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
바로 어제 일도 잘 잊는 내가 잊지 못하고 초 단위로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장면이 있다. 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 시작된 어느 날이 그랬다. 어제도 7년 전 그 날처럼 날이 오래도록 흐렸다.
수업을 마치고 평소처럼 핸드폰을 확인하며 쉬는 시간을 맞이하던 아이들 중 하나가 수학여행을 다녀오던 단원고 아이들의 배가 침몰했다는 속보를 전해주었다. 불과 며칠 전, 당시 재직 중인 학교의 2학년 학생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그 여흥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위급한 상황이지만 모두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당연스레 전해질 줄만 알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오래도록 마음이 미어질 줄은 그때만 해도 미처 알지 못했다. 지시가 있을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고 공포에 떨었던 수많은 아이들과 아이들을 마지막까지 구조하려던 교사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내가 그 배에 타고 있는 교사라면, 내 아이들에게 벌어진 일이라면 나와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벌어졌을 비극이었다. 진상 규명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더 기가 막히고 황당한 뉴스들이 연일 계속되었다. 믿을 수 없었고 무기력해졌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안겨준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너무 명확하다 확신했던 옳고 그름, 선과 악의 기준마저 무너져 내렸다. 한 달 내내 웃을 수 없었고 어쩌다 웃기라도 하면 죄책감에 그 웃음을 거둬버렸다. 비정하도록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한 4월의 마지막 날까지도 오래도록 우울했다.
2014년 4월 16일, 우리 아이들이 제주도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한 달 이상 우울했고 아이들 앞에서 웃는 것도 죄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 반장 지현이가 과일 도시락을 손수 만들어 함께 전해준 긴 편지를 읽고 펑펑 울어버렸다. 조례 시간 웃으며 교실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힘을 얻는다며 선생님 말씀대로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에 어쩌면 말 뿐인 나보다 아이들이 더 어른스러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해졌다. 아이들이 떠나고 난 교실에 남아 소풍 때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판에 붙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매년 4월이 되면 지현이가 내게 준 울림으로 먹먹해진다. - ‘EP2. 내가 아직 세상을 좋아하는 이유’ 중 일부 발췌(by. Carpe diem)
그 후 3년이 흘러 2017년 4월의 어느 날, 아이들과 세월호 참사 3주기 추모행사를 진행하기 전 조례 시간에 추모의 취지와 의미에 대해 짤막하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이제 좀 지겨운데 또 해야 돼요?”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어요?”
예상한 반응이었다. 적대시하기보다 기억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재차 이야기하면 그만이었다. 과거를 잊는다면 이런 참사는 또 반복될 수 있고,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으며, 진실이 밝혀져야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힘 있게 말해주었다. 불평하던 아이들의 표정에 남은 지루함을 한 번에 거두기엔 역부족일지 모르나 시간이 필요한 문제이므로 묵묵히 추모할 기회를 줘야만 한다. 더불어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익숙해져 생각을 멈춰버린 우리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스무 살을 목전에 둔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마음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교실 뒤 ‘기억의 벽’을 채울 메시지와 그림을 그리도록 시간을 주었다.
식상하다 지겹다 말하기보다 내 가족 내 친구의 이야기일 수 있음을 잊지 말라는 말과 뚜렷한 이유도 모른 채 억울하게 패배의식에 젖기보다 잘못된 것을 당당히 말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이길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살아있다면 스물다섯의 봄이었을 것이다. 당연한 듯 살고 있는 우리에게 특별할 거 없는 또 한 번의 봄이지만 누군가에겐 누려보지 못한 호사이기도 하다.
‘애도’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이다. 시간이 흘러도 하나의 목숨이 사위어 간 순간에 대해 함부로 논해서는 안 된다. 남편을 잃은 여자는 미망인, 아내를 잃은 남자는 홀아비라 하지만 자녀를 잃은 부모를 칭하는 단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만큼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합동분향소에 적힌 한 어머니의 편지 한 통에 담긴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애도에는 유효기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