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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나 Dec 17. 2018

9월 11일의 인생

무채색의 위로 6

누군가의 생일이나 역사 속 연도를 암기하는 걸 유독 어려워하는 내가 유일하게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할 수 있는 날짜는 바로 우리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다. 일찍이 수학을 포기할 정도로 숫자에 취약한 내가 내 결혼기념일(아직 생기지도 않았지만)도 아니고 부모님 결혼기념일을 또렷이 기억할 수 있는 건, 그날이 9월 11일이기 때문이다.

 

 9월 11일은 우리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 그러니까 그 외우기 힘든 수많은 특별한 날들 중 하나였다. 또 9월 11일은 정말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날이기도 했다. 2001년, 수많은 누군가들의 생일이나 기념일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기쁜 날에게 모두가 기억하는 또 다른 이름이 생겼던 것이다. 그 테러 이후에서야 나는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9월 11일이 될 때마다 내가 슬퍼해야 하는지 기뻐해야 하는지 종종 헷갈리곤 했다.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날이라니. 나이라는 걸 먹으며 한 해씩 차곡차곡 기억에 쌓아갈수록, 나는 꼭 9월 11일만이 아니라 매일이 그런 날이라는 걸 알아가게 되었다. 삶은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썩 일관적이지 않은 것 같았으나, 기쁨 뒤에 슬픔이 오고 슬픔 뒤에 다시 기쁨이 온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일관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8월의 뜨겁던 열기가 조금씩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청량한 공기가 맴도는 9월이 될 때면 그간 어떤 기쁨과 슬픔이 나를 감싸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겹겹이 쌓여가는 와중에 기쁨과 슬픔이 균등하게 흩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면 참 놀랍고 재미있다. 9월을 맞아 이번에도 마음속으로 그런 정리를 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느닷없이 그랜저가 생각났다.

 

 그랜저는 우리 가족에게 슬픈 이름이었다. 그 자동차 이름이 맞다. 그랜저는 우리 가족이 가장 처음 장만했던 고급 중형차였다. 아직도 부모님이 새 그랜저를 끌고 웃으며 나타나시던 모습이 선하다. 그 때까지 우리는 그랜저를 필두로 하는, 우리의 것이 될 일련의 차 목록을 생각했던 것 같다. 고급 중형차가 고급 대형차가 되고, 고급 대형차가 고급 외제차가 되고, 뭐 그런,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꿔볼 지극히 점진적인 진보의 형태를.

 

 하지만 역시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고 우리의 자동차들은 기대와 달리 반대 방향으로 후퇴해 갔다. 그 시간들은 분명 이 단락에서 한두 줄 정도로 짧게 서술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가족이 꽤 힘든 여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우리의 손이 닿았던 일반적인 성공 혹은 부의 형태는 그랜저가 마지막이었다. 그러니까 그랜저는 우리 가족에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떤 과거의 번영을 상징하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지났고 엄마는 멋지게 트럭을 몰다가도 그랜저를 타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나 역시 그랜저를 타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그건 단순히 그 차에 타고 싶다는 갈망이 아니었다. 아빠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빠는 엄마에게 언젠가 다시 그랜저를 꼭 타게 해주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나는 그게 불가능할거라 생각했다.

 

 얼마 전에 빗길에 트럭을 몰고 오던 아빠가 사고를 당했다. 부상자가 없는 경미한 사고였지만 주행거리가 30만 키로에 다다른 오래된 트럭에게는 치명적인 사고였다. 그리고 그건 우리 가족에게 꽤 치명적인 지출을 의미하기도 했다. 차가 없이는 아무런 생활도 영위할 수 없는 시골인지라 급히 중고차라도 구해야 했다. 운이 좋게 보험금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그 날로 돈을 가지고 중고차를 구하러 나간 아빠는 생각보다 빨리 차를 몰고 돌아왔다. 아빠가 데려온 차를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건 지금은 연식이 꽤 오래된, 우리가 그 때 탔던 그 그랜저였다.

 

 그 때의 그랜저를 되찾았다고 해서 그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모두 없던 일처럼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겪었던 슬픔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랜저를 내 인생에서 다시 탈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하며 우울해하는 날들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피식 웃으며 그랜저를 타게 될 수도 있다. 나에게는 그런 수많은 9월 11일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게 인생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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