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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지나 Nov 08. 2015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Patience /Procrastination

나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나를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나의 큰 장점 중 하나로 ‘참을성’을 꼽는다. 사실 살면서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참고 싶어서 참은 적은 없다.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참을성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으니 참는 경우가 정말 많았고, 참지 않았을 때도 속 시원하게 판을 뒤엎고, 문을 박차고 나오기 보다는 ‘할말은 많으나 이쯤에서 그만 하지요’ 하고는 마음을 추슬렀다. 앞으로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면, 앞으로 완전히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내가 하는 행동과 쏘아붙일말에 어떤 책임도 따라 붙지 않는다면 하고 싶은 대로 했을 것이다. 



(c)Gina Maeng

+찍은지 꽤 되어 어디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사진. 뤽상부르공원 근처였던 것 같아요. 



자발적 인내가 없는 나는 기다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것은 있을까? 게으른 사람들의 구차한 변명의 번지르르한 포장지로 쓰이는 두 단어일까? 기다림을 견디지 못해 온몸을 배배 꼬는 친구를 달래기 위해 꺼내는 말일까?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다가 좌절되고, 시간이 좀 더 지나 그것이, 혹은 그와 비슷한 것이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이것 봐, 기다리길 잘했지 않아?’ 라고 말한다. 그때마다 나는 ‘지금도 좋아.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 그때였다면 더 좋았을 거야’ 하고 답한다. 무언가를 오래 기다렸다 만났을 때, 지금이 완벽한 타이밍이라 느끼게 되는 일들이 있을까 궁금하다. (책 쓰는 것 말고. 오래 덮어 두었던 원고를 고쳐 쓸 때는 항상 ‘그때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묵혀 두었다 이제 다시 보아 다행이야’라고 생각한다)


(c)Gina Maeng



한참을 기다리다가 영원히 잠이든 노래들이 있고

오래 기다리다 종이 위에 인쇄된 글자들이 있고 

기다림을 예약하고 나에게 안긴 생각들이 있다. 


그 중에는 빨리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고,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것도, 친한 사람들과만 공유하고 싶은 것도, 어쩌고 싶은지 모르는 것들도 있다. 가끔 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였지만 다른걸 하고 싶을 때 나는 이들을 뒤적이며 조금이나마 정리를 한다. 조금씩이나마 정리되는 것에 뿌듯해하기 보다는 빨래를 개듯 차곡차곡 접어 각자 있어야 할 제 선반 위로 올려 놓지 못함에 답답함을 느낀다. 


어쩔 수 없이 인내하며 아직 혼자만 알고 있는, 가지고 있는 무언가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꿈이라, 열정이라, 욕망이라, 목표라, 깃발이라, 목적지라 부르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아직 단단히 뭉쳐져 주먹으로 꼭 쥘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더라도, 솜사탕같은,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엔 흩어져 없어져 버리는듯한 것이라도,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기다림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있을까? 


(c)Gina Maeng


11월이 되니 파리 거리 곳곳에 Barbe à papa 기계가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솜사탕을 프랑스어로 ‘할아버지 수염’이라 한다. 그리 입맛을 돋우는 이름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상상력을 고취시키기엔 더 없이 단순하고 좋다. 겨울의 파리를 여행하는, 한껏 기분이 들뜬 여행자들에게 이를 말해주면‘할아버지 수염이요?’ 하고 꺄르르 웃으며 항상 되묻는 이름이다. 


12월이 되면 성대하게 열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분홍색 솜사탕을 사먹어야겠다고 벌써부터 벼른다. 혼자 다 먹어야겠다고 벼른다. 그 날은 끈적해진 손가락을 쪽쪽 빨며 메트로 막차를 타고 집에 가야지. 그 날은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고 일부러 모든 것을 미루고 생각하지 말아야지. 죄책감 없이 난장판이 된 머릿속을 그대로 두고 잠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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