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여덟 가지 복 중의 마지막 복은 '천국이 주어진다'는 복이다. 그러고 보니 첫 번째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어졌던 복도 '천국이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이제 보니 마태복음 5장 1절부터 10절의 8가지 조건에 대해 약속된 복의 개수는 여덟 개가 아닌 일곱 개인 '칠복'인 것 같다.
더불어, 하나님께 위로를 받고, 땅을 기업으로 받고, 하나님의 공급으로 배부르고,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을 대면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을 받을 것이라는 이 6가지 복이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의 첫 번째와 여덟 번째 약속의 구체적인 설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6가지의 복 이상으로 천국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을까.
결국, 이 팔복 산상수훈은 '천국을 소유하는 삶'이라는 한 가지 복에 대한 가르침인 것으로 깨달아진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Blessed are those who are persecuted because of righteousness,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마지막 조건인,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다'의 의미가 무엇일까 묵상해 본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마태복음 23장 35절)
예수님은 아담의 아들 아벨을 의인이라고 칭하셨다.
실낙원 후 하나님은 동생인 아벨의 제사는 기쁘게 받으셨고, 형인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 이에 가인은 아벨을 질투하여 돌로 쳐 죽인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가인과 아벨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 전에 하나님이 가인에게 아래와 같이 직접 말씀하시는 대목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세기 4:7)
하나님이 가인에게 지적하신 문제점은 '너는 지금 낯을 들어 나를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에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던 그 목소리가 중첩된다.
그리고 가인에게 당부하신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섬뜩한 이야기이다. 죄가 항상 내 마음 문 앞에 짐승과 같이 엎드려서 문이 열리면 나를 덮칠 기회만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죄에게 압도당한 인간은 죄책감으로 인해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감히 바라보지 못한다. 아담과 하와도 죄를 지은 직후에 보인 패턴은 숨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도 못하는 죄인의 제사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리 없다. 제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의인'이란, 우리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인 "어려운 종교적 계명들을 정확히 지켜내고, 사회의 불의에 맞서 고결한 의지와 용감함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맞서 싸우는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단지 '양 치는 자'이다가 형에게 살해당하고 역사에서 퇴장한 아벨에 모습에서 그런 이미지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보다 예수님이 '의인'이라 칭하신 아벨의 모습은
하나님을 향해 낯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하나님과 친밀하여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는 사람
그러다 보니 선을 행하고 죄에 압도당하지 않고 죄를 다스리는 사람
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께 끊임없이 낯을 향하여 그분만 바라보고, 그 분과 깊은 친밀감을 유지하며, 그분의 인도하심대로 사는 자에게 사탄, 마귀의 '박해'가 없을 리 없다. 사탄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끊는 것이 목표인 까닭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그 마음에 소유한 이들에게는 박해가 유무가 큰 의미가 없다. 그들은 세상의 박해로부터 이미 자유한 까닭이다.
하나님 앞에서 참된 의인이 되기 원합니다. 아벨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언제나 하나님만 바라보고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지 않는 의인이 되게 하여 주소서.
죄와 시험으로 무너졌던 마음을 주님의 말씀으로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제 마음의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맡겨주신 아이들을 잘 양육하는 일도 실상은 우리 부부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다른 부모들의 모습과 같이 두려움과 욕심에 휩쓸리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이 양육하시는 아이들의 충실한 청지기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