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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지나 Jun 14. 2017

실패한 여행을 다시 떠나는 것

실패한 연애를 다시 해보는 것

둘다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으로 이 글을 클릭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후자보다는 그래도 전자가 낫다는 생각이 더 많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역시 그렇다. 뭐든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안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는 주의라 거듭된 실패가 몸서리치게 싫지는 않다. 그렇지만 실패한 연애를 다시 해보는 건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 보면 실패한 여행이란 없다. 즐겁지 않았다고, 고생을 엄청 했다고 해서 그 여행에서 얻는 것이 하나도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 ‘여기는 다시는 오지 않을 거야’라는 다짐은 하게 된다. 성공적인 연애라는 것도, 끝이 나는 연애라면 전부 실패한 연애이기 때문에 굳이 실패라는 말을 앞에 붙이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지만 끝이 나더라도 아름답고 좋은 기억만 남기는 연애도 있을지 모르니까.



드레스덴. 찍을 때는 내내 울상이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고 사진들을 보면 참 예쁜 곳이었다. 

On retrospect it always is. 


여행의 기억이 아주 나쁜 적은 사실 없다. 굳이 다시 가진 않겠다, 라고 생각하는 곳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는 독일이었다. 여행하며 만나는 새로운 모든 것은 일반화하지 말고 그것 그대로 정직하게 받아들이자고 언제나 다짐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우연히 만난 불친절한 호텔 직원, 이보다 더 궂을 수 없었던 매서운 날씨, 사소하게 틀어지는 예약과 스케줄에 서러움이 필요 이상으로 북받쳐 올랐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나는 스물 둘이었으니까. 온 우주가 이 여행을 망치려 하는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첫 독일 여행은 행복하지 않았다. 독일의 여러 도시 중 사실 드레스덴에서만 그렇게 힘이 들었던 것인데, 포도송이에 상한 포도알 하나가 그 날 먹은 포도 맛을 전부 버리는 것처럼 독일 여행 내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 후의 여행에서 나는 조금만 수고하면 넘을 수 있는 독일 국경을 여러 차례 마주했을 때 용기를 내지 못하고 프랑스에서만, 스위스에서만, 오스트리아에서만 머무르다 독일에 등을 돌렸다. 가고 싶은 좋은 곳이 많으니 꼭 가지 않아도 되잖아, 다시 갔다가 더 싫어지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들. 그러다 뮌헨 옆 린다우라는 호숫가 마을을 여행하게 되었다. 친한 친구가 마침 뮌헨 여행을 온다고 하여 최소한의 행복은 보험처럼 들어 놓고 갈 수 있었다. 이 작은 마을 여행은 무척 행복해, 세 밤만에 마음이 풀어졌다. 특별히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린다우는 그저 평소의 린다우답게 굴었을 뿐인데 마치 독일이 화해의 손길이라도 내밀어 준 것처럼 고맙게 느껴졌다. 


린다우 Lindau


여행지는 땅과 하늘과 물과 건물이고 여행자는 사람이니 양방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아도 분명 여행지가 여행자에게, 여행자가 여행지에게 전달하는 에너지와 메시지는 있다. 싱겁지만 꽁했던 것이 풀어지는데 나름 몇 년이 걸렸기 때문에, 실패한 여행지를 다시 찾아가 성공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실패한 연애는?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면 같은 이유로 또 헤어진다고 하는데, 그것도 그렇지만 차라리 덮고 지나갔으면 추억이라도 아련히 남았을 것을, ‘어렸을 때 내가 남자보는 눈이 정말 없었구나’라는 깨달음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기에 후회가 된다. 서로 다른 사람이 되어 이제는 어울리지 않아, 가 아니라 한 쪽은 원래 같은 사람이었는데 다른 한 사람이 그 모습을 알아보기까지 너무나 오래 걸렸다는 허무함.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기에 약간의 충격도. 어떻게라도 착각 속에 머물러 보려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은 씁쓸했다. 사실 드레스덴에서 속상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머리로 이해가 되는것을 가슴으로 느낄 때 마음이 아픈 적은 없었다. 그 둘이 합의를 보지 못할 때가 고통스러운 것이지 납득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변명 하거나 토달지 않는다. 


오랫동안 무언가에 매달렸다가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에 익숙하다. 하고싶은 일에 있어서는 특히. 얼른 열심히 도전해 보고, 될 때까지 도전해 보고, 끝까지 도전해보고, 정 안되면 털고 일어났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옆에서 지켜보았던 가까운 사람들은 그 시간을 아까워했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아깝지가 않다. 충분히 즐거운 과정이었고 남는 것이 나름 있었으며 접어야 할 때 접었던 것이 좋은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유일하게 살면서 여태까지 아까운 것이 지난 연애에 투자한 시간이었다. 다행히 나는 잊어야 할 것, 쓸데 없는 것은 빨리 지운다.


친구가 찍어 준, 좋아하는 사진. 린다우에서-


여행을 하는 중에도 나는 다음 여행을 꿈꾼다. 연애를 할 때는 다행히 그렇지 않다. 

아무리 오래 전에 다녀온 여행이라도 매 순간을 초 단위로 쪼개 곱씹고 다시 살며 추억한다. 지난 연애에 대해서는 다행히 그렇지 않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바로 그 다음 여행 티켓을 끊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데 역시 연애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좋은 건지 안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떠나는 것도, 상대를 정하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여행이 훨씬 쉽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많이 했다. 


다음 여행은 유월 이십오일이다. 다음 연애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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