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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 Knowledge Oct 20. 2022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라는 속담이, 예전에는 '소 잃고 나서 외양간 고치면 뭐하나'로 읽혔다면, 요즘에는 '소 잃고 나서라도 외양간을 고치려 하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로 읽힌다.

망할 나의 조국은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친다. 전쟁터도 아니고, 일터로 간 사람들이 깔려 죽고 떨어져 죽고 찢겨 죽어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주기적으로 벌어진다.

물론 그럴 때 마다 저마다 말들을 쏟아내어 세상은 잠시 소란스러워지지만, 정말로 외양간을 고쳐 보자고 하는 말은 드물다. 대부분은 그저 알콜중독자가 술을 찾듯, 말 보태기에 중독되어 떠들 뿐이다.

실컷 비장한 듯 떠들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목을 끌만한 다른 일이 벌어지면 그 때는 거기 가서 말 보태기 바쁜 이들을 오래 봤더니 난 이제 그런 말들에 어떤 진심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어쨌든

결국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날들이 계속되다 보니 직관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외양간이 없는 상황을 변하지 않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저런 곳에 돈 벌러 갔다간 죽을 수도 있으니, 저런 곳에 '떨어지지 않도록' 노오력을 하자 하고, 쟤도 진작 노오력 좀 하지 한다. 불매 운동마저 시간 좀 지나고 할인 행사 좀 하면 남양이나 유니클로마냥 없던 일이 될거라고 조소한다.

그가 그런 곳에 일하러 간 게 아닌, 기업이 안전수칙을 뒷전으로 미루고 무리한 작업을 지시한 게 잘못인건데, 고인의 동료 시민으로써 개인이 기업에 대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으로 불매 운동을 택한 것이 비웃음거리로 전락할 일만은 아닌데, 그런 게 세상을 바꾼 역사가 없으니 세간의 비난은 이상한 곳을 향한다.

그러니까 이번에야말로 뭐라도 바꿔야 한다. 기본적인 안전 수칙도 무시하고 작업을 시키다 상해,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자를 한참동안 감옥에 잡아 쳐넣던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란 게 어떻게 해서든지 기업인을 하나라도 더 감옥에 집어 넣겠다는 게 아니라, 니네 안전 관리 똑바로 안하면 깜빵갈 수도 있으니 안전 수칙 잘 지키라는 것인데 조폭들 쫄따구 대신 빵살이 시키듯이, 허수아비 책임자 대신 옥살이 시킬 짱구나 굴리며 이딴 현실을 유지하려 한다면 기업이 휘청거릴만큼 과징금이라도 때려야 한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바꾸나. 거대 여당과 야당은 총선 승리라는 트로피를 누가 들어올리냐를 목표로 서로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하며 정치를 스포츠 마냥 즐기기 바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진보 정당은, 페친을 다 끊어서 잘은 몰라도 곡소리는 존나게 내겠지만 정말 의석을 잡아서 뭘 바꿔 볼 생각이 없는데.

이런 상황에 아무 힘도 없는 글이나 쓰는 게 너무 시간낭비 같고 짜증나서 그냥 술이나 먹고, 게임이나 하고, 축구나 보고, 물고기나 잡고 살다가, 시간 들여 글 쓰고 나서 어떤 짜증이 밀려오더라도 지금의 현실에서 느끼는 이 절망감보다는 날 덜 비참하게 만들 거 같아 몇 자 보탠다. 제발 이번엔 뭐라도 좀 바꿔보자. 외양간이라도 좀 고쳐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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