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대위가 우크라이나 의용군으로 참전하기 위해 출국한 것에 대한 평가가 '관종이 유튜브 수익 벌러 또 다시 관종짓 하러 갔다' 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는 분위기더군요. 이에 따라 수많은 비난과 조롱이 따라 붙고 있는데 저는 이것이 과도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조금 절망스럽기까지 하네요.
저는 그가 그만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려면 최소한 세 가지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모호해야 한다.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도 모두 나름의 정의에 따라 행동하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객관적인 입장에서 선악을 명확히 구별해 내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별다른 대의도 없고 그저 민족주의적이며 제국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미치광이 독재자의 오만한 망상때문에 발발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 무고한 생명이 사라져 가고 있는 상황에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누가 선이고 악인지는 명확합니다.
또한 하나의 중국을 말하며 정당성을 만들기 위한 역사 왜곡을 일삼고 주변국을 흡수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국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 이러한 침략 시도는 반드시 저지되야 하고요.
그것이 3차 대전으로 확전될 것을 우려해 직접적인 군사지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세계 각국이 그 외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러시아를 향한 각종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이유일 것 입니다.
2. 이근과 함께 출국한 대원들이 가진 것이 치기 뿐이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나 의용군에 참전하겠다고 나서는 건 '관종짓'이 맞을 겁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의용군 모집을 요청했고 출국한 이근은 군사 기업 Rockseal의 대표로서 우크라이나 의용군에게 힘이 될 군사 기술과 전투 경험을 갖춘 인물입니다. 공개되진 않았지만 그가 직접 뽑았다는 대원들 역시 그럴테고요
타인의 진짜 속마음이야 알 수 없는거지만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러 간 것을 무조건 '관종짓'으로만 치부할 수 있는 것일까요?
3. 국가의 승인을 받고 공식적인 군인으로 파병되어야 한다.
외교적인 마찰과 그에 따른 국익의 손실을 우려하며 그를 비난하는 이들도 꽤나 있어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참전과 별개로 한국은 러시아를 향한 국제 제재에 이미 동참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러시아가 한국을 '비우호국가'로 지정한 것이 그 인증 마크고요.
물론 국제 제재에 동참하는 것과 군사를 파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이근의 파병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지도 않았고 그렇기에 그에게 별도의 지원을 했을리도 만무합니다.
또한 '다녀와서 처벌받겠다'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역시 완전히 개인으로 참전하는 것임을 인지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그로 인해 러시아와의 외교 마찰이 격해질 여지도 크지 않을 겁니다. 그가 혼자 힘만으로 전세를 극적으로 뒤집어 낼 수 있는 아이언맨 같은 존재도 아니니까요.
그렇기에 저는 이근 대위를 향한 과도한 조롱과 비난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를 향한 기부 인증샷에는 선플만 달리는 상황과 비교하면 더욱이요.
먼 곳 에서 돈이나 물자로 돕는 것은 칭찬을 받는데 현장에 필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현장으로 가서 직접 돕겠다고 나서는 게 이렇게나 욕을 먹는다는 것. 그게 제가 절망감을 느끼는 지점입니다.
전 사람의 생각에도 관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의견을 자주 접하고 특정 생각을 자주 하면 새로운 상황을 마주 했을 때도 평소에 하던 생각과 비슷한 결로 받아들인다고요.
마침 비슷한 포스팅만 올라오는 타임라인과 비슷한 소리만 떠드는 유튜브 추천 동영상 목록에 갇혀 정치 뉴스가 뜰 때 마다 그걸 상대를 처단해야 할 절대악으로 규정할 근거로 삼는 사람들이 도처에 범람하는 대선 시즌이니 별 다른 예는 필요 없겠지요.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유튜브 수익 뽑아먹으려고 거기 가서 관종짓 하지 말고 얼른 돌아오라'로 모이는 것이,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그 관성이 '옳은 일을 위해 진짜 자기 목숨 걸고 싸우러 나서는 사람같은 건 이제 없고, 앞에 나서는 사람들이라곤 결국 전부 자기 이득을 위해 쇼나 하는 쇼맨들일뿐이다'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단 반증으로 느껴집니다.
우리는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요? 비극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타자나 치고 있는 우리가 보일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반응은 모쪼록 그가 무사히 돌아와서 그의 행동이 옳았는지 아닌지 따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 뿐 아닐까요? 의도가 어쨌던 그가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면 그가 지금 있는 곳은 도처에서 총성이 들리고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일테니까요.
물론 우리 생각의 방향을 그렇게 틀어놓은 사례들이 있었다는 건 알지만.. 어제부터 입맛이 영 씁쓸해 간만에 몇 자 적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