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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Feb 16. 2021

정말이지, 파리란!

마음에 안드는 도시에 대한 얘기


파리에서 화려하게 지낸다는 것이 소설처럼 비현실적이라면, 이런 작은 방에서라면 내게 꼭 맞는 에세이같았다. 파리가 배경인, 불평하고 투덜대는 그 에세이들도 마음에 꼭 들었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고 내가 걸어가야 장면이 되는, 파리가 되었다.



첫 에어비앤비는 파리였다. 언젠가 파리에 가게 된다면 작은 집에서 머물기를 꿈꿨는데, 깔끔한 호텔이나 친절한 민박보다 그저 평범한 파리의 집이기를 바랐다. 작은 창문 너머로는 일상의 거리가 펼쳐지고 주방에서 간단한 요리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었다.


내 또래 여자의 집이길 바랐는데,  나와 비슷하고도 다른 취향은 마치 친구의 집에서 지내는 것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치 이 도시에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온 것 처럼, 잠시 빌려 머무는 것처럼. 그래서 언젠가 이 여행이 끝나도 언제도 다시 올 수 있을 것처럼.


수건을 걸치고 소품을 올려두고 빈 곳에 들어가 앉으면 된다


그렇게 마레 지구의 작은 집을 얻었는데, 여행의 첫 집으로 꽤나 흡족했다. 카페, 서점, 화랑들이 늘어선 거리의 작은 집, 6층 꼭대기 방은 화려하지 않아서 지극히 현실적이었으니까.


적당히 작고 조금은 불편한 집은 마치 파리라는 도시에서 처음 얻게된 집 같이 느껴졌다. 크기나 모양과 상관없이 맘껏 사랑했던, 나의 첫 집- 그 작은 방이 떠오르기도 했다. 만약 그런 경험이 없다고 해도 상상하는 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내 공간, 이라는 이유로  하나도 작지 않고 전혀 부족하지 않아지는. 아니 사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지켜야했던 작은 존재들처럼.


물론 꽤 낡았지만, 이런 낡음은 이런 시절에 지극히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해버렸다.


게다가 새것이 아닌 어제도 쓰던 것들은 꽤 자연스럽게 보였다. 하나 하나 뜯어보면 어울리지 않지만 전체로 보면 오히려 잘 어울리나 싶기도 하거니와, 소품과 가구라기에는 하나의 방으로 존재하는 곳은 나의 일상과도 데면데면하지 않고, 까다롭지 않게 어우러졌다.


이건, 그러니까 그 다음 여행에서의 파리 에어비앤비. 내 또래 여자의 집에서 함께 머물렀다.


호텔이 아닌 방은 슥- 보면 알 수 없다. 여기 저기 허리를 굽혀가며 찬찬히 둘러봐야만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꽤 재미있는데, 방의 구석구석에 놓인 서랍장과 이렇게나 자그마한 공간엔 무엇이 들어갈까 고민하게 되는 상자안에 실삔 몇 개와 고무줄을 채워넣고 나서 느끼는 만족감이라거나 바닥의 어느 부분은 밟으면 삐걱거려 으레 그곳을 피해가는 과정이랄까.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집을 알아가고 적응을 해간다는 기분이었는데, 내 집이 되면 으레 그렇지 않던가. 수도를 트는 방향이 다르거나 이음새가 조금 뻑뻑하다거나, 형광등이 켜 질 때 몇번씩 깜빡인다거나 새벽녘에 라디에이터가 한번씩 멈춰서 도톰한 담요를 이층 침대에 걸쳐두는 것처럼. 어떤 불편함이 집의 특징이 되어버릴 때, 그저 원래 그렇다고 이해하게 될 때, 신기하게도 괜찮아졌다. 어떤 불편한 일이 생겨도 괜찮을 것 같달까. 정말로 그래졌다.





무엇보다 해 질 녘, 파리가 내다 보이는것이 아니라 마레 지구의 저녁 풍경이 비춰지는 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해가 비스듬히 걸리는 시간에 차분해지는 거리 소리와 어디선가 풍겨오는 음식 냄새. 저녁 장을 보며 처음으로 와인을 샀던 것도 그 때였다. 첫 유럽 여행은 낯설었고 혼자 하는 여행은 더 외로웠지만, 파리였고, 내 작은 방이 있었고, 창문을 열면 거리의 날 것 그대로인 소리가 들어왔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안녕, 나는 오늘 와인을 마실거에요.


새벽엔 추워서 한번씩 잠에서 깨며 담요를 끌어올리는 것도 정말로 괜찮아졌다.

정말이지 파리란, 하며 혀를 차면서.


여러번 깼던 밤. 맨투맨 티셔츠를 두 개나 겹쳐입어도 추웠다.


1층으로 내려가는 길은 봉주-를 말하는 시간이다.


그 때 알았다. 집이 생긴다는 건 이웃도 생긴다는 것을. 6층 꼭대기에서 빙그르르 돌아 내려갈 때, "봉주-" 건네오던 인사와 서로의 장바구니를 보며 맛있게 먹으라는 당연한 일상은 이 여행에서 가장 다정한 현실이 되었다.




마레지구에는 1층은 브런치 가게인 어느 건물이 있다. 간판은 없고 주소만 있는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간다. 오래된 나무 계단을 타고 빙그르르 펼쳐 내려오는 카페트를 밟고 맨 꼭대기 6층으로 올라간다. 옴폭 패인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고 힘을 주어 돌리면, 작지만 충분한 방이 나온다.




모든 것이 완벽한 공간이 아니라 서로가 있어야 완벽해지는 공간은 나 역시 이 집에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래서였을까. 완벽해 보였던 도시가 빈 틈을 꽤 많이 보여도 으레 그러려니, 이해하기 되어버렸다. 짓궂은 날씨든 지저분한 거리든 불친절한 무엇이든, 그럼에도 내 공간을 지켜가야 했고 내 여행을 사랑해야 했으니까.


이토록 완벽한 파리에서 하여 파리란, 을 내뱉으며 나는 더 수다스럽게 그 도시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것이 파리를 좋아하게 된, 이유 그리고 시작이었을까?



정말이지, 파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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