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담벼락에 붙어 있는 작은 화단,
누가 돌보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꽃들과 잡풀이 서로 어우러져 피었다 진다.
지난달 심연같이 붉은 장미꽃 질 쯤에 큰 금계국 한 무더기가 바람에 날리며 노랗게 피어 화단을 장식하였더랬다.
그 노란 율동이 스러진 곳에 빨간 개양귀비 세 송이 피었는데, 하나는 시멘트 사이 눈곱만한 흙에 뿌리를 내린 것이었다. 놀란 눈으로 생명의 끈질김에 경탄하며, 한편으론 그 생명이 얼마나 갈지 걱정스러웠는데.
이틀 뒤 문득 그 개양귀비가 생각나 그곳에 가보았더니, 빨간 꽃잎은 흔적도 없고 가느다란 줄기만 고대 문명의 흔적인 양 남아 있었다.
그래도 그 척박한 곳에서 그나마 꽃이라도 피웠으니 됐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자 피워보지 못한 내 인생이 사실은 그나마 꽃을 피운 저 개양귀비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