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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문학도 May 21. 2024

돈이 많아도 냉삼은 먹고 싶어

재벌이 되어도 국밥 입맛은 여전할까

냉동 삼겹살도 이제 싸구려가 아니다.


 결혼한다는 친구를 압구정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정장을 말쑥하게 입은 친구는 어디선가 1차를 마시고 온 눈동자였다. 술 냄새가 나지는 않았지만 며칠간 술통에 절여진 장아찌 같아 보였다. 먹고 싶은 건 뭐든 사준다는 친구의 말을 흘리고, 나는 삼겹살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 고깃집으로 모신다는 으름장을 믿고 따라간 곳은 냉동 삼겹살 식당이었다.


냉삼? 대체 압구정에서? 그걸 왜?


 대학 시절 즐겨 먹던 학교 앞 냉동 삼겹살 집이 있었다. 육질은 딱딱했지만 다양한 소스와 저렴한 가격에 부담이 없는 곳이었다. 어느 날, 다 구워진 고기들의 살과 비계가 뚝뚝 분리되는 걸 발견했다. 삼겹살은 원래 이렇게 분리가 되는 걸까? 얼어서 깨진 걸까? 돼지가 좀 피곤한 탓일까?

 티비에서 식용 본드로 고기를 붙여 삼겹살과 돼지갈비를 만든다는 기사를 본 후 식당 발길을 끊었다. 냉동 삼겹살에 관한 슬픈 추억이다.


 모든 냉동 삼겹살 집은 그 가게만의 시그니처가 있다. 파절임이 매우 독특하거나, 김칫국이 시원하거나, 아님 찍어먹는 소스가 특이하거나. 고기에서 승부를 보기 어려우니 다양한 변화구가 필요하다. 대부분 싸고 저렴하고 자극적이다. 이게 바로 냉동 삼겹살의 본질이었다. 고기는 본디 냉동은 냉장을 이길 수 없다. 이것은 나에게 맞으면 아프다 수준의 기본 상식이었다. 그래서 냉동 삼겹살을 먹을 때마다 '나중에 돈을 벌면 더 좋은 고기를 먹어야지" 소리 없는 다짐을 했다. 부자가 되면 이런 냉삼은 먹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이 있었다.


 처음 가본 압구정 냉삼집은 이런 나의 상식을 파괴했다. 국내산 냉삼은 100그램에 1만 원 남짓했다. '이것이 바로 레트로의 힘인가, 아니면 골든구스 신발처럼 가진 자들의 기만인가. 이제 부자들은 서민의 감성조차 비싼 돈으로 허세롭게 소비하고 있구나.' 마르크스로 빙의한 나는 입이 삐죽 튀어나왔지만, 이내 화려한 반찬에 젓가락질을 멈추지 못했고, 기름진 냉삼에 후추를 뿌리며 부처님의 염화미소를 지었다.



입맛도 음악 취향처럼 변하지 않는가


 입맛에는 트렌드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 트렌드는 기존 음식의 변주일 뿐이다. 매번 돌고 돌아 기본으로 돌아온다. 새롭게 나오는 음식들을 보면 한 번 먹어보고 싶지는 하지만 두 번 이상 찾지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 같다. 나의 입맛이 예스러운 것도 이상하지 않다. 맛은 기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파란색 자장면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싸구려라고 생각했던 음식들이 여전히 '최애 음식' 상위권인 것은 좀 이상하다. 한 끼 식사를 넉넉하게 시킬 수 있을 정도의 여유 있고, 훨씬 다양한 음식들을 먹어봤는데도 도돌임표처럼 저렴이 음식들로 입맛은 되돌아온다. 마치 베스킨라빈스의 다양한 맛을 즐기다가도 매번 먹던 '엄마는 외계인'으로 돌아오는 기분이다. 빈 상가에 못 보던 냉삼집이 새로 들어오거나, 못 가본 순댓국집이라도 발견하면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샘솟는다.


 사실 입맛만 봐도 종종 시대나 나이가 느껴진다. 젊은 이들이 선호하는 과일 1위는 딸기다, 반면 중장년층이 좋아하는 과일 1위는 참외다. 딸기와 참외 사이에 내가 있다.


취향은 변하지 않는다. 확장될 뿐


 드라마 속 재벌은 소탈하다. 주인공인 그는 힘든 일이 있으면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한 잔 한다. 수행비서가 옆에 서 있고, 달동네 포장마차에 벤츠를 세워놓고 곰장어에 빨간색 진로 소주를 마시면서 "요즘 술이 참 약해졌군. 내가 이 회사를 처음 세웠을 때 참 여기를 자주 왔는데.."라며 중얼댄다. 자리에 일어나 비틀거리면 수행비서의 부축을 받는다.


 실제 재벌은 절대 저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성공하고 소주를 즐겨마실 이가 얼마나 있을 것인가 애초에 소주가 그렇게 좋은 술도 아닌데. 그럼에도 가장 대한민국에서 남녀노소 자주 마시는 술이다. 나는 소주를 보면 냉삼이 생각난다. 둘은 같은 위치에 있다.


 나이를 먹고 돈을 더 벌면, 어릴 때 먹던 것들은 먹지 않을 줄 알았다. 한강이 보이는 뷰까지는 아니어도 와인의 맛을 음미하면서 카나페 같은 걸 안주 삼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카나페는 곱창이 되고, 와인은 소맥이 되었다. 물론 둘 다 즐거운 시간이지만 말이다.



 취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단지 나이를 먹고 경험할수록 확장될 뿐임을 알 게 되었다. 나는 냉삼도 기가 막히게 잘 굽지만, 고급 레스토랑의 식기를 쓰는 순서도 알게 되었다. 와인샵도 가끔 들리고 할인하면 꼭 집어오는 와인도 생겼다. 무엇보다 마시기 싫어했던 국산 맥주와는 완전히 결별했다.


 확장된 취향만큼이나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의 폭도 넓어진 것 같다. 선택지가 다양해진 셈이다. 단지 가장 큰 즐거움을 주고 자주 선택하는 건 여전히 냉삼으로 상징되는 옛 것들이다. 아니, 기본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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