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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문학도 May 06. 2024

옛날 음악은 안 듣는 척하고 있어요

술 취한 노래방에서 뉴진스를 부르다

뉴진스는 달랐다

 뉴진스의 첫 음반은 나와 친구들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요즘 아이돌 음악은 보는 음악이지 듣는 음악이 아니라고, 들을 노래 참 없다고 한탄하고는 했는데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한 음반이었다. 어텐션, 하입보이, 디토까지 우리는 가사를 외울 정도로 뉴진스에 집착했다. 소녀시대 이후 첫 걸그룹 단합이었다. 오랜만에 멤버 이름을 외우고, 술자리에서 '뉴진스 같은 여자친구'가 아니라 '뉴진스 같은 딸'을 갖고 싶다며 농담을 했다.


 술에 취해 굴러가는 낙엽에도 웃음이 터진 늙은 소년들은 에코가 빵빵한 노래방에서 벚꽃엔딩과 뉴진스 노래를 불렀다. 에코가 지나치게 울려 반주가 지나간 뒤 목소리가 울렸고, 몇 명은 떼창까지 불러 노래 지옥 그 자체였다. 맥주를 더 마신 몇 명은 노래와는 전혀 상관없는 춤으로 박자를 맞췄다. 덩실덩실 거리는 춤을 보고 있자니 한국의 한을 담은 것 같아 슬플 지경이었다.

 

분명 내가 본 춤은 자세는 같았지만, 다른 춤이었다.


  뉴진스의 노래가 왜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그 신선함 뒤에 있는 익숙함이 무엇인지 우리는 곧 알 게 되었다. 뒤에는 프로듀서인 250이 있었다. 250을 유튜브에서 검색하자, 뉴진스가 아니라 '뽕'이 먼저 나왔다. 뽕? 1982년생인 그는 한동안 뽕을 찾아 헤맨 아티스트였다. 어쩐지 노래가 동년배 같고 괜스레 좋더라니.. 뉴진스로 시작한 우리의 여정은 250의 뽕 시리즈인 뱅버스와 로얄 블루에 도착했다. 우리도 결국 뽕을 찾아버린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새로운 곡을 듣지 않는다

 새로운 노래를 가장 많이 듣는 나이는 24살이고, 더 이상 신곡을 듣지 않는 나이는 33살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새로운 편곡과 가사, 새로운 창법과 인물을 거부하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뉴진스의 곡은 우리 귀에 완전 새롭지 않았기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 33살은 훌쩍 넘었으니까.


 고백하자면, 사실 새로운 가수의 노래를 듣거나 새로운 노래를  찾아 듣는 경우가 많이 사라졌다. 언제인가부터 멜론 차트도 즐겨 듣지 않는다. 요즘은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듣나 싶을 때 차트 순서로 한 번씩 들어볼 뿐이다. 종종 마음에 들어 며칠 듣는 노래도 있지만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는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내 플레이리스트는 박효신, 휘성, 성시경, 델리스파이스, 클래지콰이가 들어있고, 그나마 좀 양보해서 백예린과 최유리, 크러쉬가 들어있다. 경연에서 부른 소수빈의 '넌 쉽게 말했지만'이나 임재현이 부른 '비의 랩소디' 같은 노래도 있지만 다 리메이크다. 팝으로 가면 심지어 아직도 보이즈투맨이나 시스코의 'Incomplete'도 듣는다.


 그럼에도 요즘 어떤 신곡이 나왔는지는 알고 있다. 그저 즐기지 않을 뿐, 마치 상식처럼 들어보고 숙지해 둔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요즘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신곡이 끌리지 않는 이유를 신곡 탓으로 돌렸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저 감성이 예전에 머물러있을 뿐이다. 예전을 잊지 못하니 새로운 곡이 들어올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자꾸 시티팝에 매료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 아닐까


 뉴진스 노래에 탈춤을 추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확신했다. 예전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노래가 듣는 음악이 아니라 기억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어떤 음악은 듣는 순간 인생의 배경음악이 된다. 그리고 무의식 속에서 그 음악을 가장 많이 듣던 때로 회귀한다.


 박효신을 한창 들었을 무렵, 나는 독서실에서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었고, 집에 돌아오는 저녁 버스에서 델리스파이스를 들었다. 노래방에서 올라가지도 않는 휘성의 노래를 부르고, 친구가 악을 쓰며 비의 랩소디를 부르면 탬버린을 치면서 비난을 했다. 그 모든 장면들이 영상처럼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옛날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기억인 셈이다.


 밀레니얼인 우리가 옛날 음악을 기억하고 있듯, 현재 10대와 20대는 지금의 음악들을 그렇게 기억하지 않을까? 교실 뒤에서 디토와 하입보이를 추고, 노래방에서 지코의 랩을 따라 부르고, 음정도 맞지 않는 비비의 밤양갱을 부를지도 모른다.


 10년 20년이 지난 후 그들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우리처럼 뉴진스와 지코, 비비의 노래가 들어가 있을 지도. 그리고 그들 역시, "아, 예전에는 참 좋은 노래 많았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들을 만한 노래가 없냐?"라고 한탄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때의 250이 또 등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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