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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유 Jun 30. 2023

[인터뷰] 삶의 레퍼런스를 찾아서(3)

시골친구_하동 이강희 님

U턴 청년 | 다른파도 대표 | 디지털 네이티브
인스타그램 @onion.lee



"IT 기술의 핵심은 인간의 힘을 줄여주는 데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이 귀한 로컬에서는 더욱더. 이렇게 계속 노동력과 반복 작업을 줄여서 지방에 있는 기업들도 수도권과 비교해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중요한 사업 모델이에요.”


시골 생활을 상상하면 으레 여유를 즐기면서 자연 친화적으로 조용하게 사는 삶을 떠올리곤 한다. 운무 가득한 지리산 자락과 초록빛을 뿜어내는 차밭에 둘러싸인 하동이라면 특히.
왜 시골에서는 Slow & Small Life만 살아야 하느냐고, 시골에서도 밤새워 일하고 바쁘게 살면 안 되냐고 반문하는 시골친구가 있다. 일단 야근 많이 하는 건 이뤘으니, 돈을 많이 버는 것만 이루면 된다고 당차게 말하는 강희님을 만나 그가 하동에서 꿈꾸는 ‘Fast & Big Life’에 대해 들어봤다.

어떻게 고향인 하동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나요.

원래 저는 서울에서 게임 개발자로 6년 정도 일했는데 재미는 있었지만 좀 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커졌어요. 그래서 서비스 개발자로 전향하면서 이왕이면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자 태국 치앙마이에 가서 일하려고 했죠. 퇴사하고 준비하던 중 코로나가 터지면서 출국을 미뤄야 했고, 서울에서 재취업하기는 싫다 보니 일단 고향에 내려오게 됐어요.


그러다 하동에서 창업까지 하셨네요.

언젠가 창업하고 싶어서 고등학생 때부터 창업 교육 같은 것도 계속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이미 과잉 포화 상태이니 더 이상 새로운 아이템이 없을 거로 생각해서 신흥 성장 국가인 태국이나 베트남 같은 데에서 서비스 개발을 해보려고 했던 거였어요. 그런데 하동에서 지내다 보니 국내에도 서울 외 지방에는 아직 기회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거죠. 수도권에서는 워낙 지도나 배달 서비스들이 잘되어 있으니까, 전국이 다 비슷한 줄 알았던 거예요.

제가 그리는 비즈니스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돈을 버는 형태인데 하동에는 아직 불편한 게 너무 많고 그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이윤 창출을 할 수 있다면 굳이 태국으로 안 가도 되는 거죠. 하동은 자연경관도 좋고 굳이 말 안 통하는 해외로 나가기보단 이렇게 지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파도를 창업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저는 원래 프로그래머로 일했는데 하동에서 당장 먹고살 방법을 못 찾겠더라고요. 여기 악양면의 공간(현 빅페리컴즈)에서 카페를 열었는데 재밌어서 읍내에서 베이커리도 해보고 청년 커뮤니티도 하다 보니 소상공인 분들과도 연결되고 지역 사업에도 참여하게 됐죠. 그 과정에서 지역의 문제를 비즈니스로 풀어내는 ‘괜찮아 마을’ 같은 팀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손님으로 온 디자이너 경민 님(현 다른파도 이사)과 함께 지역에서 이것저것 테스트해 보게 됐어요. 지역 주민이 주도해서 관광 생태계를 만드는 DMO형 사업에서 예산 지원을 받아 하동 버스 정보 서비스(뷔다)도 만들어 보고 하면서 불평만 할 게 아니라 창업해서 일을 만들어 보고 지역의 문제도 해결해 나가야겠다고 결심했죠. 


다른파도의 사업 분야가 디자인과 IT 서비스인 점이 흥미로웠어요귀촌하면 농사를 짓거나 F&B, 공간 창업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제가 하동에 내려와서 머릿속에 그리던 창업을 바로 하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지역에서 IT 사업은 진입 장벽이 좀 높더라고요. 그런데 경민 님을 통해 디자인 수요처가 넓다는 걸 알았어요. 디자인은 결과물이 눈에 바로바로 보이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의 풀이 소상공인부터 기업까지 다양하거든요. 여기에 제 기술을 보탠다면 일을 좀 더 효율적이고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함께 ‘다른파도’를 시작하게 됐죠.


본인의 자산을 잘 활용해서 수요를 만드셨네요다른파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나요.  

소상공인 메뉴판, 명함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정말 큰 규모의 작업까지 다양해요. 최근에는 작은 단위의 일은 에이전시처럼 주변 프리랜서 디자이너들한테 기회가 돌아갈 수 있게 연결해 주고, 저희는 주로 지역의 농축산물 패키지 디자인이나 상품, 공간 디자인 같이 팀으로 할 수 있는 큰 단위의 사업들을 찾아서 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저는 프로젝트 매니징하는 툴이나 슬랙 봇 같은 걸 계속 개발해서 저희 디자이너분들이 생산성을 높이고 업무에 잘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죠.


생산성 툴을 직접 개발하신다고요기존 솔루션 업체들과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요.

