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유 Jul 07. 2023

맛의 모험

어릴 적 우리 집 식탁은 연장자이신 할머니와 아빠에게 맞춰 무말랭이, 콩잎, 고추장아찌 같은 경상도식 반찬들이 주를 이뤘다. 엄격한 밥상 교육 덕분에 내게 주어진 한 그릇의 밥과 국은 싹 비워야 했기에, 맛이 있든 없든 군말 없이 먹었다. 그리고 그 맛에 길들었다. 편식하는 것 없이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어서 어른들의 예쁨도 받았다. 하지만 ‘아무거나 다 잘 먹는 아이’였던 내게도 쉽사리 손이 가질 않는 반찬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가지무침'이다.

엄마는 가지를 쪄서 조물조물 양념에 무쳐 주셨는데, 아무리 어른 입맛에 길든 아이라도 검 보라색의 흐물흐물한 형체의 가지 반찬을 좋아하기란 쉽지 않았다.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지.”라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젓가락질 열 번 중 한 번꼴로 가지무침을 입에 넣더라도 물컹한 식감과 입안에 물기가 차는 듯한 느낌이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반찬이나 밥과 함께 섞어서 먹거나 맛이 채 느껴지기도 전에 꿀꺽 삼켜버리곤 했다. 엄마의 식탁을 떠나 내 밥상의 주도권을 갖게 된 성인이 되면서 가지와의 ‘거리 두기’는 본격화되었다. 가지는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찬이 아니기도 했고, 그리 좋아하지 않는 가지를 굳이 내 손으로 사 먹을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간 여의도의 한 생선구이 식당에서 가지 반찬이 나왔다. 식당은 직장인들이 떠나고 난 저녁 시간에도 식사 겸 반주를 하려는 손님들로 제법 북적댔다. 생선구이 전문점이라 그런지 10종이 넘는 다양한 생선구이와 조림, 탕 메뉴들이 있었고 우리는 탕과 구이 하나씩을 주문했다. 근처에서 근무하는 친구 말에 따르면 직장인 사이 소문난 맛집이라 점심시간에는 줄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메인요리를 기다리며 한 상 가득 차려진 기본 반찬을 하나둘 맛보기 시작했다. 멸치볶음, 버섯볶음, 단호박 조림……. 허기를 달랠 겸 하나둘씩 집어먹는데 세상에, 열무김치까지 맛있었다. 자취 n 년 차에 접어들다 보니 화려한 그 어떤 요리보다도 정갈하고 담백한 밑반찬들을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8~9가지나 되는 기본 반찬만으로도 밥 한 공기는 거뜬하게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쯤 되니 테이블 한쪽에 놓여있는 가지튀김인지 가지무침인지 알 수 없는 가지 반찬을 더 이상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바삭한 튀김옷을 입고 윤기가 나는 가지튀김을 집어 반신반의하며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 순간, “이거 뭐야?!‘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내가 알던 가지의 맛이 전혀 아니었다. 그날 내가 먹은 가지는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고소했으며, 짭조름한 양념 맛까지 잘 배 있었다. 다시 한번 먹어보았지만, 엄마가 해주던 가지무침과는 달리 물기가 없고 쓴맛도 없었다. 나는 결국 가지 한 접시를 다 비우고 리필까지 해서 두 접시나 해치웠다.     

그날 이후로 나는 새로운 식당의 메뉴에 가지 요리가 있으면 주문해서 맛보곤 한다. 가지 덮밥, 가지튀김, 가지탕수 등 가지를 주재료로 한 다양한 요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집에서 백종원 레시피를 따라 가지볶음 요리를 시도해 보기도 했다. 물론 그 생선구이 식당도 기회가 될 때마다 가서 가지튀김을 맛있게 먹고 온다. 가지의 신세계를 열어 주었던 그날만큼 놀라운 맛을 또 느끼지는 못했지만 분명한 건 내가 갖고 있던 가지 맛에 대한 편견이 와장창 깨졌다는 것이다. 내가 뒤늦게 가지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이 나이가 들면서 내 입맛이 변한 탓인지, 아니면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고 하는 튀김의 마법 때문인지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어릴 때 먹어본 엄마의 ‘가지무침’이 가지 요리의 전부인 줄 알고 “난 가지 싫어해” 혹은 “나는 가지 별로더라고.”라며 내 세계를 좁혀버렸더라면 평생 가지의 맛을 오해하고 살았을 거라는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나 다양한 가지 요리법이 있고, 요리 방식에 따라 다른 맛과 식감을 낼 수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사회 초년생 때 선배들을 따라 처음 마셔본 쓰디쓴 아메리카노가 그랬고, 동기들 따라 처음 먹어본 밍밍한 평양냉면이 그랬다. 처음엔 이런 걸 왜 돈 주고 사 먹는지 이해가 안 갔던 음식들이 두 번, 세 번 경험할수록 뒤돌아서면 생각나고, 어느 순간부턴 내 발로 먼저 찾게 되고, 그 맛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한두 번의 부정적인 경험으로 섣불리 판단해 버리거나, 내가 경험해 본 세계가 전부인 양 문을 닫아버렸더라면 영영 알 수 없었을 세계이다. 물론, 가지나 아메리카노, 평양냉면 따위의 맛쯤은 몰라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그 맛을 아는 지금의 삶이 엄청나게 나아졌다거나 행복하다고 할 수 없듯이.

그저 오늘도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먹고 또 먹어본다. 나에게 맞는 맛을 발견하기 위해, 한 뼘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삶을 위해, 익숙함의 경계를 슬쩍 넘어가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터뷰] 삶의 레퍼런스를 찾아서(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