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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May 19. 2021

보이지 않는 문제를 푸는 서점, 오픈북스


보이지 않는 문제를 풀어가면, 
오픈북스     


시카고 거리에는 눈에 띄는 문제들이 있다. 그러나 눈에 띄지 않는 문제도 있다. 대화를 하고 있지만 통하지 않는 것, 생각을 전하지만 공감은 안 되는 것. 그래서 갈등이 생기고 단절되어 가는 것. 보이지 않는 문제를 읽어내면 보이지 않던 꿈도 이뤄갈 수 있을까. 오픈북스가 눈에 보이는 문제로 적어가자, 함께 답을 풀기 위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밤에 도착한 서점. 앞에 보이는 귀여운 글씨 Open Books!


오픈북스첫 장을 열다

2006년, 오픈북스의 창립자 스테이시(Stacy Ratner)는 시카고 성인 거주자의 53% 이상이 문해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해는 문맹과 다르다. 글씨는 읽을 수 있지만 복잡한 정보나 숨겨진 뜻을 파악하는 능력을 문해라고 한다. 우리나라 성인 5명 가운데 1명도 문장이 길어지거나 은유, 수치, 도표, 전문 용어가 있으면 문맥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서점의 입구도 귀엽다(!)


스테이시는 오늘날 직면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문해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주제를 짚어내고 읽어내는 능력을 높인다면, 이해의 범위도 넓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로스쿨과 경영 대학원을 졸업한 후 다양한 스타트업의 기획과 자문 경험을 쌓고 있던 그녀는, 도시의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공간을 설립하기로 한다. 오픈북스(OpenBooks)의 시작이었다.     


책으로 세상을 읽으며, 문해로써 이해를 넓혀가는 곳. 오픈북스는 서점이라는 명사가 아닌 서점을 수식하고 강조하는 부사에 가까운 모습으로 출발했다.     

 

스테이시는 자신이 살고 있던 집의 지하실에서 서점의 문을 열었다. 우선 사람들에게 책을 기증받는 것이 중요했다. 이 도시에서 책이 필요한 공간과 독서 문화가 필요한 이유를 알리며, 3개월 만에 5만여 권에 달하는 책을 모을 수 있었다. 곧바로 온라인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문해력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오픈북스의 가치에 동참할 사람을 모집했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수백 명의 어린이와 성인들이 독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시민들이 보내준 한 권의 책이 시민들에게 필요한 한 칸의 공간을 만들어갔다. 조금씩 변화가 시작됐다. 2009년, 오픈북스는 현재의 River North 지역에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책을 읽는 곳

올해로 15년이 된 오픈북스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독서를 좋아하도록 돕는다'라는 사명 아래 시카고 최초의 문해력 지원 및 비영리 서점의 역할을 공고히 해내고 있다. 고전, 동화, 외국어, 철학, 음악, 공상과학과 판타지 분야에 이르기까지 책들의 주제도 풍부하다. 이와 연결된 독서 프로그램 또한 다양하지만, 딱 하나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든.     



어디서든 책을 읽는 서점

서점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서점 내 어디서든 편안히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배치하고 아늑한 조명을 켜두었다. 서점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학교, 사회 기관, 비영리 단체 등에 정기적으로 책을 제공하고 있으며 그 수는 점차 증가해 현재는 1년에 10만여 권이 넘는 책을 기증하고 있다.


이처럼 시카고 시민이라면 누구나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은 어린이에게 더 각별하다. 서점의 'Free Books' 코너는 아이를 위한 동화책을 무료로 가져가게 하고, 영유아를 위한 책은 직접 집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어린이 보호 단체와 협력해, 소득과 관계없이 출생 직후부터 다섯 살까지의 가정은 한 달에 한 권씩 총 60권에 이르는 책을 배송해주고 있다. 물론 동화책의 주제와 품질은 무료나 기증보다 선물이라는 단어에 더 적합하다.     