서울은 일할 사람을 구하기 쉬우니까 솔루션을 개발 안 해도 되거든요. 그런데 지역에서는 안 그렇단 말이에요. 지역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굉장히 귀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인력난을 해결할 방법은 기술이고 그래서 솔루션을 판매하는 게 유의미할 거라고 봤어요.

지역에 있는 제조사 대표님들은 사람이 귀한 걸 너무 잘 아시니까 무조건 우리 아주머니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 걸 만들어달라는 니즈가 있죠. 기존 SI¹⁾ 업체들에서 만든 ERP²⁾나 RPA³⁾ 솔루션들은 엔드유저를 고려하지 않아서 사용성이 별로예요. 반면, 저희는 원래 디자인 업무를 해왔기 때문에 엔드유저의 관점에서 괜찮은 UI/UX의 업무용 툴을 만들어 드리고 있어요. 그리고 빨리 만들어 주는 거예요. 저는 코딩을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웬만해서는 노코드 툴로만 만들어요. 지역에서는 역시나 프로그래머를 구하기가 어려우니까 기획자도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 스택을 만들어 놓는 거죠. 그래서 좀 빠르게 소통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1) SI :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정보시스템에 관한 기획에서부터 개발과 구축, 나아가서는 운영까지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로 이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를 시스템통합 사업자(system Integrator)라고 한다.
2) ERP : 기업 내 경영 활동 프로세스들을 통합적으로 연계해 관리해 주며, 발생하는 정보들을 서로 공유하고 새로운 정보의 생성과 빠른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전사적 자원관리(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시스템을 말한다.
3) RPA: 로보틱 처리 자동화(Robotic Process Automation)는 사람이 컴퓨터로 하는 반복적인 업무를 로봇 소프트웨어를 통해 자동화하는 기술이다.


인력이 부족한 지역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솔루션이네요.

하다 보니까 깨닫게 됐어요. 인구 소멸 지역이기도 하고 저희가 직접 가게를 운영해 봤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자원이고 지식인 것 같아요. IT 기술의 핵심은 인간의 힘을 줄여주는 데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이 귀한 로컬에서는 더욱더. 이렇게 계속 노동력과 반복 작업을 줄여서 지방에 있는 기업들도 수도권과 비교해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중요한 사업 모델이에요.

최근에는 빅페리컴즈(BIG FERRY COMES)’라는 로컬 그로서리 스토어도 오픈하셨죠.

빅페리컴즈는 옛날 화개장터에 나룻배(ferry)가 왔다 갔다 하며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고, 주민들의 교류가 일어나는 기분 좋은 장날의 풍경과 감성을 녹여낸 브랜드예요. 하동이 지리적으로 섬진강 하구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고, 경상남도 서쪽 끝에 전라도와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보니 다양한 문화가 섞이며 만들어 내는 임팩트가 엄청나게 컸을 거로 생각해요. 저희도 전국의 로컬 크레이터 제품들을 최대한 많이 소개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창구 역할을 하고자 해요. 이 가게가 단순히 매출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임팩트가 있거든요. 저희가 디자인 그룹인데 우리가 운영하는 공간이 없으면 물리적인 증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디자인이 필요한 고객분들이 생기면 저희는 저희 가게로 모시고 와서 우리랑 작업하면 이 정도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보여주면서 설득하고 영업하는 거죠.


다양한 사업들을 시도하고 계시는데장기적으로 강희님이 그리는 다른파도의 모습이 있을까요.

결국에는 저희만의 브랜드를 가지는 게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돈 벌고 싶어서 창업했는데 현재는 자금이 부족하니까 남의 일을 훨씬 많이 하거든요. 장기적으로는 단순히 용역을 맡는 게 아니라 1:1의 동등한 관계에서 이름을 걸고 콜라보레이션 형태로 협업할 힘을 가져야죠. 빅페리컴즈 자체가 훨씬 유명해지고 계속 지역의 이야기들을 잘 만들어서 지역 콘텐츠 기업이 되길 바라는 거거든요. 그리고 맞춤형 솔루션도 좀 더 범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개발해서 저희 제품을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는 이상적인 형태로 만들고 싶어요.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다른파도의 성장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습니다.

제가 돈으로 목표 잡는 거를 좋아하는데, 3년 안에 이루고 싶은 단기 목표는 제가 서울에서 벌었던 월급보다 조금 더 버는 거예요. 저희가 작년에는 자체 사업으로 인건비를 절반 정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됐고 올해는 우리 4명이, 내년에는 두 배 이상의 인원들이 지원 사업에 의존하지 않고 먹고사는 게 목표예요. 그래서 5년 뒤에는 적어도 한 열 명 이상이 지역에서 일하는 회사로 만들고 싶어요. 서울에 있는 기업에서도 우리한테 이직해 올 만큼의 매력적이고 반대로 우리가 이직 나가기에도 매력적인 상황이 되면 좋겠죠. 적어도 시골에 있는 스타트업을 고를 때 연봉으로 저울질은 안 하면 좋겠어요. 연봉은 동일한데 생활환경은 더 좋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선도 기업이 되고 싶어요.


*해당 인터뷰는 2023.06.30에 발행된 뉴스레터 <안녕시골>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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