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새소리가 들렸고 집 밖으로 나가서 조금만 걸으면 넓은 공원에 잔디가 펼쳐져있었다. 도보 5분 내에 아이가 놀 수 있는 놀이터가 2개 있고 거기서 10분씩 걸어가면 하나씩 더 나왔다. 거의 매일 집 밖에 나와 집 근처 공원에 나와 놀았다. 차가 생긴 후론 도장깨기 마냥 공원들을 골라 다녔다. 하지만 곧 시들해졌다. 다들 똑같은 잔디에 비슷한 놀이기구였다. 아기나 나나 사람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내가 살던 지역 도서관에서는 ‘Ryde Rockers Rhyme Time'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0세에서 2세 아기들을 대상으로 30분 정도 같이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배우고 책도 읽는다. 따로 등록이 필요하지 않아 잠깐 여행 온 사람들도 참석할 수 있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바로 옆에 아기들을 위한 공간으로 간다. 빈 공간에서 말 장난감도 타고 책이랑 같이 뒹굴고 노는 곳이다. 그곳에서 아기들을 보면서 엄마들 사이에선 자연스럽게 몇 마디가 오간다. 몇 개월이냐로 대화를 시작해 몇 마디 주고받으면 내 짧은 영어는 금세 동나지만 이마저도 귀했다.
한국에 문화센터가 있다면 호주에는 플레이 그룹이 있다. 기기 시작한 아기들부터 뛰어다니는 아기들까지 모여서 노는 모임이다. 학교나 기관에서 운영하는 플레이 그룹도 많지만 엄마들끼리 모여서 운영하는 곳도 있다. 프로그램은 대체로 비슷한데 넓은 공간에 장난감 매트 등을 펼쳐놓고 놀다가 모닝티 시간을 갖고 모여서 책을 읽거나 노래를 부르고 끝난다. 모닝티 시간에는 집에서 과일을 하나씩 가져와서 나눠먹는다. 소요 시간은 대게 두세 시간 정도다.
나는 귀한 인연의 소개로 지역 이민자들의 정착을 도와주는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플레이 그룹에 다닐 수 있었다. 특히 이 플레이 그룹의 프로그램이 매우 알찼는데 매주 전문가를 모셔서 이야기를 나눴다. 발달 전문가가 아기 발달에 대해 얘기해주시고, 교육 전문가가 아기들 교육기관에서 대해서 설명해주고, 호주 전통 악기 연주자와 같이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심지어 무료. 무엇보다 한국인 선생님이 이제 막 호주 생활을 시작한 내 마음을 세심하게 돌봐주셔서 진짜 큰 위안을 얻었다.
플레이 그룹에 대해서 알게 된 후 인터넷에 찾아보니 생각보다 정말 많은 플레이 그룹이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열리는 모임, 야외 공원에서 열리는 모임, 노래와 춤을 집중적으로 하는 모임, 대학 보육교사 실습생들이 하는 모임, 각 나라 사람들이 주최하는 모임 등등. 우리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유료 모임 한 곳과 위에서 설명한 모임, 그리고 토요일 오전에 아빠들 모임 이렇게 세 곳을 정기적으로 다녔고, 그 외에는 무료인 곳 중에서 요일 시간이 맞는 모임에 틈틈이 참여했다.
특히 무료 모임에는 손자 손녀들을 돌보는 중국인 어르신들을 꽤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이분들 중에 영어를 정말 한마디도 못하시는 분들도 많다. 영어를 못하셔도 문제없다. 어려울 것도 없다. 못하시는 대로 눈치껏 참여하고 가실 수 있다. 호주는 그런 곳이었다.
한 곳 더 소개하자면 남편이 다녔던 컬리지의 보육교사들이 실습을 위해 운영하는 플레이 그룹은 엄마들의 낙원이었다. 플레이 그룹은 보통 영리를 목적으로 하거나 보육하는 곳이 아니다 보니 엄마들이 자기 아이들을 책임지고 케어해야 한다. 그런데 이곳은 차일드 케어 학과 실습을 위해 운영을 하는 곳이다 보니 실습생들이 적극적으로 아기들이랑 놀아주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점수로 매겨지니까 오히려 나보다 더 잘 돌보아주었다. 몇 번 가보니 나중엔 가자마자 엄마들은 차 한잔 마시며 수다 떨면서 눈으로만 아기를 쫓았다. 잘 노는 아기를 보며 따뜻한 차 한잔이라니, 최고의 힐링이었다.
주의할 점이 있다. 아이 사진을 찍을 때 다른 아이가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땐 다른 엄마들에게 양해를 먼저 구하는 것이 좋다. 아예 모임 전에 사진에 관해 주의점을 서명으로 받는 곳도 있었다. 막상 찍어도 되냐고 물었을 때 어느 누구도 찍지 말라고 한 사람은 없었으니 겁먹을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