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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나 May 26. 2019

인풋과 아웃풋

무채색의 위로 12


인생은 내가 쏟아 부은 만큼 나오지 않았다. 무언가를 넣으면 무언가가 나온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인생도 인풋에 따라 아웃풋이 나올 거라고 기대했는데, 내가 노력하고 투자한 만큼 결과가 잘 따라주질 않는 것이었다.  


 내가 배려하고 신경써준 만큼 남들에게서 돌아오지 않았고, 내가 밤새가며 공부한 만큼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았으며, 내가 안 먹고 열심히 운동한 만큼 살이 쉽게 빠지지 않았고, 내가 준비한 만큼 원하는 곳에 합격하지 못했다. 죽도록 공부한 과목만 성적이 그대로고, 준비기간 내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과목의 성적만 올랐던 어떤 날엔 너무 허망해서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고 식이요법에 돌입했을 때는 꿈쩍도 않던 체중계의 바늘이 줏대 없이 아무 때나 움직이는 걸 보며 나는 남은 인생 동안에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기로 결심하기도 했다. 춤을 못 추는 내가 몇날 며칠을 꼬박 열심히 연습해서 선보인 절도 넘치는 동작을 보고 ‘흐물거리는 게 꼭 달밤에 체조를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모차르트를 지켜보는 살리에르라도 된 것 마냥 슬펐다.

 ‘이만큼 했으면 이 정도는 나와 주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이 인생의 아웃풋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다. 넣은 만큼 안 나오기도 했지만 안 넣었던 것이 불쑥 나오기도 한다. 기대도 안 했던 것들,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것들, 우연한 만남과 기회들이 그랬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만난 날 버스에서 그냥 내 옆자리에 앉고 싶었다는 친구, 차를 타고 가다 우연히 만난 큰 무지개, 어쩌다보니 지원하게 된 학과, 내가 계획하거나 상상할 수조차 없는 수많은 사람들 간의 이상한 연결고리, 예상할 수 없어 폭소를 유발하는 사건들,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더 멋지게 빛난 하루들. 눈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인생길을 생기 있고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흥미진진한 것들이 곳곳에 도사리며 인생길을 다채롭게 장식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넣은 그대로만 나오는 인생은 얼마나 지루하고 뻔할까. 그러니 모든 것을 일일이 계획하고 집어넣어야 하는 인생이란 얼마나 바쁘고 숨이 막힐까. 아마 모든 것을 통제하기 바빠 길가에 잠시 멈춰서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눈길을 건넬 겨를조차 없지 않을까. 지금까지 겪어온 짧은 인생은 나에게 그것을 알려주었다. 나에게 하루하루란 예상할 수 없으므로 포장을 뜯지 않은 선물이 되어주었고, 인생은 내가 설계한 대로 흘러갈 수 없으므로 흥미진진한 여정이자 두근대는 만남,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 그 자체가 되어주었다.


 로또를 처음으로 샀던 날이 떠오른다. 그 얇은 영수증 같은 종이를 처음으로 손에 쥘 땐 다음 당첨자 발표날을 기다리는 시간들이 그렇게 생동감으로 가득 차게 될 줄은 몰랐었다. 이렇게 이성적인 21세기의 지성인답지 않게 요행을 바라보기도 하고, 뭔가를 운에 맡겨보기도 할 수 있는 건 모두 인생의 아웃풋이 예측 불가능한 덕분이다. 큰 인풋을 넣는다 해도 작은 아웃풋이 나온다니 아주 조그만 인풋으로 큰 아웃풋을 꿈꿔보기도 하는 인생의 스페셜 모먼트랄까, 나는 그런 소소한 기쁨이 좋다. 또 반대로 그게 ‘난 할 만큼 했고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어,’ 와 같은 마인드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이유일 것이다. 어차피 아웃풋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거기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연유로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가끔 로또를 사러 간다. 혹시 내 인생의 아웃풋이 한 건 해서 정말로 큰돈을 받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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