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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ker Oct 28. 2016

데스티니의 아이템 시스템

디아3와 와우 사이

데스티니의 아이템 시스템은 전적으로 훌륭하다거나 전적으로 구리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꽤 특이한건 분명합니다. 그래서 살짝 정리해보려고요. 


1. 라이트 레벨 (템렙, 기어 스코어)


데스티니에는 템렙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Light Level'이라고 불러요. 특이한건, 일반적으로 RPG류 게임에서 템렙이라고 하면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들이 가진 아이템 레벨의 총합 또는 평균이라서, 템렙 자체가 시스템에서 공방을 계산하는 공식에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아이템의 수준을 대표하는 값인거지 그 자체로 어떤 실효성을 갖는 값은 아니라는거죠. 근데 데스티니의 템렙은 실효성을 갖습니다. 아이템 레벨이 5의 배수 단위로 끊어서 효과가 발휘되요. 라이트 390부터 394까지가 묶어서 하나로, 395부터 399까지를 묶어서 하나로 ... 이렇게 처리되는거죠. 


'처리된다'라 함은 즉 공방의 데미지를 계산하는데 있어 템렙은 그 자체로 공식에 들어가서 효과를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템의 수준을 대략적으로 대표하는 값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공방 공식에 적용되는 값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기능합니다. 389에서 390로 넘어가는 순간, 394에서 395로 넘어가는 순간 등이 그렇죠. 그래서 라이트레벨 즉 템렙이라는게 데스티니에서는 다른 게임들에서보다 좀더 중요하고, 템세팅에 있어서 보다 정밀한 계산과 컨트롤을 요구합니다. 


2. 옵션 (스탯+퍽)


한편 데스티니의 아이템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됩니다. 방금 설명드린 라이트 레벨이 한 가지, 두번째는 스탯입니다. 캐릭터는 세 가지 스탯을 가질 수 있습니다. Intellect, Strength, Discipline이 그것입니다. 아이템은 어떤 캐릭터의 스탯에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집니다. 각 스탯은 수퍼(궁극기), 그레네이드, 밀리 특수 공격의 쿨타임을 줄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갑옷류 아이템들은 이 세 가지 스탯 중 두 가지를 갖게 됩니다. 아울러 붙는 양도 랜덤입니다. 100%가 붙으면 그 갑옷이 가질 수 있는 스탯 2가지를 모두 최대치로 가졌다는 의미. 88%라면 100%에 비해서 12% 빠진 스탯을 가진게 되죠. 100%를 구하긴 꽤 어렵기 때문에 보통 90% 중후반이면 만족할만한 수준이 됩니다. (스탯의 퀄리티는 최저가 85%던가? 이기 때문에 ... 쓸만한 아이템 구하는게 크게 어렵지는 않아요) 


세번째는 퍽(Perk)입니다. 특수한 옵션들인데요. 무기별로 재장전 속도를 줄여준다거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탄약의 수를 늘려준다거나, 적을 공격 또는 죽였을 때 그레네이트 쿨타임을 줄여준다거나, 특정 속성의 데미지를 줄여준다거나 등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얘들도 물론 랜덤으로 붙습니다. 단, 부위별로 붙을 수 있는 퍽이 별도로 있어요. 예컨대 그레네이드 사거리 증가 퍽은 팔 부위 갑옷에만 붙을 수 있는 식이죠. 퍽도 물론 랜덤으로 붙습니다. 


자, 여기까지 일단 잠시 정리해보면 데스티니의 아이템은 

(라이트 레벨 + (스탯 + 퍽))

으로 구성됩니다. 옵션은 후자인 스탯 + 퍽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고요. 


3. 인퓨즈와 라이트 레벨업


플레이어들은 아이템을 볼 때 크게 두 가지를 봅니다. 라이트 레벨과 옵션(스탯+퍽). 이 둘을 따로 놓고 볼 수 있는 이유는, 따로 놓고 다룰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게 바로 아이템 합성(infuse)이고요. 한 아이템의 라이트 레벨을 다른 아이템으로 그대로 옮길 수 있습니다. 라이트 레벨을 주는 아이템은 소모됩니다. 받는 아이템은 준 아이템의 라이트 레벨을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일종의 갈아먹이기 ...랑 비슷하다고 보심 됩니다. 모바일 게임의 갈아먹이기만큼 노가다가 극심하진 않지만요.


