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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소 Jan 09. 2020

#1 출판사. 그 힘든걸 왜?

어쩌다 출판사



나 아무래도 출판사를 차려야 할까 봐?
남편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렇게 쉬우면 아무나 출판사 하지? 
그리고, 요즘 세상에 누가 책을 사기나 해?

그래도,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

......
해봐. 하지 말라고 안 할 사람도 아니고...

그때는 남편도 나도 아무것도 예상치 못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처음에는 그저 책을 내고 싶었다. 

전에 다른 출판사와 몇 번 일을 해보아서 책 쓰기에 대한 경험은 있었다. 최근 강의도 많이 하고, 이 시장에 대한 확신이 들면서 먼저 선점하고자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 빨리 책을 내고 싶었다.

      

출간 기획서를 만들어 메이저 급부터 작은 출판사까지 15곳은 보낸 것 같다. 몇 곳은 정중한 거절을, 몇 곳은 아예 답이 없었다. 출판사만 정해지면 원고는 바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출판사 찾아 헤매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조바심에 목이 탔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연결된 한 출판사. 메일로 기획서를 보내자마자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그날 오후 영등포 타임스퀘어 2층에서 만났다. 1인 출판사로 많지는 않지만 IT 관련 책을 주로 출판하는 출판사였다. 회사도 꽤 오래되었다. IT분야에서 오랜 시간 버티고 있는 것 자체가 인정할 만했고, 다른 무엇보다도 다른 곳에서 관심도 안 갖은 내 기획서에 관심을 가진 첫 번째 출판사라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 인기 없는 사람이 누가 조금만 관심 가지면 고마운 마음에 이성적 판단을 못하는 것과 비슷한 심정이였던 것 같다. 일사천리로 계약을 했고, 그날 저녁 계약금 30만 원이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 그때부터였다.     


원고와 씨름이 시작한 것이. 맘처럼 쉽게 써지지 않았다.

화장실 가기 전과 다녀온 후 마음이 다른 것처럼, 목 타게 계약을 원할 때와 사인한 후는 정말 달랐다. 당장 닥친 강의 준비, 하고 있던 프로젝트들로 할 일이 태산이었고, 무엇보다도 당장 입금이 들어오는 일로 우선순위가 정해지다 보니 딱히 마감이 정해지지 않은 원고는 모든 일에서 후순위로 미뤄졌다. 게다가 출판사에서는 계약금 입금 후 아무런 연락도 없이 3개월이 지났다. 마음은 무거운데 내가 먼저 연락하기도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었다. 그러다 부담감을 못 이긴 내가 먼저 30장 정도의 원고를 보내고 연락했다. 출판사 사장님은 "책은 독촉해야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셨다. 참 맘 좋은 사장님이셨다. 그리고는 보내준 원고의 수정 가이드를 세세히 알려주셨다. 



...... 생각과 달랐다.


출판사 대표님이 알려주신 대로 작업을 하다 보니 의구심이 생겼다. 한글에서 작업을 진행하니 화면 캡처 비율을 가능한 일정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긴 했지만, 


"한글에서 작업요?"

"네, 저는 제가 직접 한글 프로그램에서 디자인 작업을 합니다. 

"이제껏 모든 책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당장 교보서점으로 달려가 계약한 출판사의 책을 살펴보았다.

훨. 대부분 프로그램 코딩에 관한 책들이라, 디자인이 그리 필요하지 않은 책이 대 다수였고, 프로그램 설명서는 캡처된 화면만 간단하게 들어간 심플한 책이였다. 내용은 모르겠지만, 디자인 퀄리티가 낮았다. 너무 낮았다. "내 책은 디자인 제작에 관련된 책인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말을 할 수 도 없어서 벙어리 냉가슴만 앓게 되었다.

결과물에 만족이 안 될 걸 예상하니 원고도 쓰이지 않았고,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또 3개월.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을 직감하였다. 먼저 메일로 정중하게 의사표현을 했고, 전화통화를 하였고, 아쉽다는 말과 함께 계약금만 돌려받게 노라는 말을 이어 들었다.

엄연한 내 쪽에서의 계약 파기인데 계약금만 받겠다니……. 마음 좋은 대표님의 신뢰를 저버린데  많이 죄송했다. 그래서 계약서 상 정해진 위약금까지 입금했다. 


그렇게 한차례 불발 사건이 종료되었다.     



...... 생각이 현실이 되다.


모 CF에 "띵띵 띠 디 딩 생각대로*"가 울려 퍼진 적이 있었다. 경쾌하고, 쉬운 리듬과 음과 문구 덕분에 입속에 계속 맴돌았던 내개는 성공한 CF이었다.

또다시 출판사를 찾아 헤매던 나에게 출강하는 잡지교육원의 부장님께 "그냥 자가 출판해보세요. 요즘은 시스템이 다 되어 있어 출간도 쉽고, 물류관리도 쉬워요." 하셨다.

자가 출판?

말씀하신 분이 잡지 출판을 많이 하셨던 분이라 더 신뢰감이 드는 말이었다.

자가 출판?

그럼, 원고는 내가 쓰고, 디자인은? 외주 주지. 물류는? 그것도 대행업체에 맡기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밥 먹을 때도, 드라마 볼 때도, 화장실에서도 자가 출판에 대한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마치 처음 당구 큐대를 잡은 때처럼, 벽을 봐도, 누워서 천장을 봐도 출판사만 생각났다. 책 만들 생각 하면 흥 분분 되고,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 그것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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