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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문학도 Jun 04. 2024

당신은 예전부터 저질체력이었습니다

체력이 좋은 시절은 없었습니다. 앞으로도요.

세상의 모든 건강 채널이 눈에 들어온다

 주말 아침이면 정체불명의 건강 방송이 방영된다. 젊음과 활력의 비결이 '양파'라고 주장하며 하루에 양파를 몇 개씩 먹는 아저씨도 나온 적이 있는데, 당시 가정의학과 교수들과 한의사들이 나와 양파의 효능에 대해 설파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양파는 마치 모든 질병의 근원을 끊어버리는 불로초처럼 느껴졌다. 지금 당장 냉장고에 있는 양파를 꺼내서 씹어야할 것 같은 충동도 느꼈다.


 하지만 채널을 넘기니 이번에는 이름조차 생소한 시서스 가루가 동서양의 불로초였다. 그 다음은 강황이었고, 매일 강황밥을 먹는 어머님이 나와 자신의 피부탄력을 자랑했다. 탄력은 모르겠지만 얼굴에 왠지 모를 기름기가 흘렀다.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시는 건 확실해보였다.


 예전에는 망설임 없이 채널을 넘겼던 건강 방송에서 자주 멈짓하게 된다. "일단 무슨 말 하는지 들어나보자"라는 마음이 생겼다. 남녀노소 누구나 먹는 종합비타민 뿐만 아니라, 고용량 비타민C나 콜라겐, 아미노산 같은 영양제도 점점 친숙해진다. 친구들의 단톡방에서는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신세한탄도 가득하다. 일 터에서도 '피곤하다'는 말은 '안녕하세요'라는 말보다 더욱 자주 쓰는 것 같다.


 내 주변의 80년대 생들은, 20대 때는 밤을 새도 다음 날 멀쩡했고, 술도 숙취 없이 마셔댔으며, 모든 음식이 소화가 잘 되어 항상 컨디션이 좋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밤새는 날은 다음 날 오후까지 쓰러져있었고, 분명 숙취에 시달려 좀비가 된 친구들이 많았다. 소화가 잘 되기는 커녕 애초에 밥을 잘 안 챙겨먹어 감기를 달고 산 이들도 있었다.


소년일 때도 아저씨 아니었을까..



 친구들은 '젊은 날의 자신'이 멈추지 않는 증기기관차, 에너자이저라고 주장하겠지만 내 기억에 그들은 언제나 베터리가 간당간당한 저전력 휴대폰이었다. 단지 체력을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쉴 시간이 많았을 뿐이었다. 열심히 운동을 한 친구들은 지금이 가장 인생에서 건강한 시절일 것이다. 그들의 20대는 청년보다 아저씨에 가까웠으니까.


체력이 약해졌다는 불안감에 사로 잡혔다

 나이와 체력이 반비례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꾸준히 운동하고 자신을 가꾼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되었든 체력의 총 용량이 늘어났을리는 없다. 늘어난 것은 내가 점점 약해진다는 불안 뿐이다. 얼마 전 운동을 하다가 문득 "예전에는 더 무거운 덤벨을 들었겠지?"싶어 과거 기록을 찾아봤다. 그때보다 지금 내가 더 많은 양의 무게를 치고 있었다. 좀 혼란스러웠다. 5년 전이 지금보다 더 약골이었다.



 마음 속 한 구석에 자리 잡은 불안은 건강 염려를 꽃피웠다. 예전보다 건강 검진이 걱정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챙겨먹고, 가족 친구들과 건강하자는 덕담을 나눈다. 서로 오쏘몰을 선물하고, 러닝크루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PT를 받을지 고민을 한다. 가족 건강에 대한 불안은 더 심해져서, 부모님에게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고, 운동을 하라는 잔소리도 한다. 그리고 그 잔소리를 역으로 듣는다.


 모두들 나이를 먹을 수록, 구입한지 오래된 자동차처럼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면서 닳고 있을텐데, 종종 회사에서는 힘이 넘치고 열정적으로 소리치며(?) 바쁘게 일하는 중년들을 볼 수 있다. 회사 임원이나 높은 사람이 되면 사이보그처럼 에너지를 이식 받는 걸까? 아니면 건강보조식품을 10알씩 먹는 걸까? 아니면 돈이 많아질 수록 힘이 나는 걸까? 그들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체력을 길러라, 그리고 정신력도 길러라

 한 동안 미생의 명대사였던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를 잠언처럼 되뇌었다. 일이든 취미든 체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점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정신력은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우선 나의 정신력이 어렸을 때보다 좋아졌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성격이 좀 더 부드러워진 것 같기는 한데, 그건 성격이 좋아진 게 아니라 기력이 쇠하여 화낼 힘이 사라진 거라고 생각했다.


화낼 힘도 없다는 것을 체감하는 요


 성격을 부분을 지우고 생각해보면 그래도 정신력은 약간은 나아지지 않았나 희망을 가져본다. 여전히 스스로 어른이라고 하기는 부담스럽지만, 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선택들을 했다. 누적된 선택의 자체가 많아진 만큼 잘못된 선택을 수습한 경험도 늘었다. 그러니 예전보다 스트레스를 다루고 상황을 풀어내는 능력이 매우 좋아졌다.


 그 사이에 삶에서 선택을 하는 '방향'내지 '신념'같은 게 생긴 것 같다. 무엇이 중요한 지도 자주 생각하고 실제 중요한 것들도 늘었다. 이런 것들을 기반으로, 어렸을 때보다 결정도 빠르게 하고 결과를 수용하는데 익숙해지고 있는 듯 하다.


 실제로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나이를 먹을 수록 감소하는 능력도 있지만 향상되는 능력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감소하는 능력은 기민성인데, 긴장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우선순위에 따라 능력을 잘 배분하고 이동시키며, 방해요소를 무시하고 집중하는 능력은 향상된다고 한다. 즉, 주의력과 집중력이 연습과 경험을 통해 점점 늘어난다는 말이다.  


 요즘 들어 체력만큼이나 정신도 돌보고 마음의 근육을 붙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치진 않았는지 스스로 파악해보고, 내 마음도 챙기려고 한다. 그리고 마음의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일들을 늘리려고 한다. 요즘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외국어 배우기다. Chat GPT가 발전해 언젠가는 동시통역을 해주겠지만 내가 직접 외국인과 대화하는 즐거움은 AI가 대신해줄 수 없을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정신은 예전보다 더 나아질 수 있으니, 이제 할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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