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깊고 멀리 있어서,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존재하게 된 것은 너무도 깊고 멀리 있으니,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전도서 7:24)
우리는 왜 무가 아닐까? 어디서 인가 보았던 질문이다.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왜 무가 아닐까?'라는 질문도 가능하다.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런 질문조차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존재는 시작이 있을까? 우리의 우주는 대폭발로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면 그전에는 무였는가? 물리학자들은 시간도 대폭발과 함께 생겨났으니, 그전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물리학자들은 우리 우주는 더 큰 우주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우주의 거품들이 있다고.
스티븐 호킹 박사에 의하면 진공 속의 양자 요동에 의해 대폭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 진공을 '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무'인가? 양자 요동이 존재하는 하나의 장일 텐데, 그리고 그 장을 규정짓는 법칙이 있었을 터인데, 과연 '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과거로 과거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여전히 '존재'가 존재했다. 그 '존재'를 상상하는 것은 끝없는 심연 속으로 빨려드는 것 같은 신비스러움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존재'는 시간적으로 무한히 후퇴하는 영원 속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한히 전진하는 영원 속에도 있을 것이다.
또한 '존재'는 공간적으로 무한한 우주의 공간으로 무한히 뻗쳐나가고, 또한 무한소의 미시 세계로도 깊어진다. 가장 작은 길이 단위인 플랑크 길이, 끈이론에서 말하는 최소끈의 길이는 너무 미소해서 상상하기 어렵다. 원자가 태양계 전체의 크기라고 한다면 플랑크 길이는 바다 해변에 있는 모래 알갱이보다 작은 먼지만 한 크기가 될 것이라 하니, 그 미소함이 엄청나다.
존재는 무한대와 무한소 사이에서 진동하는 그 무엇일 것이다.
"존재하게 된 것은 너무도 깊고 멀리 있어서, 누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전 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