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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 diem Apr 17. 2021

EP33. 애도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

 바로 어제 일도 잘 잊는 내가 잊지 못하고 초 단위로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장면이 있다. 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 시작된 어느 날이 그랬다. 어제도 7년 전 그 날처럼 날이 오래도록 흐렸다.


 수업을 마치고 평소처럼 핸드폰을 확인하며 쉬는 시간을 맞이하던 아이들  하나가 수학여행을 다녀오던 단원고 아이들의 배가 침몰했다는 속보를 전해주었다. 불과 며칠 , 당시 재직 중인 학교의 2학년 학생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여흥이  가시지 않은 때였다. 위급한 상황이지만 모두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당연스레 전해질 줄만 알았다. 말도  되는 일이 일어나고 오래도록 마음이 미어질 줄은 그때만 해도 미처 알지 못했다. 지시가 있을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고 공포에 떨었던 수많은 아이들과 아이들을 마지막까지 구조하려던 교사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내가  배에 타고 교사라면,  아이들에게 벌어진 일이라면 나와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벌어졌을 비극이었다. 진상 규명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기가 막히고 황당한 뉴스들이 연일 계속되었다. 믿을  없었고 무기력해졌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안겨준 실망감은 이루 말할  없었고 너무 명확하다 확신했던 옳고 그름, 선과 악의 기준마저 무너져 내렸다.   내내 웃을  없었고 어쩌다 웃기라도 하면 죄책감에  웃음을 거둬버렸다. 비정하도록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한 4월의 마지막 날까지도 오래도록 우울했다.



2014년 4월 16일, 우리 아이들이 제주도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한 달 이상 우울했고 아이들 앞에서 웃는 것도 죄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 반장 지현이가 과일 도시락을 손수 만들어 함께 전해준 긴 편지를 읽고 펑펑 울어버렸다. 조례 시간 웃으며 교실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힘을 얻는다며 선생님 말씀대로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에 어쩌면 말 뿐인 나보다 아이들이 더 어른스러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해졌다. 아이들이 떠나고 난 교실에 남아 소풍 때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판에 붙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매년 4월이 되면 지현이가 내게 준 울림으로 먹먹해진다. - ‘EP2. 내가 아직 세상을 좋아하는 이유’ 중 일부 발췌(by. Carpe diem)


 그 후 3년이 흘러 2017년 4월의 어느 날, 아이들과 세월호 참사 3주기 추모행사를 진행하기 전 조례 시간에 추모의 취지와 의미에 대해 짤막하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이제 좀 지겨운데 또 해야 돼요?”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어요?”


 예상한 반응이었다. 적대시하기보다 기억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재차 이야기하면 그만이었다. 과거를 잊는다면 이런 참사는 또 반복될 수 있고,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으며, 진실이 밝혀져야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힘 있게 말해주었다. 불평하던 아이들의 표정에 남은 지루함을 한 번에 거두기엔 역부족일지 모르나 시간이 필요한 문제이므로 묵묵히 추모할 기회를 줘야만 한다. 더불어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익숙해져 생각을 멈춰버린 우리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스무 살을 목전에 둔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마음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교실 뒤 ‘기억의 벽’을 채울 메시지와 그림을 그리도록 시간을 주었다.


 식상하다 지겹다 말하기보다 내 가족 내 친구의 이야기일 수 있음을 잊지 말라는 말과 뚜렷한 이유도 모른 채 억울하게 패배의식에 젖기보다 잘못된 것을 당당히 말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이길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살아있다면 스물다섯의 봄이었을 것이다. 당연한 듯 살고 있는 우리에게 특별할 거 없는 또 한 번의 봄이지만 누군가에겐 누려보지 못한 호사이기도 하다.


합동분향소에 적힌 당신의 딸에게 적어 놓은 편지 중 일부


 ‘애도’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이다. 시간이 흘러도 하나의 목숨이 사위어 간 순간에 대해 함부로 논해서는 안 된다. 남편을 잃은 여자는 미망인, 아내를 잃은 남자는 홀아비라 하지만 자녀를 잃은 부모를 칭하는 단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만큼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합동분향소에 적힌 한 어머니의 편지 한 통에 담긴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애도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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