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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끝 Sep 18. 2022

글에 대한 글

말을 하거나 글 쓰는 순간마다, 저마다의 무게가 실린다. 말글에 담긴 무게는, 내가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영역도 분명 존재한다.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무게가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어서다. 따라서 중요한 건 내가 생각하고 의도하는 말글의 무게가 아니다. 누구도 읽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말글이 아니라면, 접하는 사람에 따라 언제든지 다르게 여겨질 수 있다는 걸 행위에 앞서 전제로 깔아야 한다. 보기 좋게 꾸며진 글이 판치는 세상이다. 쓰는 순간은 적잖은 무게를 담고 글 썼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 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경우가 잦아졌다. 문장에 담긴 함의와 행간을 읽는 일보다, 종이에 비치는 예쁜 글이 대접받고 인정받는 세상이 된 셈이다.


서점에 갈 때마다 그런 제목으로 가득한 신간을 어렵지 않게 접하고는 한다. 레토릭으로 가득한 책들이다. 이따금씩 그런 책이 한가득 진열된 책장을 보고 있노라면, 누가 더 감성적 시각으로 미사여구를 잘 늘어놓는지에 대한 경연대회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책을 펼쳐보면, 낱장에 글보다 여백이 더 많아 시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루는 그런 책을 서점 서 있는 자리에서 15분 만에 다 읽은 적도 있다. 그 책을 보면서 글에 무게가 없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그런 책에 담긴 문장을 공감하며 읽을 자신이 없다. 내가 쓰는 글 또한 이 같은 미사여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나를 위한 글이 필요할 때가 있고, 읽는 사람을 위한 글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문장을 읽는 사람의 관점에서, 글쓴이가 의도하는 무게가 간극 없이 잘 전달될 수 있는, 그런 도서가 늘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최근에 읽기 시작한 <어떤 호소의 말들>,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문장으로 담아낸 점에서 무게감이다르게 느껴졌다. 경험을 통해   있는 문장이 있고, 공감을 통해   있는 글이 있다. 그리고 취재를 통해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작성할  있는 글도 존재한다. 단순히 미사여구로만 쓰인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글쓴이가 통제하고 조절하려는 무게를 오롯이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한계가 있다. 전문적이면서 다양한 경험과 마음으로 일어나는 진정한 공감, 사실에서 진실로 다가서는 취재를 통해 우리는 글의 무게를 느낀다. 글의 무게는, 문장을 접하는 사람이 반드시 읽어야만 느낄  있는 고귀한 영역이다. 책의 무게보다,   속에 담긴 글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 날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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