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즈음 말레이시아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한파가 불어닥치던 서울과 달리 쿠알라룸푸르는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를 보이고 있었다. 더위가 한창인 날씨 속에 쿠알라룸푸르와 페낭, 이포, 다시 쿠알라룸푸르로 이어지는 6일간의 강행군이었지만 힘들단 생각보다 그 속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이 더 많았다. 일종의 자양분으로 작용했던 시간인 셈이다. 무엇보다 이번 출장을 통해 아직도 더 많이 공부하고, 성장해야 할 필요성을 크게 절감했다. 그간 부족한 걸 채워 넣기보다, 좋아하고 잘하는 걸 더 단단히 만드는 데 집중해 왔다. 그게 곧 내가 사는 방식이라고 여겼고 확신해서다.
그런데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았을 때 내가 구축하는 영역은 결국엔 일부분에 불과하단 걸 깨달았다. 이를테면 어떠한 원형 하나를 그려두면 거길 벗어나지 않은 채, 그 안에서만 색을 더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형 속 영역이 계속 진해질지는 몰라도 넓게 옆으로 퍼질 수 없는, 한정적인 공간에 불과하단 걸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새롭고, 특별하고, 다른 것들을 수용할 수 없는 방식에서, 한참을 그렇게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마저 들었다. 부족한 사람이 된 건 아닐까 하는 한탄까지.
적어도 어제보다 달라져야겠다고 다짐했다. 2023년 초겨울 마주한 말레이시아에서의 여름은, 정해져 있는 원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기폭제가 되었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서울은 여전히 매서운 추위를 자랑하고 있었다. 겨울에 마주한 여름 덕분에, 이 계절을 잘 보낼 수 있겠단 기대를 뛰어넘어 다른 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단 확신이 생겼다. 새롭게 들인 마음가짐 덕분에, 더욱 설레는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