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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Apr 19. 2022

인생사진으로 꼽는 단 한 장

누가, 언제, 찍은 사진일까?

인생 책. 인생영화. 인생 드라마. 인생 맛집과 인생 여행지... 가장, 잊지 못할, 기억에 남는- 등의 의미를 가진 '인생'은 실은 책이나 영화보다 인생 그 자체를 드러나게 한다. 내, 인생에서. 꼽는 것들에 대해 말하다 보면 그것들보다 훨씬 더 영화 같고 드라마 같은 인생을 들려주게 된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만약 사진에도 인생을 붙일 수 있다면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어떤 사진을 고르게 될까? 가까운 친구 몇몇에게 ‘인생사진’을 물어봤다. 살아오면서 기억에 제일 남는 한 장의 사진. 내 삶에서 그 한 장만 남긴다면.


"아아, 글쎄 너무 어려운데. 결혼식?
아니야, 딸을 낳던 날인가?"


조잘조잘 설레는 목소리로 인생에서 기억에 남은 순간들을 톡톡 터트려 내다가 말한다.

“아, 벚꽃구경 갔던 날!” 스물 두 살, 벚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캠퍼스를 찾았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이 쉼 없이 흩날리던 날이었다.


“그날 정말로 너무 예뻤어. 온 천지에 꽃 잎들이 날리는데 햇살이 엄청 눈부신 거야. 그날 찍은 사진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잘 나왔는데, 인생사진이면 그걸로 할래. 아, 그 사진들 싸이월드에 있었는데,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음…. 나 있어. 너가 인생사진, 하는 순간 생각났어. 내가 태어나던 날, 나를 찍은 사진이 있거든? 완전 빨갛고 쪼글쪼글한 애가 눈도 못 뜬 사진. 글쎄, 아빠가 찍지 않았을까? 그런 거 있잖아. 아, 이날부터 역사가 시작됐다 이런 거. 그래서 그 사진으로 할래.”


“인생사진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있어. 스위스에서 찍은 사진. 응, 맞아 신혼여행 갔을 때야. 나는 처음으로 해외에 간거였잖아. 스위스에 도착하고 다음 날, 잠을 깊이 못 자서 일찍 깼거든. 혼자 테라스로 나갔는데, 동트기 전에 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산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야. 너무 웅장하다 못해 경이로운 풍경에, 방으로 뛰쳐 들어가서 핸드폰을 갖고 나와서 사진을 찍었거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숨 막혔던 순간이야.”


나도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 세 살 무렵, 할머니 집 마당에서 찍힌 사진이다. 늦겨울에서 초봄 사이, 하얗고 앙증맞은 패딩을 입고 분홍색 부츠를 신고 있는 어린 내 어깨 위로 오빠가 손을 올리고 밝게 웃고 있는 사진. 하나 둘 셋-에 맞춰 능숙히 웃기에 어렸던 나는 눈 동그랗게 뜬 채 손가락 어색하게 조물거리는 모습으로. 나의 도톰한 겨울옷과는 다르게 오빠는 한결 가벼운 스웨터를 입고 있는데, 사진 밖에서도 느껴질 만큼 따사롭고 환한 햇살이 비춰오는, 어느 봄날이다. 훨씬 더 예쁘거나 자연스럽게 나온 사진이 많지만, 그 사진을 꼽는 이유는 시선이 느껴져서다. 작은 내 키에 맞춰 무릎을 바닥에 대고 손 뻗으면 닿을 다정한 거리에서, 틀림없이 활짝 웃고 있는 시선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아빠 옆에서 아이고 잘한다 웃어봐, 하며 박수를 쳤을 할머니도 그 사진에서는 보인다. 사진이 만들어낸 기억인지, 정말로 그랬던 일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이 너무나 생생해서 엄마에게 물어보니 -당연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때 할머니가 있었는지, 이 사진을 아빠가 찍은 게 맞는지도. 그러나 사실을 밝히기위해 (관계자들에게) 더 물어볼 이유는 없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찬찬히, 그 풍경이 보이는 탓이다. 이제는 같이 살았던 날보다 그리워 한 날이 길어지는 까닭에, 하나씩 흐리게 잊혀지는 할머니의 구부정한 허리와 웃는 표정 게다가 손뼉을 치는 소리까지도 사진으로 선명해진다. 그래서 어색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조물락거리면서도 가만히 카메라를 바라봤고, 오빠는 덩달아 웃었고, 그 모습을 담은 아빠가 있었던, 햇살이 따뜻했던 오후였-다.


인생사진. 한 장을 떠올린다면 무엇이 될까? 짧아서 찬란했던 청춘이거나, 어느덧 평범하고 당연해진 날을 감사하게 되는 기억, 또는 인생의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하고 현실이 생경해졌던 몽환적 순간.


인생사진, 그 한 장으로 만날 수 있는 시대와 풍경, 어느 찰나의 순간과 마주침. '인생'을 붙이기 하나도 아쉽지 않은 사진, 혹은 삶의 이야기.


참, 친구들이 말한 사진은 아직도 보지 못했답니다. 벚꽃 사진은 싸이월드에, 태어나던 시절 찍은 사진은 어릴 적 앨범 어딘가에, 그리고 신혼여행 때 찍었다던 그 사진은 외장하드에 있다더군요. 이야기로 더없이 충분해서 사진이 궁금해지지는 않았답니다. 다만 어딘가에는 잘 보관되어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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