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elker Jul 22. 2016

내가 사랑한 MMO들. 6

다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1편에서 3편까지에 걸쳐드렸던 말씀들은, MMORPG라는 장르가 플레이어들 간의 커뮤니티에 많이 기대며 또 그게 핵심적인 재미요소로 작용하는 게임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4편에서 소개드렸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반대로 나아갔습니다. MMORPG이면서도 ‘개인화된 경험’을 추구했죠. MMORPG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수년간 이 장르와 뗄래야 뗄 수 없다고 알려져왔던 커뮤니티를 과감하게 축소한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대 성공이었습니다.


물론 와우가 MMORPG로부터 아예 커뮤니티를 거세한 수준은 아닙니다. 기본적인 부분들은 오히려 강화한 측면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매치메이킹시스템이 그러하죠. 이전 세대의 MMORPG에서 파티를 구하고 파티원을 모집하는건 철저히 수동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채팅창을 통해 서로 조건을 견주어 보고 맞는다 싶으면 귓속말을 통해 좀더 자세히 알아본 후 결정하는 식이죠. 그러나 빠른 속도로 스크롤되는 채팅창을 지켜보면서 자기가 필요로 하는 조건을 찾고 남들보다 빠르게 귓속말을 넣는다는건 꽤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와우의매치메이킹 시스템은, 비록 2번째 확장팩부터 적용된 것이긴하지만, 커뮤니티의 불편하고 괴로운 수동 작업을 단순하고 편리한 자동 처리로 바꿔주었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자기가 원하는 자리 또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손쉽게 찾아낼 수 있게 된거죠. 물론 이런 시스템만으로 처리할 수 없는 더 복잡하고 더 까다로운 조건들을 만족시켜야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부분들은 충족시켜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우는 어디까지나 ‘개인화된 경험’을 주된 방향성으로 잡고 가는 게임입니다. 이전 세대의 MMORPG들과 가장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죠. 전세대 MMO들은 커뮤니티를 ‘게임의 핵’으로 잡습니다. 장르 자체가 여기에 기대고 있죠. 그러나 사실 부작용도 많았습니다. 커뮤니티라는게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건데,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나고 즐거운 일들이 많은가 하면, 그게 스트레스를 주거나 안좋은 경험을 증폭시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커뮤니티’를 안고 가는 한, 커뮤니티로부터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와 안좋은 경험’ 자체를 제거하긴 아주 어려웠죠.


그래서 와우가 내린 결론은, 커뮤니티를 게임의 핵이 아닌, 게임을 즐기는데 필요한 부차적인 무언가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게임 자체가 커뮤니티가 아닌 컨텐츠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고, 이를 통해 개인화된 경험을 뒷받침합니다. 커뮤니티는 그 속에서 ‘그 자체로서 목적’이 아니라 ‘게임이 제공하는 재미를 누리는데 필요한 부차적인 무언가’가 되어버리는거죠. 매치메이킹 시스템을 잠시 살펴보자면, 이전의 매치메이킹은 플레이어들이 직접 채팅창을 보며 진행해야하는, 불편하고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건 플레이어들이 ‘스스로, 주도적으로’ 하는 일이 맞습니다. 그러나 와우가 제공하는 자동화된 매치메이킹 시스템은? 시스템이 알아서 해주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여기에 신경 쓸 필요가 없고, 그저 따라 가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서 잠깐, 이게 어떤 시스템의 우열을 말하는게 아님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자전거는 사람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렇기에 사람이 ‘주도한다’라고 말할 수 있죠. 자동차는 연료의 힘으로 나아갑니다. 사람이 직접 힘을 쓰지는 않죠. 따라서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우월한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각기 고유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죠. 저는 게으른 편이라 자전거보다는 자동차가 좋습니다만, 좋은 차가 있어도 자전거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죠.


이 칼럼의 5편에서 저는 커뮤니티를 크게 친목과 기능의 두 가지 관점을 갖는 무엇으로 설명했습니다. 친목과 기능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완전한 커뮤니티로 동작하는 것이죠. 와우에서는 커뮤니티의 친목적 측면이 크게 완화됩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전 MMORPG의 커뮤니티 모델에서 친목이 기능에게 주던 도움은, 친목적 기능이 약화된 와우에서 어떻게 될까요? 그 지점이 바로 매치메이킹이 동작하는 곳입니다. 기능이 친목으로부터 받던 도움은 매치메이킹 시스템 등 여러 요소를 통해 대체되고, 친목의 측면은 이제 완전히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립니다.


결과적으로 와우는 MMORPG 자체를 크게 바꾸어놓았습니다. 이전 세대의 MMORPG에서 게임의 핵이자 없어서는 안될 요소였던 커뮤니티가, 와우에 와서는 ‘부차적인 무언가’로 바뀝니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이 되어버리죠. 그리고 와우의 크고 아름다운 히트에 이어 나온 여러 게임들 모두 이런 방향성을 추종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MMORPG라는 장르 자체에 거대한 변화가 생기게 되구요. 


와우의 출시 초기에서부터 이런 우려들은 많았습니다. MMORPG라는것은 커뮤니티를 포함한 게임 플레이가 매력인 장르인데, 여기서 커뮤니티를 버린다면 장르로서의 MMORPG는 이후에도 존속할 수 있을까? 우리는 와우와는 다른 방향에서 여전히 커뮤니티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임을 만들어야하는게 아닐까? 그러나 이런 이의제기들은 와우가 보여준 거대한 인기 앞에 잘 들리지 않았었죠. 다음 편에서는 그래서, 이런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모색한 와우 이후의 MMORPG들, 그리고 와우가 보여준 방법론을 더 크고 아름답게 개선 계승하려 노력한 MMORPG들에 대해서 소개해보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사랑한 MMO들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