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친구_영월 태원 님
인디문학1호점 대표 | 나무 | 미니멀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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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할 영(寧) 넘을 월(越),
번잡한 도시 생활에 지쳐 돌아온 그에게 영월은 이름 그대로 편안하게 넘길 수 있는 곳이었으며, 삶의 뿌리를 내리고 싶은 곳이다. 이곳에서 여유롭고 고요한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그는 하루하루 치열하게 움직이고 버텨낸다. 물 밑에서 세차게 발짓하는 우아한 백조처럼.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의 삶은 도시에서나 지역에서나 험난한 물살에 맞서고 버텨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오늘이 안녕히 넘어가기를, 부디 내일이 무사히 넘어오기를 바라며.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윤태원이라고 합니다. 영월이 고향이고 이십 대 때 외지로 나갔다가 서른 즈음 다시 돌아왔어요. 지금은 산속에서 출판사와 독립책방을 운영합니다.
반갑습니다. 태원 님 자신을 ‘나무’라고 표현하셨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제가 스무 살 이후로는 외지에서 계속 지내왔어요. 서울에 살면서 월세 집들이 그러하듯이 집 계약이 만료될 때마다 집을 여러 번 옮겨야 했고요. 한때는 여행에 빠져서 여기저기 막 많이 돌아다녔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서는 좀 한 곳에 정착해서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이전해 온 여기에 뿌리를 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공터에 나무 한 그루도 심었어요. 저도 이 나무처럼 이제 다른 데 옮기지 않고 여기에 좀 정착해서 잘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성인이 되면서 영월을 떠나 대도시에서 생활하다가 어떻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어요?
저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후 애니메이션 회사의 스토리 작가로 잠깐 일했었어요. 일 때문에 서울살이를 시작하게 됐는데 제가 딱 뉴스에 한창 나오던 ‘88만 원 세대’이거든요. 그러니까 월급을 받아서 세금을 제하면 남는 게 88만 원이라서 88만 원 세대라고 하는데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을 해서 지내는데 월급 88만 원으로는 너무 힘든 생활이 됐던 거죠. 그러다가 게임 회사로 이직해서 기획자로 지내면서 몇 년 더 일했는데 사실 저는 서울에 친구도 없고, 아는 데도 없고, 연고가 없다 보니까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해야 할까요? 되게 많이 힘들기도 힘들었고 외롭기도 외로웠고 좀 그렇게 지냈어요. 그러다가 이제 서른을 앞두고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들이 알아주는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아니면은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자고 결심하게 되었죠. 결국에는 이렇게 내려오게 되었고요.
아무리 고향이라고 해도 성인이 되어서 다시 정착하려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고향 내려온 이후로는 제가 서울에서 했던 그 어떤 경력도 살릴 수가 없더라고요. 애니메이션 스토리 작가라거나 기획자를 구하는 포지션 자체가 없다 보니까 정말 처음에 내려와서는 아르바이트만 했었어요. 한동안 리조트, 마트에서 몇 개월 일해서 모은 돈으로 배낭 하나 메고 해외 나갔다가 오는 생활을 반복했죠. 당시 여행에 대한 로망이 가득 차 있던 때라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도 1년 다녀오고, 알바해서 또 여행 다녀오고, 어느 날 다시 알바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겁이 나더라고요. 평생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확 들길래 안되다 싶었죠. 나이도 삼십 대가 되다 보니 좀 더 안정적인 내 사업을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할 줄 아는 게 없다 보니 그나마 친숙한 책방을 떠올리게 된 거죠.
처음부터 영월에 가서 책방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군요.
책방은 정말 생각도 안 하고 있었어요. 그때가 한참 저도 호주 워홀 갔다 와서 책을 내기 시작하고 출판사 차려놓고 독립출판 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때였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영월에 독립서점이 없었다는 것도 크게 한몫했죠. 지역에 동네서점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좀 희소성이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실 책방이라는 게 읍내에 있어도 사람이 많이 오는 매장은 아닌데 최근 산골로 이전하셨더라고요.
읍내에서 지낼 때도 저는 항상 너무 번잡스럽다고 느꼈어요. 특히나 읍내에선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제가 냄새나 소음에 예민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예민하다 보니 공동생활을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막연하게 진짜 아무도 없는 산속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마음 같아선 당장 산속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현실적인 문제들, 가장 큰 비용적인 문제가 있다 보니까 생각만 했고 서점을 한 4년 정도 하다 보니 기회가 되었죠. 솔직히 저도 제가 진짜 이렇게 얼마 안 걸려서 산으로 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소매점 운영에 유리한 위치는 아니잖아요.
제가 서점 운영으로 큰돈을 벌거나 땅 사서 산으로 간 건 아니고요(웃음). 결심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갖고 있던 것들을 정리하고 넘어오게 된 상황이 되었죠.
사실 강원도에는 카페나 다른 매장들이 이런 콘셉트로 산속에 있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그래도 처음에는 걱정이 많이 되긴 했죠. 내가 여기에 서점을 했을 때 정말 먹고살 수가 있을까를 좀 고민을 해봤는데 그래도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읍내에 있을 때도 사실 지역 주민보다는 손님의 대부분이 영월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었거든요. 그래서 읍내에 있거나 산속에 있거나 어차피 찾아오실 분들은 찾아오겠다 싶어서 행동으로 옮기게 됐죠. 이전한 지 6개월 정도 지났는데 실제로도 방문객 수는 정말 많이 줄었지만, 책 판매량과 매출은 더 늘었더라고요.
