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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소 Feb 09. 2020

별이 진다네.

속초에서 연락이 왔어


자주 만나는 4 커플이 있었다.


남편의 군대 동기 4명과 그의 와이프들. 우리는 참 많이 모여서 놀았었다.

어울리기 쉽지 않은 성격과 취향, 직업들을 가지고 있는데 의외로 케미가 맞아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 모임에서 우리는 여름에는 캠핑을 다니고, 겨울에는 바다에 가고, 스키를 타러 가고, 그 중간중간에는 서로의 집에 모여 놀았다.


그 모임을 이끈 사람은 지방에서 카센터를 하는 이였는데, 사람을 이끄는 은근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고졸임에도, 기름밥을 먹는 카센터의 사장임에도,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았다.

동네에서는 홍반장 같은 사람이었고, 친구들에게는 의리 있고, 항상 모임을 주선하는 리더였다.

두 딸과 와이프에게는 든든한 가장이었다.



카센터는 그에게 너무 작았다.


그는 세상의 새로운 일들에 관심이 많았다. 카센터 한구석에 컴퓨터를 갔다 놓고, 내가 가면 컴퓨터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좁은 카센터에 있기에는 아까운 사람 같았다. 남편의 군대 친구 세명 중, 말이 잘 통하는 친구였다.


그랬던 그가 5년 전쯤 두통이 심해지고,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원인을 찾을 수 없어 일반 내과, 정신과 등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한참만에 종합병원에 갔더니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를 위로하기 위해 또 모였었다. 그는 우리에게 아프면 바로 종합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판정을 받기까지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모두 그가 곧 나을 거라 생각했다.



속초로 떠났다.


밤하늘의 별이 아주 잘 보이는 속초 외곽에 집이 하나 있었다. 노후에 가서 살아보겠다고 만들어 놓은 집이었다. 그 집은 우리가 여름에, 겨울에 놀러 가는 펜션이었다.

그는 치료를 위해 카센터를 팔고 속초로 떠났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보면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그 집은 이제 그의 치료를 위한 요양소가 되었다. 그때 불렀던 노래가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였다.

그곳에 지내면서 그는 세 번의 큰 수술과 항암치료, 재활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가 무척이나 힘들다고 하는데, 힘든 내색 없이 굳건히 치료를 받았다.


그곳에서도 그는 참 열심히였다.

전국을 자전거 트레킹을 하기도 하고, 새벽에 나가는 선장님을 친구로 사궈서 바다낚시를 나가 물고기를 가득 잡아 나눠주기도 했다.

또, 매일매일 운동한다고 설악산을 올랐다. 설악산에는 내국인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놀러 온 외국인 여행자가 많았다고 한다. 그 여행자들하고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영어공부를 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어 회화 실력이 꽤 늘었다. 이젠 프리토킹이 가능하다고 했다.

취미로 여행자 가이드를 하면서 에어비앤비를 시작하고 싶어 했다. 그 일은 거의 시작하기 전이였다.

하지만 그는 조금씩 조금씩 나빠졌다.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연세대 세브란스에 그를 보러 갔을 땐 이미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나를 알아보는 듯했지만, 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그동안은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

하지만, 그 굳어진 몸을 보니 더 이상 억지 희망을 강요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의 와이프가 괜찮다고 나를 위로했다.



그가 떠났다.


남편과 같이 차를 타고 가는 중 환한 하늘에 달이 크게 보였다. 정월대보름이었다.

달이 환하면 별이 잘 안 보인다.

그때 남편이 속초에서 연락이 왔다고 이야기를 했다.


아.

그가 떠났구나.


그동안 그와의 이별을 천천히 준비해 왔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닥치니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

남편도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나 그 마음은 나보다도 더 슬플 것이다.


장례식에 가진 않았다.

가족을 챙겨야 하는 남편의 의지가 강했고, 장거리에, 바이러스까지...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많았다.

마음은 아프고, 미안하지만,

이렇게 글로써 그를 애도하려고 한다.


한 사람으로 태어나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살아온,
꽤 괜찮은 사람이었던 정수 씨.
평온한 곳에서 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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