우리 지성의 영역 밖에,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우리가 전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어떤 물질적 대상 안에 (또는 그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달렸다."


마르셀에게 그 우연이란 바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방아쇠였다. "갑자기 추억이 떠 올랐다. 그 맛은 내가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레오니 아주머니 방으로 아침 인사를 하러 갈 때면, 아주머니가 곧잘 홍차나 보리수차에 적셔서 주던 마들렌 과자 조각의 맛이었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기억은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레오니 아주머니의 방이 있던 회색 집, 그리고 부모님을 위해 지은 작은 별채, 그리고 "그 집과 더불어 온갖 날씨의, 아침부터 저녁때까지의 마을 모습이 떠올랐다. 점식 식사 전에 나를 보내던 광장이며, 심부름하러 가던 거리며, 날씨가 좋은 날이면 지나가곤 하던 오솔길들이 떠올랐다."


이 깨달음의 순간에 문학의 역사는 바뀌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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