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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GIPUB May 08. 2018

[조울증 이야기 #1]

1. 간략한 내 소개와 바램

 먼저 조울증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소개를 먼저 해야겠다.

 난 태어나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물론 내가 기억하는 것은 아니고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 친가 외가의 첫째 손자여서 그랬던 것 같다. 친할아버지께선 내가 태어날 당시 정치인이셨고 당대표가 되셨다. 어렸을 땐 잘 몰랐는데 커서 보니 난 엘리트 집안에 태어난 것 같다. 조부모님과 부모님 모두 명문대를 나오셨다. 만약 내가 조울증에 걸리지 않았다면 나도 자연스럽게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다녔을 것 같다. 조울증에 대해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며 조울증 가진 사람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은 나의 인생을 향해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한국에선 조울증 또는 정신신경계 질환에 대해 수치심을 갖고 있고 가족 중에 이러한 병을 갖고 있다면 병원에 장기간 입원을 시키던지 집안에서만 생활하게끔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난 내가 조울증 환자라는 사실과 조울증이라는 병을 통해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게된 이야기를 하려한다.

 내가 2살 되던 해에 우리 가족은 호주로 가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신학을 어머니께서는 유아교육을 공부하기 위함이었다. 호주로 간 첫 해에 남동생은 태어났고 우리 가족은 내가 6살이 되던 해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즈음 난 한국말에 서툴렀다. 동네 친구들이 나의 어눌한 말투에 놀리기 시작했고 난 그 때부터 영어를 안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당시 나에게 가장 편한 언어를 안쓰니까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제한적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난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유치원을 6개월 다니고 '가나다라'도 못 띤 상태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생 내내 난 반에서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 나의 성격에 변화가 생겼고 난 이제서야 내 본 모습인 외향적인 성격으로 돌아온줄만 알았다. 하지만 중2 여름방학이 지났을 즈음 같이 사시는 친할머니의 권유로 신촌 세브란스 정신과 진단을 받게된다. 나와 대화를 나눈 뒤에 의사 선생님께서는 조울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시며 내가 조울증 초기라고 말씀을 하셨다. 보통 대학생 또는 주부들이 많이 걸리는 병인데 중학생 나이에 걸리는 것은 보기드문 경우라고 하셨다. 난 조울증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그저 남들보다 바이오 리듬의 격차가 큰 것으로만 이해했다. 하지만 첫 판명을 받고 24년이 지난 지금 조울증을 생각하면 조울증은 남들이 생각하는 감정의 기복이 조금 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물론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내가 경험한 조울증은 훨씬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한달간 약을 복용하며 집에서 쉬고 통원 치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의 만류에도 난 학교에 돌아갔다. 내가 몰랐던 사실은 내가 한달간 학교를 쉰 동안 내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라는 소문이 전교에 퍼졌다는 것이다. 그 이후 난 전교 왕따를 경험했다. 내 기억으론 호주에 있을 때엔 행복했었고 불행의 시작은 한국으로 귀국했던 때라는 생각이 나를 휩쌌다. 그래서 부모님께 호주 유학을 가고 싶다고 떼를 썼다. 형편이 유학을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찌어찌해서 난 중3 때 호주 유학을 가게 되었고 대학교 1학년 때까지 호주에서 살았다. 호주에선 학업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지만 약을 복용하지 않고 부모님과도 떨어져 있는 환경에서 생활했다는 것이 참 위험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숙부님 댁과 함께 살았는데 나의 병 때문에 숙부님과 숙모님께서 맘 고생을 적지 않게 하셨다. 한국으로 돌아와 딱히 할 것이 없었는데 지인 감독님의 영상 스튜디오에서 촬영과 편집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28살 되던 해에 음악을 하고 싶어 지방대 실용음악과에 들어가 재즈 색소폰을 전공하였다. 뒤늦게 음악을 시작해 졸업을 하고도 음악 활동을 할 만큼 실력이 되지 않아 영어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33살에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결혼하고 지금은 딸 둘과 아들 하나의 아빠가 되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간단하게 글로 적어 보았는데 조울증과 함께한 내 인생이 24년 되는 것 같다. 지금 38살이니 인생의 2/3를 조울증과 함께한 것 같다. 조울증의 힘든 점들이 정말 많은데 그 중에 몇가지는 내가 밝히지 않으면 남들은 내가 조울증 환자라는 사실을 몰라 나의 행동이나 말들로 인해 오해 받기가 쉽고 이 병에 대해 깊은 이해함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 싶지 않다는 것이다. 또 힘든 점은 조울증이 심할 때엔 조증인 상태가 6개월 동안 지속되고 우울증이 6개월 동안 지속되 나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나도 헷갈리고 주위 사람들도 헷갈린다는 점이다. 언제 완쾌될지 모르는 체, 완쾌 될 수 있는 희망이 없는 상태에 삶을 살아야 하는 점도 힘들다.

 자신이 원해서 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은 없다. 나 또한 그렇다. 조울증 환자로 살며 내 삶을 한탄하며 살고 희망을 버리고 살기 정말 쉽다. 하지만 조울증으로 인한 나의 삶의 어려움을 언제까지나 비관적으로 생각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순 없을 것 같다. 이번 글을 시작으로 앞으로 짬짬히 조울증과 함께 한 나의 삶을 나누고 조울증에 대한 리얼한 경험담과 정보를 이야기 하려 한다. 나의 삶을 오픈함으로 인해 내 삶에 변화가 오길 바라고 나 말고도 이 글을 읽는 조울증에 걸린 친구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도 변화가 생겼음 한다. 마지막으로 조금은 긍정적인 #미투(metoo) 운동인 "나도 조울증 환자입니다"라고 말하는 #미투조울증 운동이 일어나 자신의 조울증이 수치스러운 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닭게 되었음 한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오랫동안 조울증이 걸린 이가 씀.

#미투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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