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I가 대답할 수 없었던 질문

애초부터 대답이 존재할 수 없는 질문을 하는 법

by 유앤나


AI가 모든 것에 답하는 시대,

질문조차 귀찮아지곤 한다.

키워드만 적당히 나열해서 문장인체 던져놓고 질문으로 잘 알아듣길 바란다.

그렇게 허술한 질문으로 넘쳐나는 대답을 읽으며, 대답의 요약본까지 바란다.



질문하는 시대?
아니, 그전에
...질문이 필요하다
대답이 없는 질문이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및 인지과학 연구자들은, 검색 엔진에 바로 접근하려는 충동이 우리의 인지적 인내(cognitive patience)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 검색 전에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는 그룹이 더 깊이 있는 질문을 만들어냈다는 보고도 있다.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 바로 검색하면, 뇌는 그 질문을 깊게 다듬을 기회를 잃는다. 마치 씨앗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물을 주는 것처럼.


AI는 "무엇을", "어떻게"에는 답할 수 있지만, "왜 나는"에는 답하지 못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AI는 답할 수 있다.

문제는 내가 그 답이 맞는지 틀린 지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답을 판단하지 못한다면, 그다음 질문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사유의 본질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견디는 능력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AI 시대의 위험은 우리가 질문을 견디지 못하고, 첫 번째로 그럴듯한 답에 안주한다는 것이다.

"나는 왜 이 사람이 떠난 뒤에야 소중함을 깨달았을까?"

AI는 말한다. "상실의 심리학적 메커니즘은... 블라블라"


그 대답이 나의 상실을 설명하는가?

내가 모르는데, 어떻게 AI의 답이 맞는지 알 수 있을까?

내가 답을 모를 때, AI의 그럴듯한 답은 생각을 멈추게 한다.

이거였구나. 그래, 아 이런 거였구나.

그렇게 끝낸 대답은, 질문이 아니라 허락과 검토로 이어진다.

AI에게 허락받는 생각, 검토받는 감정이 된다.



AI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해보자



AI가 기술적으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이 아니라 '내가 답을 판단할 수 없으면 물어서는 안 되는 질문'을 해보자.

2018년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토니 와그너(Tony Wagner)는 "미래 인재의 핵심 역량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연쇄시키는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한 질문이 답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질문들로 가지를 뻗어나가는 힘. 좋은 질문은 하나의 답이 아닌, 여러 답과 여러 질문을 부른다.


예를 들어 "나는 왜 이 사람이 떠난 뒤에야 소중함을 깨달았을까?" 이 질문은 하나의 답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질문은 "내가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건가?" → "아니면 소중함을 표현하지 못했던 건가?" → "상실 이후에 느낀 감정은 허전함일까, 죄책감일까, 깨달음일까" →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 어떤 질문은 답이 아니라 질문으로 뻗어나간다. 이것이 AI가 할 수 없는 일이다. AI는 완벽에 가까운 답을 주지만, 삶은 여러 답과 여러 질문이 얽혀있다.


대답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생각을 필요로 한다.

정확히는 생각을 하고 대답을 하는 과정을 겪는, 내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질문을 며칠간 마음에 두고 살아보자. 그리고 그 질문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켜보자. 얼마나 무수한 갈래로 뻗어나갈지, 가지를 치는지, 꽃을 틔울지.


이번 주 실험,

하루에 질문 하나, 그리고 연결되는 대답과 질문을 해보자.

월요일: 요즘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한 순간은 무엇이었나?

화요일: 그 불편함 뒤에 숨어있던 감정들은 무엇이었을까? 두려움, 떠오른 상처, 외로움...

수요일: 이 감정들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최근에 왜 떠올랐을까?

목요일: 의외로 연결되어 있던 경험과 사람들을 떠오르니 어떤가. 그건 얼마나 멀고 가까운 기억이었나.

금요일: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정리하는 법, 잊는 법, 터놓는 법...

토요일: 과거를 잘 흘려보낼 방법중에서 내게 가장 잘 맞았던 것과 새롭게 해보고 싶은 것은.

일요일: 한 주의 질문들을 다시 읽으며, 더 나에게 묻고 싶은 것과 돌봐주고 싶은 감정은.


AI에게 묻기 전에 나에게 묻자.

답이 늦게 오더라도, 그 답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질문이 깊어질수록, 세상은 갑자기 더 많은 의미를 건네줄지 모르니.

가끔은 검색창을 닫고, 질문을 그냥 품고 살아보자.

그때 비로소, 답은 검색이 아니라 나에게서 나올 테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루함이 필요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