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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Jun 12. 2021

단순한 진심이 있는 존 산도 서점

"서점에는 3만여 권의 책 중2만 9천 5백권이 딱 한권씩이죠."

이곳은 영국이다. 영국 최대의 서점 워터스톤즈, 왕실 인증을 받은 해차드, 아름답기로 유명한 돈트북스를 비롯해 역사적이고 매력적인 서점이 즐비한 도시, 런던.     


이 곳에 특별할 것 없는 서점이 있다. 50여 년의 길지 않은 역사, 크지 않은 규모, 게다가 커피나 휴식 공간도 없고 문구나 엽서도 없는 서점.     


이곳을 두고 알랭드보통은 "지금도 앞으로도, 런던 최고의 서점"이라고 했으며 마놀로블라닉은 "세계 최고의 서점이다. 이곳은 특별한 책을 건네준다."고 했다. 과연 이 서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영국 연극사의 상징 로열 코트 극장, 현대 미술의 메카 사치 갤러리를 비롯한 런던 문화 예술의 중심지 첼시가 유명한 건 내로라 하는 문화 공간들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영국에서 볼 수 없었던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창조와 혁신으로 장르를 새롭게 개척해왔기 때문이다. 예술의 의미를 넓히며 가치를 높여온 온 거리에, 이 서점이 있다.     






수북한 책더미한권의 책


검정색 외관에 하얀색 글씨로 JOHN SANDOE BOOKS라고 적혀있다. 글씨 위로 차곡히 쌓아 올려진 벽돌색은 차분하고, 커튼이 없는 창문은 반듯한 직사각형 모양이다. 눈에 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거리와는 어울리는 모습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분명하게 돋보인다.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밖에서 보던 것 보다 넓고 동시에 좁다. 공간 전체에 쌓아 올려진 책들로, 발 디딜틈 없지만 둘러볼 곳은 꽤나 많기 때문이다.   

  


책은 그야말로 엄청난 양인데, 책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선반과 테이블 위에도 수북히 올려져 있다. 책을 집어 들거나 펼치기 위해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될 정도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방대한 책들이 놓인 모양새가 단정해서 정리가 필요하지 않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어디든 가지런히 쌓여있고, 반듯이 놓여있다.     

역시나 책으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걸으며 슬라이딩 도어-역시 책이 쌓여있다-를 밀면, 뒷 편에 숨겨진 책장을 보게 되는데 그때쯤 알게 된다. 봤던 책이 아니다. 이 서점안에서도 그렇지만, 다른 서점에서 흔하게 봤던 책들이 아니다.     



단순한 열정여전한 목표 


"서점에는 3만여 권의 책이 있습니다. 그중 2만 9천 5백권이 딱 한권뿐이죠." 


평범해 보이는 서점이 유명한 이유다. 서점의 대부분의 책들은 딱 한 권씩 진열되어 있으며, 신간이라거나 베스트셀러도 아니다. 책들은 서점 직원들이 직접 구하고 진열한 것으로, 그들은 말한다. "얼마나 새롭거나 오래됐는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매력적인 이야기인지가 중요하죠."     



서점은 1957년 존 산도가 설립했다. 처음엔 세 개의 판자위에 책을 모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지만, 점차 서가와 책장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규모는 커져갔지만 서점이 추구하던 바는 변하지 않았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좋은 책을 권할 수 있는 것. 그 사명 아래 서점은 고객과 신뢰를 쌓을수 있었다. 훗날 어떻게 유명해질 수 있었냐는 질문에 '그저 입소문'이라고 단순하게 답할 수 있을만큼.     


1989년에 존 산도가 건강의 문제로 서점에서 물러나면서, 1979년과 1986년부터 서점에서 함께 일해온 직원들이(John Wyse Jackson과 Johnny de Falbe) 공동으로 운영을 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서점의 이름은 여전히 같지만, ltd를 붙여 여럿이 운영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점과 함께 일했거나 후원하는 사람들로 구성이 됐으며, 지금은 풀타임 직원들과 파트 타임 직원들로 채워졌다.     



서점은 폭 넓은 주제를 다룬다. 시, 역사, 전기, 고전, 미스터리, 과학, 여행, 예술, 건축, 패션, 사진 및 아동 도서를 아우르고 외국 서적과 스페셜 에디션도 갖추고 있다.  책을 구해오는 방식은 실로 다양하다. 세계의 골동품 상점을 이용하거나 박람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책이 있을만한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이러한 열성으로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고고학 논문을 발견하고, 모스크바에서 비잔틴 유물 목록을 입수하기도 했다.     


이 쯤 되면 서점에서 일을 하는 직원들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이들은 서점에서 하는 일 외에 시, 영화 대본, 구성 편집 등을 하는 작가 혹은 기획자로 관련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데, <런던타운>은 서점의 웹사이트에서 직원들의 통찰력있는 리뷰를 읽어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남다른 서점남과 다른 독자 


서점의 대표적인 서비스는 계절별로 발행되는 카타로그다. 여기에 직원들의 안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타의 상점들이 광고 전단으로 제작하는 것과는 달리, 카타로그에 소개할 책을 특별히 선정하고 독창적인 시각으로 다룬다. 그 목록도 적지 않아 지난 겨울에는 200권 이상의 책을 소개했다. 서점 고객들에게는 새로운 영감의 소재이자, 읽을거리가 풍부한 매거진이 되는 셈이다.   


정기 구독 서비스도 운영하는데, 매월, 격월 또는 분기별 등 원하는 기간과 수량을 정할 수 있다. 서비스에 대한 만족은 물론 높다. 이를 20년간 꾸준히 이용하는 고객이 있을 정도다.     



1995년부터 쿠쿠 프레스(Cuckoo Press)와 함께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해마다 연말을 기념하며 시 컬렉션이나 회고록을 제작하는데, '유명한 작가가 아닌 훌륭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소개되는 책은 1,000부로 출판된다.     


처음 오는 고객들은 이따금 서재와 더 닮은 공간이라는 말을 남긴다. 아마도 특정한 서적을 강조하지 않으며, 별도의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안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책은 그 자체로 동일하게 놓여있을 뿐이다.      


책이 아닌 이유로 강조되지 않으며 어떤 모습으로도 돋보이지 않는다. 강조가 없는 곳은 소외도 없다. 모든 책은 가치가 있고 같지가 않다.     


어느 책부터 봐야할지 모르겠다거나, 별다른 설명이 없어서 불친절하다고 느껴진다면 어느덧 광고에 익숙해졌다는 것일 수도 있다. 빠르게 효율적으로, 아무튼 효과적인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생각이라면 결코 발견할 수 없을지 모른다. 이곳엔 광고를 하는 책은 물론 훌륭한 책도, 많이 읽는 책도 없다. 오직 한 사람에게 발견될 책만 있을 뿐이다. 서점에서 고객은 불완전할 자유를 얻는다. 가장 좋은 책이 아니라 나에게 좋은 책을 선택할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을.     



서점은 좁다. 그래서 책으로 둘러쌓인 길목과 통로에서 누구든 마주치게 된다. 이 공간이 특별해지는 마지막 이유다. 책을 읽고, 찾아가는 사람을 볼 수 있어서다. 누군가 집중을 하며 어떤 일에 정성을 쏟는 모습에 반하듯, 공간의 진심을 읽으며 의미를 발견해 가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것. 단순한 진심을 주고, 또 받는 것. 서점이 아닌 사람이 비로소 돋보이는 과정이다.     



첼시 거리에는 서점이 있다. 

책과 사람이 있는 평범한 곳은 런던에서 가장 특별한 서점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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