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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나 Feb 04. 2019

전형적인 연애에 관하여

제발 자기를 글에 쓰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는 한 작가의 아내 이야기를 들었다. 하도 작가가 본인 이야기로 칼럼을 쓰니 아내가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화를 냈단다. 그런데 내 친구들은 내가 물어볼 때마다 흔쾌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글에 써도 좋다고 한다.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낱낱이 밝히거나 상세하게 기록하지 않아서일까? 아무튼 고마운 일이다.

모든 것이 최악이었던 그 사람에게도 딱 하나 고마운 것이 있다. 내게 늘 글을 계속 쓰라고 말해 주었다는 점이다. 글을 쓸 거면 에세이나 칼럼 쪽으로 나가 보라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는 유일하게 나에게 소설 집필을 끊임없이 권유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 글의 소재로 그를 써먹는 것은 꽤 의미가 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허락 없이 글의 소재로 쓰는 것이 묘하게 뿌듯할까, 진저리나게 싫을까? 부디 후자이길 바란다.

나는 좀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내가 기인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평균치에는 머무르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말이다. 고등학교도, 학과도, 키도, 취미도, 진로도 모두 평균은 아니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내가 어릴 때 엄마에게 하소연을 그렇게 밤마다 했다고 한다. 내가 별나서 남자친구가 안 생긴다고. 나는 정말 그랬던 기억이 안 난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남자친구가 없이 살게 될 사람인 줄로만 알았던 건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러려니 하고 살던 어느 날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 해주는 남자가 등장했고 나도 연애라는 걸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뭘 해도 좋은 말만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연애를 하면서 처음 1년간은 그저 신기했고, 어색해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새롭던 나와 달리 그는 능숙했다. 나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나는 비전형적인 나를 선택한 전형적인 그의 비전형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 남들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그 한순간의 치기가 과하게 오래 갔다.

그 치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연애가 그렇게 전형적으로 끝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연애 내내 전형적으로 사귀다가 전형적으로 끝이 났는데도 나는 그 엔딩을 전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끝조차 나에게는 처음이었던 데다가 전형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잘 몰랐기 때문인 것 같다.

연애가 끝났을 때, 처음엔 나를 이렇게 만든 상황을 원망하고, 그 후에는 그렇게 결정한 나를 원망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인을 제공한 그를 원망했다. 다들 겪는 일이라는 게 그렇게 위로가 되지 않을 줄 몰랐다. 생각해 보니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수능을 준비할 때도, 대학을 다니며 학점에 목을 매거나 구직난에 허덕일 때도 다들 하는 거니까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이별조차 혼자 능숙한 걸 보니 그는 뼛속까지 전형적인 사람이었다.

헤어진 후에 늘 듣던 노래, 이미 봤던 영화를 다시 듣고 보는데 다들 어쩌면 이렇게 똑같이 연애하고 이별하나 싶어 웃음이 다 나왔다. 그런데 다들 이렇게 해내는 걸 나만 잘 못하고 있나 싶어서 다시 울적해졌다. 이별 선배인 친구들에게 물었다. 이런 감정이 얼마나 가냐고. 대답은 각기 달랐지만 평균을 잡으면 거의 1년이었다. 이 짓거리를 1년이나 더 해야 한다고? x같다는 표현이 그렇게 잘 어울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전형적이라고 생각했던 그 인간은 1년이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는데도 너무나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x같아졌다.

권태기임을 인정하고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던 때였다. 아무런 의미 없이 주고받아야 하니까 주고받는 허무한 대화를 이어가다가 그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했다. 보나마나 지루한 국산 코미디겠지 생각하고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그가 이야기한 영화는 내가 요 몇달동안이나 개봉을 기다려온, 하지만 그에게 관련해 말 한마디 꺼내본 적 없는 바로 그 영화였다. 나는 그 때 우리가 정말로 헤어질 거란 사실을 알았다.  

역설적이게도 연애를 마무리지으려고 할 때쯤 그에 대해 진짜로 무언가를 알게 된 거였다. 분명히 한 티비 프로그램을 좋아한다고 했었던 것 같았는데 그는 그런 적이 없다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내가 틀린 걸까, 니가 바뀐 걸까. 그런 것을 한 번 물어보지 못하고 헤어졌다. 내가 사실은 그 영화를 보려고 몇 달을 기다려 왔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끊어져가는 관계에선 그런 것을 말할 이유도, 힘도 없었다.

헤어짐을 목전에 두고 그가 싸우기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싸우고 있을 때였다. 그는 소리쳤다. 너 안 이랬잖아? 바뀐건 나뿐만이 아닐 수도 있어. 그는 정말로 그렇게 말했다. 무드라고는 전혀 알지 못하던 그가 헤어질 즈음에 내뱉던 말들이 어쩌면 그렇게 드라마 대사 같던지. 지난 몇 년간 다른 장면에서도 그런 대사들좀 쳐 주지. 나는 드라마 대사같이 오글거리는 말들이 일상 속에서 튀어나오는 걸 좋아했는데. 그가 그렇게 대사에 능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그렇게 헤어질 때가 되니 알아가는 것이 많았다. 누가 사랑이 타이밍이랬어. 사랑은 타이밍이 아니라 그냥 엇갈릴 때 엇갈리는 거였다. 통할 수 있는 때가 그렇게 많았는데도 좀처럼 통하지 않다가 헤어질 때가 되니 공통점이 보였다. 하지만 굳이 그걸 미끼로 다시 관계를 이어나갈 생각은 없었다. 나처럼 비전형적인 사람일 수도 있었는데, 우습게도 내가 전형적인 사람이 되어 헤어졌다.

이제는 내가 별나서 남자친구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연애나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애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기대치는 씨가 말랐고, 연애를 성급히 다시 하고싶지도 않다. 다시 비전형적인 나로 돌아왔다. 조금은 높아진 자존감과 함께. 비전형적인 내가 또다시 누군가와 전형적인 연애를 하게 된다면, 그 땐 조금 더 능숙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에게 고맙지는 않다. 그와의 경험들로부터 글을 쓸 재료들을 얻었다는 것, 그것 하나가 고맙다. 아, 소설 쓰라고 해준 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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