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온실 수리 보고서> 빌리러 가는 길
여덟 시쯤 되었을 거다.
<걷기 인문학>, <로마 산책> 두 권을 들고 도서관을 나섰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대여하려면 15여 분을 걸어가야 한다. 로마 산책은 아니지만 가을이 잦아 온 밤길을 걸어보면서 가을을 느끼고 싶었다.
황령산 숲이 끝나는 곳, 그 경계에 자리한 덕에 도서관 밖 밤은 가을벌레 소리가 매미 소리와 교대된 공간이었다. 엄청난 소리였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소리, 듣고 싶은 사람에게만 들리는 소리였다.
'남치이 인문학 거리'를 지나 옛 부산 시장 관사였던 '도모 헌'앞을 지났다. 모모스 커피와 제휴를 한 도모헌 카페에서는 뭔가를 '도모'해야만 하는 걸까? 모모스와 도모헌이라, 우연인지는 몰라도 어떤 유사성이 있는 것 같다. 도모헌의 높은 벽을 따라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주택가 길을 걸을 때 멀리서 황령산 부엉이 소리가 들렸다. 가을의 투명한 까만 밤 공간을 지나온 소리는 마치 현재성이 여과된 양 오래 전의 소리처럼 들렸다. 하긴 마지막 부엉이 소리를 들은 것도 참 오래된 일인 것 같다.
약간의 오르막을 걸었다. 의식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벌레 소리처럼 그냥 걸으면 오르막이라고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오르막이다. 이마에 약간의 열기가 느껴지고 미세한 땀방울을 느끼면서 비로소 오르막길이구나 하게 되는 길이다. 주요 도로를 비껴 난 주택가 뒷길이라 차량들의 불빛도 없고 가로등의 불빛은 그리 밝지 않고 그렇다고 캄캄하지도 않은 길. 인적 없는 주택가의 어둑어둑한 밤길은 무섭지는 않았고, 오히려 가을의 서늘한 정취를 풀어내고 있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빌려서 내려오는 길은 가을의 공기가 이마를 식혀주는 길이었다. 창경궁의 대온실을 수리한다는 이야기에서 무슨 인문적 읽을 거리가 있을 것인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번 추석 연휴 때 서울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때 '서울 산책'도 함께 해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