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J의 인터뷰 - 두 번째] 당신의 인생을 응원해요 :)
영어 학원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첫 시간, 활짝 웃으며 "저는 꿈을 위해 직장을 그만뒀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선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모든 직장인이 꿈꾸는 게 '퇴사'가 아닐까 싶은 요즘, 그 삶을 살고 있는 그녀는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하늘이 맑고, 꽃이 피는 아름다운 수요일 저녁, 그녀와 동네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대책 없이 퇴사한, 디자인을 하고 싶어 하는 취준생 박은혜라고 합니다.
꿈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고 들었는데, 요즘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여행 관련 회사에서 고객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다가 퇴사하고 3월부터 쉬고 있어요. 영어를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 영어회화 학원을 등록했다가 언니를 만나게 되었고, 이렇게 인터뷰라는 것도 하게 됐네요. (웃음)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스페인과 네덜란드에서 여러 경험을 하면서 디자이너를 꿈꿨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채 계속 방황을 했어요. 일도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었고요. 실은... 작년에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하고 싶은 걸 하는 모습을 하늘에 계신 아빠한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7개월을 고심하고 고심하다가 퇴사했어요. 그동안 아빠가 제가 하는 모든 일을 지지해 주셨던 든든한 후원자셨거든요. 그런데 막상 퇴사를 하고 나니 그간의 직장생활이 힘들었던 탓에 지쳐버렸는지 매일 늦잠을 자고, 해야 할 것들도 못하고 게으르게 지내게 되는 거예요. 최근에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 여행을 모든 게으름을 끝내는 ‘마지노선’으로 생각했어요. 지난주에 베트남에서 귀국한 후, 포트폴리오 작업도 하고 앞일을 준비하면서 열심히 지내고 있어요.
아버님 때문에 상심이 클 것 같아요... 그 마음을 제가 다 이해는 할 수 없겠지만, 단기간에 괜찮아지진 않을 거 같아요...
엄마가 중학교 때 갑자기 돌아가시고, 아빠는 제 버팀목이셨어요. 그래서 처음엔 실감이 전혀 안 났었어요. 아빠 꿈을 꿀 때가 있어요. 꿈속에서는 예전처럼 집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해결해주시는데, 잠에서 깰 때 아빠가 이제 없다는 걸 깨닫거든요. 많이 괜찮아졌지만, 그런 순간마다 막막하고 슬퍼요... 한동안은 즐거운 것들을 하면서 살아도 되나 싶었는데, 요즘은 즐겁게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다시 생기고 있어요.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네요...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는데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어떠한 모습으로 살면 부모님께서 기뻐하실지 생각해본 적 있어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그분들이 가르쳐주셨던 것들을 지키면서 살아가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 드네요.
돌이켜보면 아빠는 ‘바보 같다’고 생각할 만큼 좋은 분이셨어요. 아빠가 살아계실 땐 그런 모습들이 답답했는데, 저도 결국엔 아빠처럼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빠는 항상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 살자’고 하셨어요.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면 하늘에 계신 아빠, 엄마도 기뻐해 주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디자인’이고요. 졸업 작품으로 구급키트 같은 느낌의 ‘여성용품 키트’를 만들었었는데, 아프리카 같은 어려운 나라의 여성들을 위한 키트였어요. 우리나라도 ‘생리대’를 사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한참 보도되던 때였죠. 아프리카 같은 나라에는 이런 문제들이 더 심해요. 그래서 약봉지처럼 뜯어 쓸 수 있게 만들어서 여성용품을 최대한 많이 넣고, 손 소독제 같은 위생에 필요한 제품들도 넣어서 만들었었어요. 앞으로 디자인을 통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디자이너, 정말 멋진 것 같아요. 하늘에 계신 부모님도 분명 기뻐하실 것 같고요. 최근에 다녀온 베트남 여행을 모든 걸 다시 시작하는 기점으로 생각했다니 그에 대한 얘기도 듣고 싶어요.
이번 여행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어요. 아빠를 보내고 남동생과 다시 열심히 살아가자는 의미로 같이 떠난 여행이었거든요. 남동생과 오래 보내진 못했지만 정말 재밌었어요. 중간에 친구도 만나서 함께 여행했고 혼자서도 여행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죠. 일정을 계획하지 않고 떠난 여행이라 여유 있게 보낼 수 있었어요. 아참! 여행가기전에 언니가 추천해주신 무이네, 정말 좋았어요. 특히, 무이네에서 일정에 없던 ‘일출 투어’를 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다 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출을 보러 갔죠. 제가 못 보고 있던 사이에도 태양은 늘 뜨고 지는,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그동안 이런 멋진 시간을 보지도 못하고, 제대로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니 너무 아까운 거예요. 매일 새로운 태양이 뜨고 지는구나. 나도 다시 열심히 살자, 라는 다짐을 하고 돌아올 수 있었어요.
와, 사실 여행은 ‘일탈’이잖아요. 그런데 일탈을 통해 잃어버린 ‘일상’을 찾은 거네요?
맞아요. 쉼을 누리기 위해 그리고 일상에서의 일탈을 위해 여행을 떠난 거지만, 결국 여행에서 일출을 보며 소중한 매일의 일상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어요. 새로운 태양이 날마다 떠오른다는 당연하지만 소중한 사실도요. 여행을 다녀와서 친한 언니가 ‘Wild’라는 2015년에 개봉했던 영화를 소개해줘서 보게 됐는데, 너무 신기하게도 거기에 제가 깨달았던 메시지가 그대로 나오는 거예요. 영화 속 주인공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남동생이랑 엄마랑 셋이서 사는, 모든 인생의 중심이 ‘엄마’인 여자예요.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방황의 시간을 보내죠. 여주인공 혼자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횡단을 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영화예요. 어떻게 보면,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이죠. 영화 속 주인공도 여행 중에 ‘매일 반복되는 일출과 일몰’을 통해 희망을 찾고 다시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데, 저 또한 이번 여행을 통해 그런 깨달음을 얻었어요.