아이템 파밍은 주로 라이트 레벨 중심으로 하게 됩니다. 이유는 물론, 라이트 레벨의 영향력이 옵션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이죠. 옵션 아무리 잘 맞춰봐야 라이트 레벨이 2단계쯤 (수치로 치면 라이트 10 이상 차이) 높아지면 아무 소용 없어집니다. 다음으로 라이트가 파밍의 중심이 되는 이유는 일단 라이트가 높아지면 나중에 '더 마음에 드는 옵션을 가진 아이템'이 나왔을 때 그 아이템의 라이트를 올리는건 매우 쉽기 때문이죠. 제가 지금 쓰는 아이템 A는 옵션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나마 나아서 쓰는 수준이에요. 그리고 저는 아이템 A의 라이트를 400 (현재 버전 최대치) 까지 올려놓았죠. 그러다 어느날 게임을 하는데 지금 쓰는 것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드는 옵션을 가진 아이템 B가 나왔죠! 대신 B의 라이트는 385로 낮은 편이네요. 그렇다면? A를 B로 인퓨즈하면 됩니다. 그럼 A는 사라지고 B는 마음에 드는 옵션을 가진 라이트 400짜리 아이템으로 거듭나죠.


그래서 ... 지금 당장은 원하는 옵션을 가진 아이템이 나와도 좋고 안나와도 좋아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옵션의 비중은 그렇게까지 높지 않거든요.) 일단 내가 가진 아이템들 중 옵션이 가장 마음에 드는걸 골라서, 여기다가 라이트 높은 아이템을 인퓨즈하는 방식이죠. 어쨌건 라이트 높은게 깡패니까요.


※ 지금까지 설명드린건 갑옷류 장비의 경우이고, 무기의 경우엔 퍽이 꽤 중요하기도 합니다. 무기들은 라이트 레벨과 50:50 정도의 비중을 갖는다고 볼 수 있겠네요. 제가 데스티니 아이템 왕인 이유도 이것과 연관이 있긴한데 중요한건 아니니 일단 넘어가죠. 


4. 파밍속도 조절


지금까지 설명드린 이유로 인해, 파밍의 축은 대체로 라이트 레벨이 됩니다. 즉 플레이어들은 라이트 레벨 최대치 (현재는 400)에 도달하는걸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파밍을 합니다. 여기에 또 특이한게, 라이트 레벨은 점진적으로'만' 올릴 수 있습니다. 한꺼번에 왕창 올리는건 라이트가 완전 낮은 경우가 아니라면 매우 어려워요. 그 이유는, 드랍되는 모든 아이템의 라이트 레벨이 그 아이템을 획득한 캐릭터의 현재 라이트 레벨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그 캐릭터의 현재 라이트 레벨 +-5 사이로만 나와요. 제 라이트가 350이고 제 친구의 라이트가 380이라고 하면, 같은 스트라이크 (인던이라고 보시면 됨)를 함께 돌아도 제가 얻는 아이템의 라이트 레벨은 345 ~ 355 사이, 친구는 375 ~ 385 사이가 되는거죠. 


그리고 이 게임엔 '플레이어들 간의 거래'라는게 아예 없거든요. 소모품이고 뭐고 거래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요. 경매장도 물론 없고요. 자기가 쓸 아이템이나 사용할 소모품은 100% 무조건 자기 손으로 구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고렙이 저렙 데리고 말도 안되는 고렙 인던 돌아서 말도 안되는 초 하이 라이트템을 먹이는게 아예 불가능하죠. 아울러 고렙이 자기가 쓰던 템을 저렙인 친구에게 물려주는 것도 안되구요. 물론 매우 빠르고 쉽게 돌아주는 정도는 가능합니다. (그러니 다들 데스티니 하러 오십쇼 제가 돌봐드림) 


한편 게임 내 피쳐별로 드랍되는 아이템의 최대 라이트 레벨이 정해져 있어서 (영던에서는 라이트 385까지만 드랍, 팩션 보상 및 노멀 레이드는 390까지만, 하드 레이드에서는 400까지 등등) 액티비티의 난이도는 높여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보면 캐주얼한 플레이어들은 라이트 레벨 400을 맞추는게 1차 목표가 됩니다. 여기서 만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구요. 이보다 좀 하드코어한 분들은 스탯을 맞추려 노력합니다. 제한적이나마 자기가 원하는 스탯이 붙은 아이템을 노려봄직한 기회들이 있긴 있으니까요. 그래서 스탯을 매우 높이&자기가 원하는걸로 맞춘 다음에는? 아마도 옵션을 노리겠죠. 근데 사실 옵션은 뭐 ... 플레이어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는데다가 랜덤풀이 너무 커서 이것까지 맞추는 사람은 본 적이 없네요. 이론상으로만 가능하다고 알려진 건곤대나이 심법 7단계 수준 ...


