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필치는 왜 투명하고 아름다운가?
죽은 자가 우리를 구할 수 있는가?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이 답하고 싶어 했던 질문이었다. 그 답이 절묘하게 주어졌다. 타이밍이 소름 끼쳤다. 10월 10일 노벨상 발표. 그리고 12월 3일 계엄령 선포. 그 두 달간 죽은 소년은 들리지 않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귀가 아니고 영혼에. 그리고 계엄은 실패했다.
죽은 것이 우리를 구할 수 있는가? <희랍어 시간>은 죽은 언어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소리를 잃은 여자를 이어준다. 안경을 잃어버린 남자는 흐린 눈으로 보이지 않는 여자에게 긴 이야기를 하고, 말을 잃은 여자는 조용히 그 남자를 바라본다. 여자는 가끔씩 몸을 움직인다. 움직일 때 나는 작은 소리가 말한다. '아직 나 여기 있어요. 당신을 말을 듣고 있어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 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눈이 되고 남자는 비가 되어, 침묵과 문장으로 서로 대화한다. 마침내 둘은 하나가 된다. 죽은 것,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고대어 희랍어가 전혀 접점이 없을 것처럼 보였던 두 사람을 하나 되게 만들었다.
한강 작가는 겉모습이 아무리 추하고 혐오스럽더라도 제자리에 있는 것, 또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는 투명한 필치로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