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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자리 바꿈

가을의 문 터

by 아이언맨

배롱나무 가지 끝에 하나 남아 있던 붉은 기운이 스러졌다. 작열하던 백일의 여름을 붉게 타올랐던 열정이 꺼져버렸다. 갈색 낙엽이 길 위에 드문드문 날리기는 하지만 아직 가을색은 여물지 않았다. 은행잎은 여전히 푸르고, 다만 황색 은행열매기 떨어진 자리에는 짓이겨진 꾸렁내가 자국을 남기고 있다. 길가 한쪽에 잡풀 속에 자그맣게 피어난 미국쑥부쟁이가 앙증스럽다. 몸에 와닿는 차가움은 가을임을 강변하지만 아직도 지난 여름의 흔적이 끈끈한 땀에 남아 있다. 이미 10월 중순, 이제 가을의 초입에 들어선 듯하다. 아무 일 없이 가을을 보낼 순 없다. 이 가을의 페이지에 제주도와 지리산의 가을꽃을 책갈피처럼 꽂아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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