5. 정리


RPG류 게임에서 아이템 에스컬레이션 방식을 제가 편한대로 두 가지로 나눠볼께요. 첫번째는 디아블로3 방식. 여기저기서 랜덤하게 아이템이 떨어지는데, 랜덤풀이 굉장히 넓은 방식이죠. 운이 좋으면 단번에 굉장한 아이템을 먹을 수 있기도 하지만 - 그리고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그걸 보고 게임을 하긴 하지만 -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아요. 난이도가 높으면 좋은 아이템이 드랍될 가능성도 높아지긴 하는데, 여기서 '좋은 아이템'이라는 기준을 잡더라도 여전히 랜덤풀의 크기는 엄청나죠. 고행 난이도를 높여 전설 아이템을 듬뿍 먹는다해도, 전설 아이템이라는 풀 내에 굉장히 많은 숫자의 아이템들이 있으니 여전히 '내가 갖고 싶은 아이템'을 특정해서 갖기란 쉽지 않고요. 물론 몇 번의 확장팩을 거친 지금의 디아3는 여러 가지 보조적 장치들을 통해 기본적인 세트 아이템 정도는 확정적으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어쨌건 근본적으로 디아블로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아이템'을 특정해서 구하기가 쉽지 않죠. 


대신 어떻게든 '지금 가진 아이템들을 조합해서 그럭저럭 쓸만하게 만드는 것'의 방향에선 꽤 의미있는 여러가지가 가능합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몇 가지 템트리로 수렴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 '매우 좋다고 알려진 템트리'로 가는 과정에서는 불가피하게 나에게 주어진 아이템들을 조합해서 어떻게든 더 높은 퍼포먼스를 끌어내려고 노력해야만 하거든요. 


두번째는 와우방식. 도전하는 피쳐에 따라 드랍되는 아이템의 가짓수와 종류가 딱 정해져있습니다. 낮은 난이도부터 높은 난이도까지 점진적으로 난이도를 올려가며 플레이하고, 거기서 나오는 아이템을 갖는거죠. 영던에서 나오는 전사용 템은 뭐고, 티어7 레이드의 몇 번째 네임드는 도적용 에픽 장갑을 주고, 티어8 레이드의 몇 번째 네임드는 흑마의 모자를 주고 ... 이런 식이죠. 문제는 나오는 아이템들이 고정적이라는 것. 즉 '이미 특정된 아이템' 말고는 먹을 수가 없다는게 문제에요. 이 시스템의 장점은 확고한 성장감, 즉 성장했다는 감각을 제공한다는 겁니다. 이전에 쓰던 아이템과 새로 얻은 아이템 사이의 티어는 명확하게 다르고, 여기에서 플레이어들은 강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전투 시스템 등 다양한 다른 요소들과 연계된 문제라 여기서 딱 간단하게 정리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내가 가진 여러 아이템들을 조합하여 나만의 아이템 세팅을 만들어낸다'라는 점에서는 그닥 바람직하진 못해요. 최종트리 아이템을 갖거나, 몇 개가 빠져있거나. 둘 중 하나거든요. 그 사이를 메워주기 위해 세트효과가 8피스 뿐 아니라 2피스 4피스 6피스 등에도 포진하고 있긴 해도 여전히 그건 단계를 세분화한거지 '플레이어가 임의의 아이템들을 조합하여 의외의 효과를 이끌어내는' 활동과는 거리가 좀 있죠. 디아3에서 그런 방식이 굉장히 풍성하고 다양한 플레이 패턴을 제공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데스티니의 아이템 시스템은 둘 사이의 어딘가에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이 선호하는 특정한 장비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게 절대적이진 않죠. 물론 이건 게임의 장르가 다르다는 (총질겜 = 플레이어 손빨을 좀 타기 때문에 장비가 어느정도 뒤쳐지는건 컨트롤로 극복이 가능함) 부분도 감안해야 하지만, 아이템 시스템 자체가 제공하는 측면도 좀 있다고 봅니다. 데스티니는 적당히 안정적인 '성장감'을 제공하면서도 그 사이에서 자기만의 아이템+스킬 조합을 찾아 고민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디아3식과 와우식의 장점을 적절히 섞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여요. 그 노력이 아직까지 완전히 만족할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름대로 발전한 측면이 아닌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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