일출과 일몰은 매일 있는 거란다.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 아름다움 속으로 언제든 들어갈 수 있단다.
말 그대로 ‘로드무비’군요. 그래도 주변에 위로해주고, 생각해주는 지인들이 있어서 감사한 것 같아요.
네, 제가 인복은 있나 봐요. (웃음) 작은 일들은 걱정하고 연연하는 성격인데, 막상 큰일에는 ‘그럴 수 있지, 괜찮아’하고 넘기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그럴 때 주변에서는 걱정이 많이 되나 봐요. 위로해주려고 도움을 많이 주시더라고요.그리고 제가 원래 책을 잘 안 읽는 편인데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책을 많이 읽게 됐어요. 사람들에게 맨날 ‘책’ 얘기만 하니까 책으로 현실 도피하는 건 아니냐는 말도 들었었어요. 하지만 어려울 때마다 책이 제게 큰 위로가 됐어요.
전 책이 현실도피의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책이 주는 힘이 얼마나 큰데요. 요즘 어떤 책이 가장 큰 위로가 됐어요?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나요?
다니던 회사는 글로벌한 분위기였어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면 글로벌한 분위기에서라도 일하고 싶었거든요.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지만 힘든 일도 많았어요. 퇴사를 결심했을 때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인생 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이라는 책을 읽게 됐는데, 제 업무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방법들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공감을 많이 했어요.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한 내용이 나와서 특히 좋았고요. 저 같은 취준생뿐 아니라 누구라도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안 읽어보셨으니 언니한테도 빌려드릴게요. (웃음)
살면서 무례한 사람들, 기분나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죠. 빌려주세요, 꼭 읽어볼게요. 스페인이랑 네덜란드에서 1년씩 살다 오기도 했다고 했는데, 참 특별한 경험을 많이 한 것 같아요. 혹시 다시 가면 이렇게 하고 싶다, 하는 아쉬운 것들도 있나요?
스페인은 교환학생으로 1년을 갔었어요. 우리 학교엔 스페인어과가 없는데 교환학생 제도는 있었거든요. 가능성을 봐주셔서 디자인 학과인 제가 뽑혔었어요. 그런데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고 갔던 게 너무 아쉬워요.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던 처음 6개월과 스페인어를 하게 된 이후의 6개월이 전혀 달랐거든요. ‘언어’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유럽 애들은 단 1주일을 여행 오더라도 어학원에 등록해서 스페인어를 배우더라고요. 그런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네덜란드는 워킹홀리데이로 해외취업을 도전했던 거였는데,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실패한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디자인 관련 일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거든요. 네덜란드에 가기 전에 실무 경험을 더 많이 쌓고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무급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밑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디자인보다는 마케팅 업무에 가까웠어요. 원하는 걸 배울 순 없었지만 네덜란드라는 나라 자체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그에 대한 수요도 있는 나라란 걸 알게 됐죠. 예를 들어, 마트에서 폐기되기 직전인 식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식당이 있었는데, 매일 메뉴가 바뀌었어요. 그날그날 식재료에 맞게 요리사가 요리를 하는 거였죠. 버려지는 식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어 팔고, 그 생각에 동의해서 구매하는 충분한 수요가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나라도 이런 시도들과 그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도 점차 늘어나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스타트업들도 많고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모습에 대해 얘기해줄래요?
시각디자인이랑 웹디자인을 하는데, 일을 하게 되더라도 새로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외국 기업과 스타트업에서 주로 일을 했었기 때문에 전형적인 한국 기업문화에 대한 걱정도 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해 보려 해요. 상업적인 디자인들을 하더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제 디자인을 하고 싶고요. 1300k나 mmmg 같은 문구류들을 보면서 디자인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었는데 그런 제품들을 만들어보고 싶기도 해요. 그동안 꿈과는 먼 일들을 해왔고, 다시 꿈을 향해 도전하려 하는 중이라 막막하기도 하고, 아직 정리가 안됐어요. 정리 안 된 얘기들을 잔뜩 한 것 같아서 부끄럽네요.
아니에요. 힘든 일들을 겪었는데도 밝은 모습이라서 너무 감동이에요. 분명,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게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어른이 되었구나 싶은 생각도 들어서 안타깝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 있을까요?
살다 보면 학업, 직업, 결혼 등 다양한 선택의 순간을 맞게 돼요. 저는 퇴사라는 선택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어요. 현실은 줄어가는 통장 잔고가 무서운 백수이지만요. 길을 만들고 그 길을 걷는 건 나 자신이기에 그 결과에 부담을 갖는 것도 당연한 거 같아요. 혹시 ‘이게 아니다’라고 느낀다면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의미 없는 하루가 쌓이다 보면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가는 것처럼 느껴져요. 인생을 천천히 그리고 길게 살기 위해 풍성한 장면들을 채워주는 경험을 많이 하고 싶어요. 저는 원하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지속적인 수입과 경력을 포기하고 나름 제 인생의 의미있는 장면을 만들고 있어요. 자유롭죠. 그렇지만 퇴사를 망설이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저처럼 극단적인 선택도 방법이지만 일상을 유지하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거 같아요. 여행이나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통해서도 충분히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버려지기 직전의 식재료로 요리를 하는 네덜란드의 레스토랑 Website: 관심 있으신 분들은 방문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