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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녕 Feb 13. 2023

No Pain, No Fail

실리카겔의 No pain을 듣고

 노래 한 곡으로 삶을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라며 고개를 여러 번 강하게 끄덕인다. 며칠 전 이 곡이 한국대중음악상의 올해의 노래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 두었다. ‘후보’라는 후광 효과는 꽤 쏠쏠하다. 노래가 더 특별하게 들린다. 최근 '단순한 열정’이란 프랑스 소설을 읽었는데 내용은 흔한 불륜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작가는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니 에르노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에게 주는 글이라면 숨겨진 의미나 의의가 있을 거라며 두 번이나 더 읽어보았다. 이 노래는 과연 어떨까. 갑자기 리스너에서 대중음악상 심사위원 모드가 된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사이키델릭 한 기타 리프가 여덟 마디 째를 지나갔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웅웅 거리기 시작했다. 이 곡은 밴드 실리카겔의 ‘No pain’이다.


 실리카겔은 예전부터 이름을 알고 있던 인디밴드였다. ‘새소년’이란 인디 밴드를 데뷔 때부터 좋아했는데 이 밴드를 깊게 파다 보니 실리카겔이 같은 레이블 소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가볍게 들어봤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꾸물꾸물하고 알맹이가 없는 형광색 슬라임을 만지는 듯 미끌거렸다. 가사는 잘 기억나지 않고 ‘사이키델릭’이라고 하는 요상했던 사운드를 기억한다.


 'No pain' 역시 전주는 익숙한 실리카겔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밴드의 보컬이자 기타를 담당하는 김한주의 목소리로 1절이 시작되는 순간 동네 공원에서 거꾸리를 탄 듯 나의 세상이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소외됐던 사람들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노이즈가 잔뜩 섞인 보컬의 목소리는 다른 차원으로 가는 열쇠이다. 어느 깊은 밤, 성인 남성보다 더 길게 자란 갈대가 우거진 숲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각자 한쪽 손에는 횃불을 들고 둥글게 원을 그리게 서며 어떤 의식을 치른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의식을 시작하기 전 주문이다. 3분 39초 길이의 노래는 이런 영화 같은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이 글의 첫 문장에 대한 답을 이제야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노래를 듣는 내내 횃불의 뜨거운 기운이 날 덮치더니 내 안에 있던 외로움의 기운을 몰아 내버린다. 새벽은 나의 구석구석 빈자리를 발견하며 괴로워하는 시간이다.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막 레이저로 사마귀를 도려낸 것처럼 나의 결함이 더 쓰리고 선명하게 느껴진다. 집이나 회사에서, 아니 누군가를 만났을 때 더 잘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근원적 허전함에 몸부리 치던 순간 이 곡이 딱 맞는 조각처럼 들어왔다. 나 자신이 부족하게 보일 때 다시 한 발 내딛는 횃불이 된다. 참 이상한 노래다. 이한철의 ‘슈퍼스타’처럼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고 직접적으로 응원하지도 않고, 마미손의 ‘소년점프’처럼 ‘한국 힙합 망해라’라며 저주를 퍼붓지도 않는다. No pain은 활력이 넘치는 비트와 기타 스트로크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단어들을 뱉어낸다. 그 무심해 보이는 말들이 무의미하지 않고 심장에 턱턱 내려앉는다.


우리 만의 따뜻한 불, 영원한 꿈, 영원과 삶
No pain no fail 음악 없는 세상
No where no fear 바다 같은 색깔

 이 오묘한 가사들이 신기하게도 위로가 된다. 물론 이 전에도 음악은 항상 내 곁에서 위로가 되곤 했다. 멍하니 뇌를 놓으면서 현실 세계로 도망가는 듯한 몽환적인 노래들이었다. 새소년의 ‘긴 꿈’, Adoy(아도이), 검정치마의 ‘Hollywood’나 ‘Everything’ 같은 노래들... 귀를 파고드는 사운드는 내 눈까지 도달해 현실을 포토샵 블러 처리를 한 것처럼 흐리게 만들어 버린다. 


 이 노래들이 나오던 장소들은 비슷했다. 원래의 색을 구분할 수 없는 오묘한 조명과 네온사인들, 차가우면서도 침착한 음악이 나오는 공간이었다. 성수동에 있는 피치스(Peaches)는 파란색과 분홍색의 조명 속에서 어느 회사의 자동차의 차를 전시하고 색이 구분되지 않는 도넛을 팔았다. 사람들은 긴 줄을 이루며 문을 두드리고 앞다투어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쫓는다. 단순히 인스타그램처럼 SNS에 인증을 하기 위한 이유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실이 힘드니까 도망가고 싶지 않을까. 한 잔에 5천 원 정도의 커피값을 내면 도망칠 수 있으니까. 나도 그랬다. 그런 이미지에 집착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고작 두 시간 정도였다. 미래에 대한 막막함은 오직 그 시간만큼만 유예할 수 있었고 5천 원은 수중에서 사라졌다. 현실은 여전했다. 내가 도망친 그 몽환적 세계는 목적지가 없었다. 비정형적인 리듬으로 떠돌아다닐 뿐이다.


 작은 입자들도 뭉쳐야 먼지가 되고 눈에 보이고 거슬린다. 나는 먼지만큼의 존재감이라도 갖고 싶다. 그래서 이 노래가 좋았다. '소외된 자들 모이라'는 가사가 작은 위안이 된다. 이 노래는 제목부터 완벽한 진통제(Painkiller)이다. 음악이 세상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싸이월드 감성이 우습지 않다. 노래가 던지는 메시지가 지금 나에게, 내 또래의 세대에게 필요한 정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모이라고, 모이자고.


https://youtu.be/JaIMSzE5yLA

실리카겔 'No pain'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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