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되기 300일 전에 쓴 글
서른.
서-어-르-은
어른.
서른이 되면, 나는 '어른'이 될 거라 생각했다. 넓은 마음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곤란한 부탁은 정중하게 거절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서 몇 단계 앞서 생각하는, 그런 성숙하고도 똑똑한, '세상을 살 줄 아는' 어른이 될 것 만 같았다. 그리고 텔레비전에 나오던 그녀처럼 뾰족구두를 신고, 비싼 핸드백을 들고, 비대칭 숏컷 머리를 한쪽 귀 뒤로 슬쩍 넘길 때 상당히 섹시한, 카리스마 넘치는 여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하이고. 꿈도 참 컸지.
서른은 이상하게 무서운 나이다. 스멀스멀 서른에 가까워지다 보니 주기적으로 청첩장도 날아오고, 지인의 부모님 부고 소식도 심심찮게 들리고, 대학 4년 '칼 졸업'이 흔하지 않은 세대이기에 아직 사회초년생이 대부분이지만 이미 사회를 많이 알아버린 듯한 느낌이다. 신입사원 시절 사수의 잔소리에 쩔쩔 메며 퇴근 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안절부절못하던 그녀가 이젠 '일 못하는 요즘 애들'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으며 후배를 나무란다. 밤새고 노는 일은 무척이나 피곤하고 성가신 일이며, 점심, 저녁 그리고 그 전 후로 커피 약속 몇 탕씩(?) 서울 시내를 종횡하며 달리던 주말도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 미팅, 축제, 학점이라는 단어들과 멀어진 지 오래되었으며 연봉, '스드메', 출산이란 단어가 익숙해진다. 그 외에 익숙해진 단어엔 골다공증과 노후 준비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아는 것도 해낸 것도 아무것도 없는, 정말 그 어느 하나 없는, 여전히 엄마 아빠와 같은 지붕 아래 살고 있는, 계획적인 소비와 앞서 말한 노후 준비는커녕 통장보단 '텅장'이 익숙한 철없는 어른 아이다.
그러니까 무서운 거다. 이쯤 되면, 앞자리가 3으로 곧 바뀌는 시기가 오면, 나는 외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멋진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도대체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인 건지! 앞자리가 2로 바뀌면 입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나만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찬란한 청춘을 맞이할 거라 어른들이 그랬었는데, 나의 찬란한 청춘은 어디로 다 가버린 걸까. 입시라는 전쟁을 치르고 달려간 대학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또 다른 경쟁의 시작이었다. 학점, 인턴십, 공모전, 학회/동아리 임원직, 조교, 봉사활동, 해야 할 건 많았고, 채워야 된다는 것도 많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게으름과 나태함을 '머리 좋음'으로 이해하고 천천히, 알차게 실력을 쌓기보다는 마감일 1초 전에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제출하는 악습관을 유지하고, 단단하게 굳히는 시기가 이름하여 나의 찬란한 20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게는 서른이 될까 말까 하는, 지금 이 시기가 변화와 새 출발을 꾀할 수 있는 참으로도 아름답고 귀한 시간으로 여겨질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생각하는 것 조차 싫은, 무섭기만 한 노화의 시작인 것이다. 지금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가까운 마음이다. 멋진 어른이 될 거라 예상했던 시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무의미하게 보낼까 봐, 기억에 남지 않을까 봐, 되돌아봤을 때 아무것도 남겨진 것이 없는 허무하고 텅 빈 여정일까 봐, 마음 졸이게 되다 보니 어느새 두려움이 나의 시간을 지배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이 무섭기만 한 시기를 기록에 남기려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록일 수도 있고, 멋진 어른이가 되기 위해 실험해보는 일에 대한 기록일 수도 있고, 아주 가끔 기적처럼 찾아오는 초특급 집중력을 발휘하여 멋진 글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미루지 않고 시작했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30
이름하여 '프로젝트30(부제: 서어른 되는 길, 그 어설프고 찌질한 날들의 기록)'. 거창하고도 모호한 제목이 제법 어른스럽고도 코스모폴리탄하여 마음에 든다. 어떻게 채워나갈지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나의 20대의 마무리처럼 말이다.
2016년 3월 7일에 시작한 글을 3월의 마지막 날에 마무리하는,
아직은 스-물-아-홉-어-른-이,
Noelle
반가워요, 브런치!
손님으로 들락날락한 단골 식당의 사장님... 보다는 아르바이트생이 된 것 같은 느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