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원한 화자 Aug 11. 2019

화분을 들여다보다

 아내가 일어나지 않은 주말 아침.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는 창가에 둔 화분들을 살펴본다. 이케아에서 사 온 스투키 화분 두 개중 하나는 무럭무럭 자라 대여섯 개의 새끼(?)까지 쳐 분갈이까지 하게 만들었는데, 나머지 하나는 하나둘씩 말라비틀어져서 죽어나가기 시작하더니 여섯 뿌리 중 결국 세뿌리 밖에 남지 않은, 어찌 보면 우리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한 달 전, 왕성하게 새끼를 친 놈 덕에 거실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분갈이를 했다. 시름시름 앓던 뿌리는 뽑아냈고, 어미의 뿌리에 기생하던 새끼들은 하나씩 잘 떼내 독립을 시켰다. 분갈이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또 죽진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이미 ‘난이도 하’의 고무나무 하나를 죽인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요 몇 달간 일 때문에 부모님 집에 머무르고 있던 나는 서울 집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스투키의 안부를 물었다. “뚜끼뚜끼(우리 스투키들의 애칭)는 잘 커? 안 죽었어?”


 걱정과 달리 분갈이했던 화분은 쑥쑥 자라고 있다. 시름시름 앓던 화분에도 드디어 뽀얀 새잎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왕성하게 새끼를 쳤던 금슬이 좋은 화분에도 새잎 하나가 불쑥 올라왔다. 손주 손녀를 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잘 자라 줘서 고맙단 생각이 들더라니. 


 부모님은 물론 나이 드신 분들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면 대개는 해외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그렇지 않으면 손주 손녀 사진, 그리고 아주 높은 확률로 꽃이나 아름다운 식물 사진이다. 그걸 볼 때마다 나는 '그래 꽃이 이쁘긴 한데 이걸 사진으로 찍을 만큼 이쁜가'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엔 부모님 집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큰 소리로 “어머머머”하시며 거실로 달려 나오길래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싶었는데 하시는 말씀이 “행운목에 꽃이 폈어”라는 게 아닌가. 그게 뭐 큰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이제는 시간이 날 때면 집안의 화분을 꼼꼼하게 둘러본다. 아픈덴 없는지, 물을 줘야 되진 않을지, 잎을 들춰보고, 흙을 만져본다. 무럭무럭 자라 새 잎과 뿌리가 돋아나는 걸 보면 신비롭기까지 하다. 주는 건 물 밖에 없는데.


 이렇게 바뀌어가는 시선에서 나도 나이가 먹어감을 느낀다. 관심을 두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고 손길이 간다. 흥미가 떨어진 취향과 관심사들에 쏟은 나의 정성과 시간이 아깝고 아쉬울 때도 있지만 새로운 시선을 갖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뭐라도 읽고, 뭐라도 쓰는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