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칠석, 오늘은 처서. 오후 나절 호남 지방에 세찬 비가 내렸다. 해 질 무렵 여전히 후텁지근하였으나 밤이 되자 선선한 바람이 분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 돌아보니 여전히 분주했으나 실속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소식, 엊그제 건강 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나이에 비해 일곱 살이나 젊은 신체를 유지하고 있고, 노화 속도가 30% 느리다는 것. 여든다섯까지는 살 수 있다나? 특별히 아픈 징후도 없고. 다만, 몇 가지 지표상 조심, 유의하라는 권고가 있으므로 유념하기로.
이 여름, 그래도 기억할 만한 일이 있다면 해외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세 번의 인터뷰. 캐나다에서 공부하고 영국 대학에서 강의하는 젊은 문화연구자, 대만에서 오신 신문방송학과 교수님, 그리고 서울과 도쿄에서 두 번 만나 대화를 나눈 일본의 언론인. 공통의 주제는 드라마, 예능, K-pop, 그리고 한류. 물론, 나를 찾아온 이유는 정부 혹은 공공기관의 역할을 묻고 확인하려는 것.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는 현상, 한류에 대하여 거듭 비슷한 질문을 받으면서 나름의 정리된 답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첫째, 문화콘텐츠를 논할 때 먼저 만드는 사람을 볼 것. 좋은 콘텐츠가 계속 나온다는 것은 좋은 창작자, 제작자, 아티스트가 있다는 뜻이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콘텐츠가 한국에서 나오는 이유를 살피려면 프로듀서, 작가, 감독, 배우, 기업을 찾아가시라. 영화, 드라마는 누군가 고뇌하며 쓴 한 줄에서 시작한다. 투수가 공을 던져야 야구가 시작되는 것처럼.
예전부터 한국 콘텐츠의 경쟁력이 무엇이냐고 외국분들이 물으면 농담처럼 경쟁이 치열한 게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답하곤 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드라마 작가 데뷔를 꿈꾸고 준비하는 지망생의 수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수많은 작가들이 지금도 창작의 고통을 견디며 빛나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쉽지 않다. 아주 예전에 유명 작가 한 분이 <방송작가>에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여의도 샛강에는 유난히 새벽안개가 자주 끼는데 밤새 흘린 작가들의 눈물이 맺혀서 그러는 거라고.
둘째, 오늘날 한류가 형성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또 다른 주체는 팬, 소비자(수용자)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누가 봐주지 않는 콘텐츠가 어떻게 성공하나? 많은 분들, 특히 해외 미디어, 연구자들이 놓치고 있는 지점이다. 한국의 감독, 작가, 배우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게 있다. ‘가장 두려운 사람들이 바로 팬, 시청자’라고. 결코 빈말이 아니다. 어지간히(?) 만들면 폭망하고, 욕먹기 십상이다. 제 아무리 유명한 배우, 감독이 참여한 작품도 신선도, 재미가 떨어지면 가차 없이 비판받는 게 한국의 풍토다. 한국 시청자들은 입맛이 까다롭고,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한다.
반대로 좋은 콘텐츠는 기어이 찾아서 보고, 어떻게든 성공하게 만든다. 한 예로 2022년 큰 성공을 거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ENA라는 신생 채널이 방영해 첫 회 실시간 시청률이 1%도 안 되었으나 최종회는 17%를 넘겼다. 이 현상 누가 만들었나? 바로 시청자다. 그러므로, 한국 콘텐츠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을 찾고 싶다면 한국의 적극적인 팬 문화와 수용현상을 들여다 보라. 나아가 해외 팬덤이 왜, 어떻게 한국 콘텐츠를 향유하는지 깊이 살펴보라. 요즘 세상에 누가 보란다고 내 시간, 돈 들여 남의 나라 콘텐츠를 즐긴단 말인가.
