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올해도 한 살 먹었다. 바로 몇 시간 전 12월 31일의 밤은 한 방송사의 연기대상 시상식을 보고 있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수상 소감을 말하는 배우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잠자리에 들려고 텔레비전을 끄는 순간 텔레비전의 검정 모니터에 잠옷을 입고 있는 ‘내’가 있었다. ‘으아악’ 짧은 비명과 함께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가득 움켜쥐었다. 처량한 내 모습, 하는 일도 없이 나이만 먹은 기분이었다. 대상이 명확하지 않지만 무엇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체력이나 자신감일까, 아니면 나이로 인해 각종 복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청년’이라는 절대적인 지위일까. 어두운 방 침대 속에서 1이 더해진 내 나이를 여러 번 말해 보았다. ‘서른셋’, ‘저는 서른세 살입니다’, ‘삼 학년 삼 반입니다.’ 여러 번 곱씹었다. 그렇게 나이와의 어색함을 털어내다 잠이 든다.
새해의 아침은 굴 떡국으로 출발한다. 물에 잠깐 불린 흰색 떡국떡, 굵은소금에 박박 씻은 굴 일곱 개, 두 숟갈 정도의 멸치 액젓, 일 년에 자주 먹지 않아도 여러 해를 반복하니 떡국은 능숙하게 잘 끓인다. 재료를 넣는 순서, 적당한 간을 내는 양념의 양은 찾아보지 않는다. 이런 능숙함이 세월이 주는 여유일까. 나이를 먹었다고 몸서리치던 몇 시간 전과는 다른 태도이다. 일 년에 한두 번 먹는 떡국이지만 여러 번 끓이는 경험이 쌓이니 익숙해진다. 완성된 굴떡국을 한 숟갈 입에 넣으면 시원하고 따뜻한 맛이 난다. 나이를 한 살 먹는 일이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다.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라는 명언이 있다. 우리는 늘 선택하며 산다. 나의 결정을 기다리는 일들이 숨 쉬듯이 컨베이어를 타고 밀려온다. 가끔은 쌓이고 쌓여서 결국 몇 주 밀린 빨래처럼 부피가 부풀어 버린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게 되면 보통 ‘지르듯’이 결정을 내리는 나였다. 지난 12월 겨울 코트 한 벌을 장만하려고 알아보던 참이었다. 결국은 사지 못했다. 캐시미어 비율이 몇 퍼센트인지, 평소 입는 옷과 잘 어울리는 색상인지, 실제 제품을 구매한 사람들의 후기가 어떤지 등 필요한 정보를 자세하게 찾아보다 에너지가 떨어지고 말았다. 코트 한 번뿐이겠는가. 회사가 힘들다며 여기저기 덜컥 이력서를 내밀 때, 이사 갈 집을 고르기 위해 부동산 여기저기에 발을 들일 때, 손가락 개수보다 많이 선택지를 쌓아 두었다.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초조하게 버티다 순간의 감정으로 결론을 내렸다. 내 옷장에는 대학에 다니던 이십 대 초중반에 입었던 옷이 하나도 없다. 신중하지 못한 선택들이 후회와 함께 헌 옷 수거함으로 들어가 버렸으니까.
한두 살 먹다 보면 이제 지르는 일이 줄어든다. 마음속의 어디에서 ‘찜찜한’ 신호를 보낸다. 뇌가 ‘Yes’라고 나의 모든 세포에 명령을 내리기 전에 ‘이대로도 괜찮냐며’ 브레이크를 밟는다. 이 미묘한 감각은 작년 여름에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친한 분에게 좋은 조건으로 이직 제안을 받았다. 연봉도 지금보다 오르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 별도 보너스도 준다고 했었다. 돈을 떠나서 안면이 있는 분들이 두 분이나 계시니 적응도 꽤 수월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찜찜한 신호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친구의 소개로 점을 보러 갔다. 철학관이라고 불리는 점집은 신설동 어느 빌라촌에 있는 20평 내외의 방이었다. 특별한 간판도 표시도 없는 이곳에 대기업 임원, 기업인, 의사, 변호사 같은 소위 고위층들이 자주 다녀간다고 했다. 두근두근두근, 점을 봐주는 보살님은 내가 결정을 미적거리는 것 같으니 새 회사에 가지 말라고 했다. 오늘 처음 본 이에게 인생이 걸린 선택을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보살님의 조언은 내 찜찜함에 힘을 실어 주었다. 결국 이직을 포기하고 몇 개월 뒤 오래전부터 꿈꿔온 내 책을 발간했다.
새해를 시작하며 찜찜함이 다시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올해는 본업인 커리어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새로운 전셋집으로 이사 오고 전세 자금을 대출받으면서 진로 고민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거리에서 서면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높은 이자율이 나를 등 떠미는 것이었다. 이자율뿐이겠는가.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전기세와 가스비가 오르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나지 않고… 내가 입고 먹고사는 일에 그 누구도 날 위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나를 구원할 사람이 오직 나라면,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로도 충분할까.
다음 발을 디딜 목적지의 방향을 정했다. 내 삶에 영향을 주는 정책들, 그 정책이 논의하고 결정되는 자리에 가려고 한다. 연말에 가까운 지인에게 이 계획을 털어놓았는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선거에 나가 의원이 되지 않더라도 청와대나 국가 기관에서 민간 경력직을 종종 뽑고 있다고 했다. 앞뒤가 꽉 막힌 동굴에서 빛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하는 일을 그만두기는 어렵다. 다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빈칸뿐인 인생의 To do list에 할 일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이런 찜찜한 ‘덕분에’ 새해는 과감하게 출사표를 내민다. 방향만 정했을 뿐 이렇게 몇 자의 글자로 다짐하며 시작해 본다. 영화 어벤저스에서 브루스 배너 박사의 또 다른 자아 헐크가 생각난다. 다른 거대한 존재가 내 안에서 꿈틀대고 있다. 예전부터 그 속에서 내가 알아봐 주길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찜찜함의 정체는 내면의 소망이 보낸 간절한 신호가 아닐까. 올해 드디어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 기대가 되는 2023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