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와 친구들
When a man is tired of London, he is tired of life; for there is in London all that life can afford.
- Samuel Johnson
런던에서는 한나의 집에서 묵었다. 한나는 브라이튼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현재는 베이비 시터, 청소 등 4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끔은 전시도 하는 동갑내기 친구이다. 그의 집은 런던 중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Hampstead 역에 위치한 4층 주택이었다. 한나는 패션 디자인을 하는 언니의 방을 나에게 내주었다. 언니는 다른 도시에서 일하고 있었다. 방에는 엔틱 화장대와 침대, 토르소 마네킹이 서있었다. 넓은 주택들이 늘어선 조용한 이 동네는 런던 안에서도 부유한 지역이었다. 근처 Hamptead Heath라는 공원에는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가끔 나와 산책을 한다고도 했다. 한나는 런던의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부모님,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런던도 비싼 부동산 때문에 청년 주거난이 심각한 모양이다. 집은 할머니 소유여서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부모님은 엄청난 상속세를 내야 한다고 했다. 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님은 은퇴 이후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런던 중심가의 다른 부동산을 정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한나 가족은 매년 몽펠리에로 여름휴가를 가는데 올해는 한나 할머니 임종이 가까워 휴가를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한나는 양갈래 머리를 하고 멜빵 바지를 입은, 독특하고 재미있는 친구였다. 그녀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래서 다리 털도 밀지 않고 브래지어도 하지 않았다. 부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몸을 변형시키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알바하는 펍에 새로 생긴 웨이트리스 복장 규정 -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 이 불합리하다며 부모님과 토론을 한다. 회색 머리가 인상적이었던 한나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BBC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하셨다. 그녀가 그런 철학을 가지는데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듯했다.
영화관에서 일하는 한나의 친구 덕분에 티켓 두 장을 구했다. 「Timbuktu (2014)」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지배당한 팀벅투라는 마을에서 평범한 일상을 빼앗겨버린 사람들과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가족의 아버지는 부조리에 저항하다 실수로 살인을 저지르고 법정에 출두한다. 법정이라고 해도 간이 책상에 법관 세 명이 앉아 있고 그 앞에 한쪽에는 피해자 가족, 한쪽에는 피고가 앉아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이 소박한 장면이 주는 메시지는 엄숙했다. 재판관은 피해자 가족에게 피의자를 용서하겠냐고 묻는다. 그러자 피해자의 어머니는 아직 그의 피가 따뜻하다며 “Maybe tomorrow, but not today.”라고 말한다. 피해자 가족의 의사가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그리고 아무리 중대한 범죄라도 용서하는 절차가 주어지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원시적이지만 이게 바로 죄와 인간을 다루는 본질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한나는 소꿉친구 해리의 생일파티에 나를 초대했다. 파티에 가기 전 존과 맥스를 초대해 함께 비빔밥을 해 먹었다. 영화관을 개조해 만든 펍에서 열린 생일파티에는 열댓 명 정도의 남자애들이 있었다. 한나는 그 무리 중에 유일한 여자였다. 존은 베를린 마우어 파크 Mauerpark 마켓에서 두꺼운 가죽잠바를 50유로에 샀다며 자랑했다. 다른 한 친구는 고등학교 사회학 과목에서 만점을 받았었다며 말을 걸었다. 그 친구는 짙은 녹색의 두꺼운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목 부분이 닳아있었고 웃음소리가 바보 같았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사회학자가 ‘위버’라고 그를 아냐며 물어봤는데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는 ‘막스 베버(Max Weber)’를 이야기했던 것 같다. 이젝은 착하고 조용한 스타일이었다. 한나가 자신은 인기가 많았고 이젝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 다닐 땐 별로 친하지 않았다고 놀려도 허허 웃기만 하는 친구였다. 토토는 중국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이었다. 그는 슬쩍 보아도 마초적인 성격으로 대화가 끊기는걸 싫어했다. 자기가 아시아 사람처럼 생겼냐고 물어보더니 느닷없이 지난주에 아빠랑 중국 해군 배를 탔다는 얘기를 밑도 끝도 없이 한다. 근데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젝, 한나와 나는 집으로 향했고 나머지 친구들은 존의 집으로 2차를 하러 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이젝, 한나와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심야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 순간이 너무 소중했다. 한나와 친구들은 내 인생에 다시없을 일주일을 선물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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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브리튼 Tate Britain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며칠 뒤 발표할 교육 불평등에 대한 논문을 읽고 있었다. 문득, 예술은 학문보다 어떤 면에서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학은 몇십 페이지에 걸쳐 설명하고 반복하는 메시지를 예술은 한 장의 그림에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이트 모던 Tate Modern에서는 흰 캔버스 위에 각기 다른 크기의 원 4개가 돋아 있는 작품을 보았다. 제목은 ‘The beginning and the end of everything’이었다. 도대체 이게 왜? 추상적인 현대 미술 작품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이 작품을 이해하긴 어려웠다.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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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스트릿 역 앞에서 기다리는데 어떤 젊은 엄마가 다가와서는 “Where are your shoes from?” 하고 물어본다. 스페인에서 샀다고 하니까 “Thanks. They’re so cute.” 하면서 바람처럼 사라진다. 처음엔 신종 사기인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렇게 가버린 걸 확인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나에겐 무척 어색한 칭찬이 그녀에겐 낯선 사람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습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