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헬라어에는 가난을 뜻하는 단어가 '페네스'와 '프토코스'로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페네스'는 저축이 없는 상태. 즉, 하루 벌어 하루 먹어야 하는 수준의 여유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0'인 상태인 것 같다.
반면에 '프토코스'는 '-'인 갈급함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파산을 당해서 빚이 너무 많아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가난의 상태. 자력으로는 살 수가 없고 외부의 도움이 있어야 겨우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절대절명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오늘 말씀에서 사용된 '가난'은 바로 그 '프토코스'라고 한다.
그렇다면 The poor in spirit(심령이 가난한 자)이라는 의미는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나의 절체절명의 영적인 갈급함의 상태를 자각함을 의미할 것이다.
배가 고프면 허기져서 손이 떨려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몸이 아프면 자기 발로 병원을 찾아다닌다.
심지어 지식이 부족함을 느껴도 배움을 찾아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적인 갈급함에 대해서는 인지 자체를 하지 못한다.
때문에, '당신은 죄인입니다'라는 성경의 선포에 많은 사람들이 '내가 뭔죄인이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라고 반응한다.
굳이 크리스천이 아니라 단지 도덕적으로만 민감한 사람도 자신이 도덕적으로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인지를 한다. 하물며 완전한 선인 하나님의 빛 앞에서의 불완전한 인간의 죄성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도 없다.
그런 면에서 영적인 갈급함(The poor in spirit)은 축복 중의 축복이다.
몸에 병이 생긴 사람이 몸의 이상을 자각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죽음밖에 없듯이, 영적인 갈급함을 느낀다는 것은 영적인 공급을 갈급해 하기 시작하는 첫 발자국인 까닭이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편42:1-2)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주님의 영적인 공급에 대해 얼마나 갈급한지를 시편 42편을 통해 노래한다. 이것이 바로 대표적인 축복인 영적인 갈급함이며, 그 결핍감이 지금까지도 인류가 칭송하는 다윗왕이 다윗왕이 된 원동력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영적인 갈급함이 팔복 중 첫 번째 복이며, 그 갈급함을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천국을 이 땅에서는 그 마음에 받고, 죽어서는 사후세계에서 약속받을 것이다.
다음의 예수님의 말씀은 마치 수백 년 전 다윗왕의 시에 대답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같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4)
주님, 영적인 갈급함 자체가 축복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시냇물을 찾지 못해 목마른 사슴처럼, 24/7 영적인 갈급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마셔도 곧 목마른 것에는 구원이 없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예수님이 주시는 물만 바라보게 하소서
5년 뒤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눈을 뜨게 하시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에수님을 결코 앞서지 않고, 예수님의 뒤를 겸손하게 좇아가는 저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조금 더 낮은 자세로 아이들의 눈높이 맞추어 그들을 코칭할 수 있는 부모로서의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