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진실을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언어로 번역하는 것
회사가 사과밭이라고 상상해보자.
탐스러운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이제 이 사과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 누구에게 알릴 것인가?
같은 사과지만,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소비자에게, 유통업체에게, 그리고 투자자에게 하는 말은 같을 수 없다. 홍보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같은 사실을 누구의 언어로 번역하느냐.
가장 먼저 소비자에게는 당도와 정성, 그리고 스토리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무엇을 말해야 할까? 당연히 사과 그 자체다. 특품 등급의 당도, 유기농 재배 방식, 청정 지역 원산지. 30년간 이 땅을 지켜온 농부의 이야기. 그리고 경쟁 제품과의 비교. 우리 사과가 왜 더 아삭하고, 더 달고, 더 신선한지.
이 단계에서 홍보는 감성과 신뢰를 만드는 일이다. 소비자는 "왜 이 사과를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원한다. 스토리가 있고, 품질의 근거가 명확하고, 경쟁 제품보다 나은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유통업체에는 시스템, 납품, 그리고 판촉 전략
하지만 대형 마트를 설득해야 한다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진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과의 당도가 아니라 납품 시스템이다. 포장은 어떻게 되는가? 물량은 안정적으로 공급 가능한가? 유통 기한 관리는?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대형 유통사가 이미 우리를 선택했는가? 현백 식품관에 입점했다면 다른 프리미엄 마트도 관심을 갖는다. 레퍼런스가 곧 홍보다.
여기에 더해, 마트 입장에서는 이 사과를 어떻게 판촉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POP 자료는 제공되는가? 시식 행사는 지원 가능한가? 유통업체는 '좋은 사과'가 아니라 '잘 팔릴 사과'를 원한다.
증권시장이라면 규모, 시스템, 그리고 성장 가능성
그렇다면 투자자들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제는 사과 하나하나의 품질이 아니라, 이 사과밭이 얼마나 큰 사업이 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서 수확 시스템은 자동화되어 있는가? 대량 생산이 가능한가? 최근 주요 고객 확보 현황은? 레퍼런스가 쌓이고 있는가?그리고 사과라는 의미가 시장에선 어떤가? 이를테면 사과-DAY가 생길 확률이 있다거나, 전 세계적으로 어떤 도시에서 사과 수입이 늘고 있다거나. 아니면 사과의 영양분이 건강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 논문이 발표된다거나.
특히 증권에서 핵심은 특허와 진입 장벽이다. 바이오·제약 업계로 치면 FDA 승인, 특허 포트폴리오가 그것이다. 하지만 요즘 트렌드를 보면, "이렇게 될 거다!"라는 핑크빛 전망보다는 차라리 "이 시장은 어차피 커질 것이고, 우리는 진입 장벽이 높은 위치에 있다"는 식으로 담담하게 말하는 게 더 효과적이게 보인다.
AI는 이제 흔하다. 기술도 넘친다. 그래서 기술 자체를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앞뒤 상황과 시장 전망만 요약해주는 게 더 나을 때가 많다. 투자자는 사업적 맥락을 원한다.
스트레이트 vs 기획기사: 평범한 소식을 특종으로 만드는 법
그렇다면 보도 방식은 어떻게 선택할까? 모든 소식을 스트레이트 기사로 배포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보통의 스트레이트 기사는 이렇게 끝난다. "○○○사, △△△와 계약 체결!" 팩트 전달이 목적이고, 그것으로 충분할 때도 많다. 하지만 만약 이 소식이 스트레이트로 내기에는 다소 평범하다면? 아니면 이 소식이 가진 의미를 좀 더 깊게 풀어내고 싶다면?
그럴 때는 한 매체에 독점과 기획을 주는 것이 답이다.
스트레이트가 "계약 체결!"로 끝난다면, 기획기사는 "계약 체결, 그래서 이 의미는!"으로 시작한다. 서사가 있고, 맥락이 있고, 전망이 있다. 판이 조금 약해도, 기획으로 풀어내면 더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이 방식으로 더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경험이 여러 번 있다. 다만 한 매체에 단독을 주면 다른 매체와 관계도 고려해야 하므로, 주요 매체에게 골고루 줄 (인터뷰, 기획, 협찬 등) 소스는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2달이 걸린 1면 기사: 접촉과 분석, 그리고 인내
지난주, 회사 기사가 조선일보 1면에 대서특필로 실렸다. 제목이 크게 나왔고, 바로 3면에 기획기사가 이어졌다. 당연히 유료 광고가 아니다. 이 기사를 위해 걸린 시간은 2달이었다. 지면 편성에서 계속 밀렸다. 당연하다. 우리 회사 이슈 외에도 세상에는 매일 수많은 이슈가 터진다. 그래서 부담 주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추가 자료를 보냈다. 미팅도 했다. 기자가 필요로 할 만한 데이터를 미리 준비했고, "혹시 이런 각도는 어떨까요?"라는 제안도 했다.
이 과정은 끊임없는 접촉과 분석이다. 지금 이 매체가 관심 있는 이슈는 무엇인가? 우리 소식을 어떤 프레임에 얹으면 더 설득력 있을까? 기자는 어떤 자료를 추가로 원할까?
결국 답은 자연스럽게 언급하고, 정성을 쏟는 것이다. 재촉하지 않으면서도, 잊히지 않게 하는 것. 그래야 적합한 시기에, 적합하게 이슈가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같은 사과, 다른 이야기
사과는 하나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세 가지 다른 언어로 말해야 한다.
소비자에게는 감성과 품질로, 유통업체에게는 시스템과 레퍼런스로, 투자자에게는 규모와 진입 장벽으로.
홍보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진실을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언어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PR 담당자의 역량이 될 것이다.
오늘 요즘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사과를 팔아야 할까?
사과빼고 사과를 팔아보자.
이걸 사과라고 설명하는 것 말고, 다른 이야기로.
사과를 팔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