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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Jan 10. 2021

7번의 파도가 치는 포르투갈의 마을

바닷가 마을이 들려주는 이야기

일곱 번의 파도를 무사히 넘어오기를,

일곱 번의 바람을 무사히 피해오기를,

약속을 지켜가는 마을이 있다.



나자레 (Nazaré)는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작은 어촌 마을이다. 이른 아침에 출발한 버스에서 살짝 잠이 들었을 무렵 덜컹이는 창가의 진동에 깨어났다. 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이 묘하게 달라졌다. 몇 십 분 전에 슬쩍 실눈을 뜨고 바라봤을 때나 지금이나 창 밖에 뭐 하나 없는 건 마찬가지데, 사람이 사는 마을은 그 느낌이 다르다. 나무가 자라는 모습도, 그 옆으로 이어지는 길도, 이따금 보이는 표지판도, 누군가 살고 있는 마을은 무엇이 없이도 이야기가 새어나온다.



십여 분을 달린 후에 도착한 나자레의 정류장은 고요하다. 버스 역의 혼잡함은 찾아볼 수 없는 고즈넉한 분위기와 어디로 가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사방이 트여있는 곳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면, 저절로 발이 움직인다. 바다 내음이 흘러오는 곳. 바다가 보이지 않아도 코끝으로 찾아가는 곳이라니. 바닷가 마을에 온 것이 실감 난다.






7번의 파도가 치는 마을, 나자레



대개 바다는 파랗다거나 투명하다고 할까. 나자레의 바다는 하얗고 깨끗하다. 그래서 스노우볼로 들어온 기분이랄까. 걷고 있으면 소복이 쌓인 눈이 흩날리고 파도라도 치면 온 마을이 하얗게 덮일 것만 같다.



바다를 따라 이어진 길가로 카페와 식당이 늘어섰고 그 앞으로 소품을 파는 여인들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양말이나 주머니를 만들고 있다. 이건 직접 만든 것이고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를 말없이, 조근조근 들려준다.



민박집도 거리로 나와 있는데, 요즘엔 당연히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올 텐데도 이 마을은 '빈방이 있어요'라는 글씨를 들고서 이렇게 마중을 나와 있는 것이다. 왜 인터넷으로 사진을 올리지 않냐고 하면 "에이, 그런 거로 어떻게 집을 보고 찾아와." 하며 손을 끌고 데려가 집 안 구석구석을 보여줄 듯한 모습은 아무래도 낯설지만, 기대와 영 다르지 않을 집에서 머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있던가. 나자레는 살아가는 모습을 곁에서 보여준다. 견과류를 볶아내고 손수건에 자수를 놓고 석쇠에 굽는 정어리 냄새를 풍기며, 무엇을 먹고 어떻게 일하는지, 하나씩 쓰고 적고 기우며, 손 닿는 거리 가까이에서.



일곱 번의 파도를 넘어서


바람에 치마가 펄럭인다. 내 것이 아닌 그녀들의 치마가 풍성한 물결을 친다. 나자레의 전통의상으로 17세기부터 이곳에서 살아오는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이 옷을 입고 있다. 일곱 겹의 치마는 두툼하게 바람을 막아내며 유연하게 길을 가른다.


@Jonathan_lifepart2.com


파도가 거센 마을이었다. 바닷가 마을 중에서도 파도가 높기로 유명한 곳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가 순탄하지 않았다. 거센 파도가 한 번씩 칠 때마다 그 길은 멀고 아득해졌다. 일곱 번의 파도 끝에 바다가 잠잠해지기를, 일곱 번의 파도를 넘고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을의 여인들은 일곱 겹의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


Cecilia


일곱 개의 언덕으로 불리는 리스본처럼 일곱 번의 파도가 치는 나자레. 일곱이란 마치 실제로 겪어내는 언덕과 파도의 수에 비하면 한참이나 모자랄 테지만, 그것은 결코 숫자의 일곱이 아님을,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요일과 날들을 이르는 말임을 알고 있다면 층층이 흐르는 치맛자락이 끝없이 치는 파도로 보일까.



때로는 돌아올 수 없었다. 끝내 파도에 휩쓸려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그리며 다시 옷을 지었다. 그렇게 검은색 옷을 평생, 입고 살아갔다. 나자레에 오기로 한 이유였다. 어느 잡지에서 본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의 사진과 애도하고 있다는 설명을 읽으며 이곳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이런 마을이 있다면, 그러니까 어떤 기간이 아니라 평생토록 검은색 옷을 입고 살아간다는 마을은, 얼마나의 그리움이 널려있을까. 애틋함을 어떻게 드러내고 위로하며 살아가고 있는걸까.



이별과 상실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채 살아가며, 사실은 앞으로 겪어야 할 것도 두려워 피하고 싶은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 끝내 알고 싶지 않은 것과 그래도 알고 싶은 것들이, 그곳에 있다면.