정말 감사한 일이네요. 산속으로 이전하고 나서 또 달라진 점이 있나요?
저는 산속에 들어와서 정말 좋고, 너무나 여유롭게 잘 지내고 있는데 이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이 좀 생겼어요. 이렇게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비용이 들어가야 하니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으로부터 완벽하게 독립을 할 수 없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히려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거를 요즘 많이 느끼고 있고요.
그래도 제가 꿈꾸는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갔다는 뿌듯함과 첫발을 내디딘 성취감도 커요. 제가 마을을 만드는 게 꿈이거든요. 이 산에 있는 골짜기를 다 사서 저는 서점을 운영하고 어딘가에는 게스트하우스, 주점, 식당을 지어서 제가 여행을 만났던 사람들이나 지인들이 운영하게 하는 거죠. 크리에이터 타운 같은 마을을 만드는 게 삶의 목표인데 한 30년 정도 걸릴 것 같지만 산속으로 왔으니, 첫발은 내디딘 셈이죠. 동시에 이거를 지켜내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어려움도 같이 경험하는 중이에요.
제가 책방을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인플루언서 분들과 영월 한 달 살기 에세이집을 만드셨어요. 청춘유리, 이슬아 작가 같은 분들과 신선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지역을 아카이브하고 홍보해서 반응이 뜨거웠죠.
천운이 따라줬다고 저는 생각해요. 서점을 처음 시작했을 때 딱 6개월만 운영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었고 딱 6개월 치의 임대료를 낼 수 있는 비용만 가지고 있었거든요. 근데 3개월이 지나니까 돈이 다 떨어져서 정말 정말 임대료를 낼 수 없게 돼버린 거예요. 마침 저희 서점을 좋아해 주신 단골손님 중에 공무원분이 계셨는데 이야기 나누다가 이런 금전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고 먼저 협업 제안을 주셨어요.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게 한 달 살기 시리즈예요. 기획서를 작성해 갔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담당자분은 물론이고 팀장, 과장님들까지도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그때부터 함께 작업하게 되었죠.
지자체와 일하는 게 쉽지 않다고들 하는데, 한방에 통과되었다니 놀라운데요.
저는 이런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를 뒤늦게 알았어요. 저는 서너 명의 공무원이 지역의 문화나 삶을 바꾼다고 믿어요. 지금도 제가 농담 삼아 은인이라고 부르는데 그 단골손님 덕분에 영월 군청과 일하게 되었고 한 달 살기 시리즈 첫 번째 편 반응이 굉장히 좋다 보니 계절별로 만들게 되었죠.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청춘유리 작가님같이 유명한 여행 인플루언서가 한 달이라는 시간을 뺄 수도 있었고요. 정말 운이 잘 맞았던 감사한 일이죠.
지역 소식지 <살기좋은영월> 제작에도 참여하고 계신데요, 최근에는 편집부 북토크 행사도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셨어요. 디제잉과 전시까지 신선하더라고요.
네, 한 달 살기 시리즈 담당하셨던 주무관님이 다른 부서로 옮기면서 지역 소식지를 맡게 되셨거든요. 이전에는 신문 형태로 발행되던 거를 올해 종합 매거진으로 개편하면서 함께 작업하게 되었고 이를 기념해서 영월에선 처음으로 오프라인 행사까지 준비하게 됐죠. 다른 지역들 사례를 많이 찾아봤는데 명예기자단까지는 많이 하지만 저희처럼 주민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기획 회의를 열고 콘셉트 논의하며 적극적으로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는 경우는 잘 없더라고요. 자부심을 느끼고 즐겁게 활동하고자 행사도 이색적으로 만들어봤어요.
영월이 지닌 매력이나 특별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이 질문이 저로서는 답하기 제일 곤란한데요. 왜냐하면 저는 여기가 고향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매력이라고 할 만한 게 안 느껴져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서 자연경관이나 역사적 의미, 지형 같은 게 특색 있지도 않고요. 그래서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렇게 독립책방을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이런 책방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지원사업과 청년을 위한 정책들이 잘되어 있기에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 좋은 지역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시골 생활을 꿈꾸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시골에서 살아'가기' 위해 버티는 게 필요해요. 말 그대로 살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하거든요. 물론 여유로움과 유유자적함이 환상만은 아니에요. 분명히 있긴 한데 매일매일이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아셔야 해요. 너무나 부푼 희망과 꿈만 가지고 시골에 내려오는 건 반대하는 입장이기도 하고요.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잔디를 2주에 한 번씩 깎아줘야 하고, 3주에 한 번씩 약도 쳐줘야 하고, 뱀 나오고 쥐 나오면 잡아야 하고, 벌레도 엄청 많고요. 이런 생활에 밀접한 것들부터 해서 유지비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는 점 때문에 살아가기 위해 들이는 힘과 노력은 도시나 시골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요. 결국에는 살아내기 위해서 어디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버텨야 하는데 저는 조용하고 유유자적한 환경이 좋아서 시골을 선택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해당 인터뷰는 2023.12.8에 발행된 뉴스레터 <안녕시골>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