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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녕 Feb 05. 2023

웨이팅이 싫어요 - 밥 한번 먹기가 이렇게 어렵다

맛집 찾고 예약 하고 기다리는 인생 극악 난이도 외식에 대해여

 밥 한번 먹기가 이렇게 어렵다. 주말에는 가끔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고 싶지만, 요즘은 영 내키지 않는다. 만나는 김에 점심이나 저녁도 함께할 텐데 식당을 찾는 일이 지긋지긋하다. 서울에 산 지 어느새 십 년이 훌쩍 넘었으니 이 짬을 활용해 맛집을 찾는 일은 자연스럽다. 게다가 카카오지도에 미리 저장한 리스트도 있지만 이 피곤함은 참을 수가 없다.


 이 피로한 사전 준비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만약 강남역 주변에서 만날 예정이라면 ‘강남역 맛집’이라는 키워드로 네이버지도와 카카오지도에 검색을 한다. 보통 식당의 별점이 높은 순으로 뜨지만, 간혹 광고로 상위에 노출하는 식당도 있으니 구별해야 한다. (광고를 피하는 나는 아이러니하게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네이버지도와 카카오지도 모두 사용하는 이유가 있다. 카카오지도에는 없지만 네이버지도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업체도 있다. 하지만 네이버지도는 ‘영수증 리뷰’라는 서비스로 인해 별점이 다소 높은 쪽으로 왜곡되는 경우가 있으니 카카오지도도 확인이 필요하다.


얼마 전 동네에서 유명한 스시집을 갔는데 네이버 영수증 리뷰를 남겨주면 음식값을 꽤 많이 할인하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점 조작에 이용당하는 모양새가 되어 씁쓸했다. 하지만 주문한 스시의 맛은 훌륭했고 굳이 별점을 높게 주려 애쓰려 하지 않아도 그 맛 그대로가 별 다섯 개였다. 가만히 있어도 유명해질텐데 왜 리뷰 이벤트를 하는지 이해 하기는 어려웠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가고 싶은 식당의 카카오지도의 별점까지 확인하면 어느 정도 후보가 나온다.


 야심 차게 고른 식당 리스트를 친구들과 있는 단체 채팅방에 공유한다. 각자 추천한 리스트를 비교하면 최종적으로 한두 개의 식당이 정해진다. 아직 이 긴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맛집은 나만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붐비기 마련이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로 검색하며 이 식당이 웨이팅(대기)가 많은 곳인지 테이블링, 캐치테이블 아니면 네이버예약 같은 서비스로 예약할 수 있는지 찾아본다. 특히 블로그 후기를 보면 유용한 팁이 꽤 많다. 식당을 찾아가는 법, 꼭 먹어봐야 하는 시그니처 메뉴, 여러 명이 갔을 때 똑똑하게 메뉴를 주문하는 법 등 말 그대로 ‘팁’이지만 요즘은 모르면 손해 보는 기분이라 알아간다.


 밥 먹는 시간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데 이런 준비 과정에 두 배 이상을 쏟는다. 나의 MBTI의 끝자리가 ‘J’라서 유독 이런 계획을 짜는 것은 아니다. 인구 천만 명에 육박하는 이 서울이라는 도시는 게으른 자도 움직이게 만든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건설적인 의지는 아니다. 평일은 빌딩 숲, 주말은 사람 숲에서 살아야 하는 밀도 높은 도시, 세상에 널린 식당은 많지만 먹을 만한 식당은 많지 않으니 결국 기다릴 수밖에 없는 환경. 또 다들 얼마나 바쁘게 사는가. 한 달에 한 번의 만남도 소중하니 이 귀한 만남을 아무 곳에서나 대강 보낼 수 없다. 시간, 공간, 사람 이 모든 자원이 한정된 세계에서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에서 몸을 움직인다. 정글에서 생존을 고민하는 야생 동물과 동일한 움직임이다.


 얼마 전 외식 스트레스의 정점을 찍었다. 을지로에 있는 모 순댓국집이고, 서울에 지점을 여러 개 가진 맛집이라고 했다. 거리마다 순댓국이 널려 있지만 이 집의 맛은 특별하다는 친구의 추천으로 가기로 했다. 테이블링 앱으로 대기를 걸어 두고 식당 앞에 있는 태블릿에 보이는 네 자리 숫자를 입력해야 예약이 확정되는 시스템이었다. 이미 두 번 이상 방문하는 시도를 했었는데 친구와 내가 서로 회사의 바쁨이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루었고 마침내 세 번째 도전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테이블링을 예약한 친구와 내가 손발이 맞지 않았는지 예약 시간은 삼십 분이 밀려 버렸다. 추운 날씨에 딱 맞는 순댓국집이지만 이 추운 날씨에 삼십 분을 기다리는 일은 힘들었다. 구천 원짜리 순댓국 한 그릇 먹는 일이 이렇게도 어려운 미션이었나. 회사 일의 연장선인 것처럼 답답함에 짜증이 밀려왔다.  ‘웨이팅’이란 말도 지긋지긋해져 버렸다. 한국어로 ‘대기’라고 하면 안 되나, 영어로 웨이팅이라고 말하면 기다리는 이 지루함이 덜 구질구질해지고 고상하게 느껴지려나. 아무튼 이 기다림 없이 편하게 밥을 먹고 싶다.


 대학생 때 누리던 밥 먹는 여유가 그리워진다. 수업이 끝나면 시간이 되는 친구들이 동아리방이나 학교 광장으로 모인다. 각자 근황 이야기나 잡담을 나누면서 점심 메뉴를 짧게 정하고 어슬렁어슬렁 식당으로 걸어간다.  먹는 메뉴는 대개 비슷비슷하다. 보통 한 끼에 5-6천 원 정도 “사장님 여기 콩불* 4개요” 주문하면 끝이다. 사실 그때는 학교 앞에서 무엇을 먹어도 상관없었고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은 효율성과 가성비를 따져가며 움직이는 탓에 밥을 먹기 전에 이미 ‘소모’가 된다. 이 상황에서 밥맛마저 기다림의 보상이 되지 않으면 화가 난다.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최소한의 ‘먹는’ 행위라도 편하면 안 될까. 느긋하고 싶다. 평일에는 세상의 시간보다 몇 초 빨리 살고 있으니, 주말에는 그만큼 느긋하게 보내고 싶다. ‘오늘 무엇을 먹을까’에 피로하지 않은 삶이 그립다.


*콩불: 콩나물과 양념불고기를 철판에 볶은 음식이자 이 음식을 파는 식당 브랜드 이름이다. 일 인분에 5,000원이라 대학가에 지점이 많았다.


평일 점심시간 회사 근처에서 줄 서서 먹은 한우 육개장
주말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기다렸던 성수동의 한 솥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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