파도가 쓸어가는 것이 있다면


슬픔이 널려있으리라 생각했다. 고요한 마을은 어둡고 어디서든 부재를 떠올리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이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풍경이 있었다. 마을의 곳곳에서 보여주고 들려가고 나눠가는 이야기가 쓸려오고 밀려왔다. 사사롭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반짝이며 모래사장을 가득하게 채워갔다.



죽음이 가까운 곳은 삶에도 가까웠다. 여름이 있는 마을은 따뜻하지만, 겨울이 있는 마을은 따뜻해지는 방법을 알아갔다. 매서운 추위에 마을은 더 뜨거워졌다. 촛불을 켜두거나 편지를 쓰면서가 아니라 일곱 겹의 치마를 지으며 파도의 안부를 기원했던 이유는, 걷기 위해서였다. 바다에 파도가 칠 때 뭍에도 바람 불지 않았을 리 없다. 기다리며, 살아가야 했다. 육지에 치는 거센 파도를 피하고 넘으며 마을을 지켜갔다.



파도가 멈추기를 바라지 않았다. 파도가 치지 않는 바다는 없다. 고난이 오지 않는 삶 또한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갈 것이므로 부디 이 파도의 끝에, 서로를 만나자고.



닮은 곳이 떠올랐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쏟아지는 물줄기로 추모 공간을 만든 911 메모리얼.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 생각했던 곳은, 기억과 평화가 있었다.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죽음도 끝낼 수는 없었다. 사람이 살았던 의미는 죽는다고 멈추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의 기억으로, 약속으로,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난다면, 이렇게 무수한 약속을, 도전을, 모험을, 그럼에도 사랑을 할 리 없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살아가는 이유처럼.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기약하는 모습이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서로를 기억하고 그 약속을 지켜가는 것이라고, 어쩌면 그것이 삶의 이유이자 전부일 것이라고.


등을 맞대고 있었다, 나자레 해안에서.


“죽음이 생명을 가진 존재가 필연적으로 맞이해야 할 인생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일 때, 그리고 그 상실의 슬픔을 직시하고 의미를 찾고자 할 때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을지 알게 된다. 그것은 삶에 대한 희망이다." - 데이비드 케슬러 <의미수업>


어떤 경험이 끝나고 어떤 존재가 멀어져도, 나의 삶에서 떠났다고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여기에 남아 내가 되고, 기억이 되고 때로는 꿈도 되었다. 모든 부재가 실제로 있었음을 증명하는 나로서,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토록 평범한 풍경이 보여주는 것


수건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장식품보다는 매일 쓰고 닳아갈 수건이 이 마을과 어울릴 것이다. 내 또래로 보이는 여성은 직접 수를 놓은 것이라며 다른 수건을 꺼내어 보여주고, 그중 하나를 고르며 실은 아직도 궁금했던 것을 묻자 그녀가 대답한다.


"우리같이 젊은 사람들은 전통의상을 입지 않지만 오래 살아왔던 사람들은 아직도 많이 입고 있어요. 남편이 돌아오길 바라며 7겹으로 된 치마를 입었는데, 아 당신이 물어봤던 검은색 치마는 맞아요. 전부 사별한 이들이고 평생 입는 거죠."


그녀의 설명이 끝난 후, 귓가를 스친 그 단어를 빼내어 "Forever?" 되묻자 그녀는 빙긋 웃으며 말한다. "Yes, Forever." 순간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보고 한국 사람은 처음 본다며 그곳은 얼마나 머냐고, 그리고 괜찮냐며 물어오는 그녀에게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하얀색 모래보다 검은색 눈망울이 빛나던 마을에서 나는 괜찮다고 여러 번, 말해야 했다.



“파도가 높은 마을은
파도를 타는 마을이 되었다.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세계에서 가장 높고 거친 파도가 치는 마을은 세계적인 서핑의 명소가 되었다. 깊이가 5,000m에 이르는 해저 협곡은 파도의 높이를 증폭시켜 전문적인 서핑 애호가들이 찾아오고, 이런 어마어마한 광경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도 모여든다.


Felipe


넓고 기다란 해안에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에 새로운 기록이 새겨지고 있다. 그렇게 조용했던 마을에 생기가 돌고 비워지던 방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Gil Ribeiro


아, 파도를 넘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자레는 무엇이라 말할까. 여섯 번째 파도에 배가 부서진다고 해도, 일곱 번째 파도를 탈 수 있다고. 파도를 타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기에, 그러니 부디 계속 살아가자고. 서로의 삶을 서로의 파도로, 넘어가자고 할까.


Jan vT


정어리 굽는 냄새에 못 이겨 들어간 식당에서 따끈한 밥을 먹었다.


작게 소란한 마을을 걸으며 하룻밤 묶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리스본의 집에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집이 있다. 저녁을 먹기 전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위해 파스타를 만들어 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녁이 오기 전에 나의 나자레로 떠나는 버스를 탔다.



조근조근 사는 풍경을 보여주는 마을이 있다.

바닷가에 널려있는 그물과 

모래사장의 반짝거리는 알갱이가

평범하게 아름다운 곳, 나자레(Nazar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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