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PD의 잡학다식 Sep 01. 2021

늦은 밤, 집에 와서

Rosalyn Tureck,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그런 때가 있잖아요.

너무 피곤한데 생각은 많고, 그래서 잠이 잘 오지 않는.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일주일 서울 출장을 마치고, 늦은 밤 사원 아파트에 돌아왔더니 그사이 닫혀 있던 공간이 가을장마 탓인지 덥고 습한 기운으로 가득하고, 방안 공기를 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고, 빨래통엔 밀린 옷가지들이 꼬깃꼬깃 쌓여 있더군요.


그런데 오늘은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며칠 사이 너무 많은 일을 했거든요. 서울 간 김에...


오디오를 켜고, 가만히 Rosalyn Tureck의 CD를 넣었습니다. 1988년, 그녀 나이 일흔넷에 연주한 녹음입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예술가들은 대체로 뭔가 보여주고, 말하고, 표현하고 싶어 하죠. 그런데 이 노년의 대가가 치는 피아노 소리에는 '뭘 해보겠다'는 의도가 느껴지지 않아요.

힘, 욕심, 꾸밈이 스러진 담백하고 단순한 연주.


천천히, 또박또박, 조용히.

디딜 곳을 딛고, 흔적 없이 지나가는 새벽 숲의 시냇물 같습니다.


세상에 억지로 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때가 되어 익고, 차고, 이르면 되더라고요.

안달과 조바심,

지나 보면 이런 것들이 별 도움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사 제 뜻대로 안 되니까 마음이 힘든 거지요.


밤이 깊었습니다.

음악을 듣고 나니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이제 그만 자야겠습니다.


구월 첫날,

이제 가을입니다.

모두 평안하시길 빕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음 악기의 고음은 눈물겹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