누구 와든 책을 읽는 서점

서점은 서로의 목소리로 책을 읽을 수 있게 한다.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 중에서, 오픈북스 버디는 성인과 어린이가 일대일로 함께 독서를 하는 것이다. 두 명이 함께 30분 동안 낭독을 하는데, 단지 소리를 내 읽는 것이 아니라 한 명씩 말하고 들으며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 독서보다 대화로 불리는 시간은, 말이 아닌 서로의 언어를 읽으며 공감을 나누게끔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영어를 포함해 폴란드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 시카고 지역이 사용하는 언어 종류를 반영해 제공되며, 성인들은 자원봉사자로서 기꺼이 즐겁게 참여한다.     



내가 쓴 책을 읽는 서점

서점은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쓸 수 있게 한다. 일명 '읽고 쓰기'는 청소년들이 특정한 장르의 책을 읽고 토론을 한 다음 직접 글을 쓰고, 서점에서 출판까지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때 책의 디자인과 출판 과정에 대해 직원들과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출간된 모든 작품은 서점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출품된다. 스스로 쓴 글이 책이 되고 작품이 되며 모두가 읽는 이야기가 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책장을 넘기는 단순한 과정이 서점에서는 특별한 행위가 된다. 나의 시선을 따라, 타인의 목소리를 타고, 서로의 글씨로 적혀가며, 이해하고 싶어지는 이야기가 되어간다.     


서점은 밝은 분위기다. 이는 조명이 아닌 색감 때문이다. 무지개색 선반이 낮고 길게 이어지는 덕에 전체 공간이 경쾌해진다. 곳곳의 이야기도 눈길을 끄는데, 이를테면 책장으로 만들어진 트리나 손글씨로 적힌 안내문, 그리고 서가 위치와 서점 지도 또한 색연필로 그려져 무엇이든 멈춰서 읽게 만드는 것이다. 조금은 흐뭇한 표정을 짓게 하고서는.     




그러나 이 서점이 특별하다는 것은 이러한 풍경보다 서점에서 나누는 대화로 파악할 수 있다. 서점에 머물렀던 한 시간 남짓, 가장 많이 들었던 대화는 책을 찾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책을 기부하고 싶다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프로그램에 관한 질문도 함께.      



남다른 서점은 책 또한 그렇다. 서점 입구 쪽 커다란 유리창 앞에는 동화책들이 놓여있는데, 평범하지 않은 제목들이다. <Santa's Husband> 낯선 제목의 책을 펼치니 흑인 산타와 그의 백인 남편의 이야기다. 그 옆의 책은 또 어떠한가. <Love My Hair> 흑인 소녀가 곱슬곱슬한 자신의 머리카락을 사랑한다는 내용의 동화와 <I am Human> 실수를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그림책이다. 이런 책들이 눈에 띄기 쉬운 곳에 있으면, 게다가 귀여운 글씨로 추천사가 적혀있으면, 타인을 향한 편견을 낮출 수 있을까. 이미 생겨버린 오해도 풀어갈 수 있을까.     




오픈북스는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을 인정하고 이해하기를 권유한다. 그래서 다양한 환경과 인물이 등장하는 책을 큐레이션하고, 이를 구매하면 지역의 아이들에게 같은 책 묶음이 전달된다.  

   

몇 권의 책을 골라 계산대로 가는 길에 역시나 작고 귀여운 글씨가 보인다. '직접 편지를 써 보세요. 이 봉투에 담아 건넨다면 얼마나 기뻐하겠어요?' 동화 속 장면으로 만들어진 편지 봉투는 같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하나씩 구경을 하다가, 한 명씩 떠올리고야 말았다.     


오픈북스는 연간 10만 권의 책을 기증하고 4천 명의 학생들에게 독서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800명의 자원봉사자와 2만 5천 시간을 함께한다. 그러나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문장도 있다. 오픈북스에서 사 온 편지는 한국의 곳곳에 보내졌고, 동화책은 어린이 도서관에 꽂혔으며, 더 긴 이야기는 지금 여기에 적히고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같이 읽어가길 바라는 서점의 이야기는 이제 당신의 기억으로, 이야기될 것이다.


봉투를 구매하니 만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점에서 사 온 책과 봉투들 :)


칼럼은 국립중앙도서관 <오늘의 도서관> 2021. 05월호에도 읽으실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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