셋째, 한국에서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콘텐츠가 나오는 현상은 지난 30년 경제 성장, 민주화를 거치면서 형성된 한국 사회의 발전과 성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굴곡은 있겠으나 거칠게 말해 2000년 이후 영화, 드라마에서 정치권력 비판, 부정부패에 대한 풍자는 제약이 거의 없다. <기생충>, <오징어게임>, <지옥>, <D.P.>, <더글로리> 같은 콘텐츠는 불평등, 빈부격차, 학교폭력 등 한국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한국 창작자들은 한국 사회 내부의 문제를 깊게 들여다보고, 공개적으로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한국 대중문화의 성장과 성숙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런데 그런 콘텐츠가 미학적으로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한국은 물론 세계의 시청자,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것 아닐까.
일본 언론인에게 질문했다. 지금 일본 영화, 드라마 창작자들이 정치, 자본권력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느냐고?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최근에 나온 드라마 <엘피스> 정도 아니겠나 싶다고. 그러니까 한국 콘텐츠의 성장과 발전, 표현의 자유 신장은 한국 사회 내부의 치열한 논쟁과 갈등, 합의를 거치며 이룩한 성취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콘텐츠를 논하려면 한국 사회의 변화와 다양한 맥락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넷째, 정부의 역할. 없지 않았다. 그리고, 사전 검열 철폐, 일본 대중문화 개방,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아카데미 설립, 한국콘텐츠진흥원 개원 등 몇몇 중요한 대목들도 있다. 그러나, 앞선 세 가지 현상을 정부의 노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나? 그리고, 경제규모 세계 10위 안에 들어가는 나라들 가운데 자국 문화 보호, 육성에 한국 정부만큼 예산 투입 안 하는 나라가 있을까?
대만, 일본 학자, 언론인에게 말했다. 정부의 투자와 정책으로 한 나라의 문화콘텐츠가 단기간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관점과 논리야말로 문화 우월주의적인 시각일 수 있다고. 너희한테 원래 그런 능력이 없는데 정부가 계획하고 쏟아부으니까 이만큼 된 거야,라고 말하는 건 한국의 빛나는 아티스트, 작가, 감독, 프로듀서를 모독하는 일이라고.
다만, 한국의 인구가 많지 않고, 내수시장이 충분히 크지 않은 데다 대중문화 저변이 상대적으로 넓고 깊지 않아서 정부가 감당하고 뒷받침해줘야 할 영역이 있다. 신진 창작자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 재능 있는 작가들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창작에 매진할 수 있게 정책을 만드는 일, 창업 기업이 자리 잡을 수 있게 공간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 한꺼번에 많은 자본이 들어가는 특수촬영 시설이나 장비, 인프라를 갖추고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 등등.
이 밖에도 법, 제도, 규정을 손 보고 금융, 세제 혜택을 마련하는 것까지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정부, 공공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적지 않다는 점을 말씀드렸다. 잘 이해하고 돌아가셨으리라 생각한다.
이 기회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정부와 공공기관의 역할을 과장할 필요는 없으나 무분별하게 습관적으로 ‘까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도 사람이 일하는 동네라 욕먹으면 위축되고 움츠리기 마련이다.
콘텐츠에 관심과 애정이 충만하지만, 누구나 감독, 작가, PD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현장의 꿈’을 접었으나 그래도 이쪽에서 일하고 싶은 열정을 가진 친구들이 콘텐츠 분야 공공기관에 온다. 학계에 ‘아카팬’이 있는 것처럼 정부, 공공기관에 ‘덕후공’들이 적지 않다. 앞으로도 재능 있고, 실력을 갖춘 전문인력이 콘진원, 영진위, 문예위 같은 공공기관에 많이 와서 역량을 펼쳐주기를 기대한다.
밤이 깊었다. 여름이 지고,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회사에서 줄곧 새로운 일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다. 나도 즐겁고, 남도 즐거운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 하나 더 가을엔 책이 나와서 기쁨을 함께 나누기를 기대한다. 모두 아름다운 가을 맞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