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이제 막 집을 나온 스무 살의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식기를 사용하고 팔팔 끓는 물에 소독하고, 수건을 세탁할 때 과탄소소다 한 숟갈을 넣거나 끈끈이가 강력한 돌돌이로 겉옷의 고양이 털과 먼지를 정리하는 일... 내 온전한 생활을 만드는 살림 하나하나를 배우고 있다.
한 달 전 동생과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를 왔다. 부모님의 품을 벗어난 지는 십 년이 훌쩍 넘었지만 주방과 거실, 각자의 방이 있는 온전한 '집'의 형태에서는 처음 살아본다. '통로'가 있는 집은 낯설다. 주방에서 내 방 사이의 거실, 주방과 화장실 사이에 좁은 복도... 계절 옷이나 대량으로 산 생필품을 쌓아두지 않아도 되는 빈 공간이라니, 이 사치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 어색함은 나만 느끼지는 않았다. 이사는 11월 마지막 주에 했는데 12월 둘째 주까지 우리는 원룸에 산 듯 행동했다. 거실에서 티비를 볼 때, 점심에 밥을 먹을 때 밤에 책을 읽거나 자기 전까지 어김없이 누군가의 방이나 거실에 셋이 쪼르르 모여 있었다. 원룸형 인간의 생활패턴이 깊이 스며들었나 보다.
원룸형 인간은 비정규직의 처지와 비슷하다. 먹고사는 일, 하는 일은 같은데 토대는 불안하고 마음은 빈곤하다. 잠도 잘 자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지내는 집이라도 여전히 원룸은 '임시'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다. 방의 한편에는 우체국 5호나 6호의 버리지 못한 빈 박스들이 남아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공간이다. 튼튼한 우체국은 박스는 이삿짐 싸기에 유용하니 버리기가 아깝다. 세면대나 싱크대, 집의 어딘가 한쪽이 고장이 나더라도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내버려 둔다. '포기'에 가깝다. 넓은 공간에 살고 싶은 욕구도 포기했는데 이 정도 고장쯤이야. 온전한 집에 살지 않아서 당연히 채워질 수밖에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차디찬 북극해를 유유히 떠돌아다니는 유빙처럼 그 살얼음 판의 추위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화이트톤의 서랍 겸 화장대와 스무 살부터 같이 살고 있다. 당시 온라인 쇼핑몰에서 10만 원대 후반을 주고 구매했는데 상단은 거울문이 좌우로 열리는 수납공간이, 아래는 삼 단 서랍장으로 구성된 가구이다. 화장대의 첫 번째 서랍은 '잡동사니'함이다. 새로 산 콘택트렌즈, 상비약, 검은색 머리핀, 영수증, 여권까지... 정확히 한 카테고리로 분류하기 어려운 물건들이 이 서랍에 자리를 차지했다. 머리핀에 집힌 내 머리카락, 먼지, 살구털 등이 난무하며 카오스 상태가 규칙이었던 서랍이 이사를 오며 변화를 맞이했다. 동생이 길쭉한 플라스틱 통 네 개를 넣고 화장품, 콘택트렌트, 머리빗, 잡동사니로 나름의 분류를 한 것이다. 마치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던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 시대가 탄생한 역사적인 일이랄까. 이곳에 질서를 만들 줄이야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노트북의 바탕화면에는 아이콘이 다 세어도 열 개가 채 되지 않는다. 업무의 성격이나 순서를 따져보며 내 나름대로 폴더의 세계를 추구했다. 연도 이름의 폴더 안에는 업무 유형 별로 1. 2. 3. 번호를 붙인 폴더가 있고 그중에 한 폴더를 들어가면 날짜나 업무의 순서대로 또 폴더가 만들어있고, 몇 번의 폴더를 건너뛰면 워드나 엑셀 형태의 파일이 있다. 하나의 파일을 보관하기 위해 여러 개의 폴더를 만드는 일이 비효율적일 때도 있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복잡한 폴더 체계가 큰 힘을 발휘한다. 급하게 파일을 찾아야 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업무를 요청받았을 때, 머릿속에 그대로 복사한 폴더 트리를 재조합하여 빠르게 일을 처리하게 된다.
15인치 노트북에서 20여 평의 집으로 세계가 넓어진다. 화장실 선반, 내 방의 책상 위, 냉장고, 가구와 가전마다 정리하는 방법이 있다. 펼쳐 놓고 살던 나의 삶에 오밀조밀한 단정한 변화가 만들어진다. 깔끔하게 제 자리를 찾은 물건을 보면 마음이 평안하고 뿌듯하다. 이게 진짜 사람답게 사는 걸까. 이제야 사람 답게 사는 이 법을 배운다. 새롭게 머무르게 된 이 공간은 물질적인 가구보다는 배움으로 채워야겠다. 아직도, 여전히 배워야 할 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