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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my Feb 21. 2020

수더분한 외국인 엄마 (1/2)

내가 느낀 호주의 키즈 프랜들리 환경


호주에서 난 수더분한 엄마였다. 팍팍한 유학생활이 날 그래 보이는 엄마로 만든 것도 있다. 중고로 구색만 겨우 맞춘 아기 공간, 마트에서 세일할 때 사서 입힌 옷들, 겨울엔 조금 춥게 여름엔 조금 덥게 그냥 그랬다.


몇 번의 감기를 거쳐보니 튼튼한 아기라 가벼운 감기 정도는 이겨내더라. 몇 번 병원에 가보니 크게 처방받는 것도 없었기도 하다. 열이 오르면 파나돌을 먹였고 열이 안 떨어지면 뉴로펜을 교차로 먹였다. 병원에 안 간 건 아니지만 꼭 찾아간 건 아니다. 아기 컨디션은 콧물 기침 정도에는 끄떡없었다. 콧물이 나면 흘리게 두었다. 자주 닦아주지도 않았다.

그다지 깔끔한 엄마도 아니다. 쓸고 닦는 청소는 이삼일에 한 번씩. 장난감은 온 날 빨거나 깨끗하게 닦아준 이후론 그냥 눈에 띄는 더러움만 쓱 닦아준 게 전부다. 옷도 많이 젖지 않으면 하루 정도는 그냥 입혔다. 야외가 아닌 이상 떨어진 건 주워 먹였고, 지저분한 물에서 장난치는 것도 크게 제재하지 않았다.


아기에게 아끼지 않았던 건 낮동안의 나의 체력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먹이고 간식 챙겨서 밖에 나갔고, 점심때 집으로 와서 밥 먹이고 낮잠 재우고 일어나면 간단히 간식 먹여서 또 밖으로 나갔다. 일이 주에 한 번은 점심 도시락까지 챙겨서 멀리 나갔다. 가방 메고 유모차 끌고선 트레인 타고 버스 타고 여기저기 다녔다.

매주 한 번씩 Ryde District Mums라는 뉴스레터를 받아보았는데, 지역 행사 정보부터 아이와 갈만한 곳, 아기 먹일 음식 방법 등 유용한 정보가 많았다. 구글링으로 Top 25 Ryde Playgrounds 기사를 찾아서 도장깨기 마냥 시간 날 때마다 방문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많이 간 곳은 집에서 5분 거리 공원의 놀이터였다.


한 번씩 그루폰에서 입장료 할인쿠폰이 올라오면 주말에 가곤 했다. 특히 남편이 동물들을 좋아해서 동물원에 자주 갔다. 아쿠아리움도 좋았고, 실내 수영장도 종종 갔다. 올림픽 파크에 있던 수영장에는 아이를 위한 놀이시설이 꽤 많아 하루 종일 재미있게 보냈다.


호주가 워낙 아기와 부모를 위한 시설이 잘되어있어서 겁 없이 다닌 것도 있을 것이다. 내가 갔던 모든 곳에 기저귀 가는 공간이 있었고 내가 갔던 모든 식당에 아기의자가 있었다. 트레인을 탈 땐 먼저 나서서 유모차 앞을 들어줄까 물어봐주고 버스에도 유모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건물에 들어갈 땐 먼저 나서서 문을 열어주었다.

호주에서의 짧지만 길었던 일 년이 흐르고 한국에 오니 난 세상 특이하고 까다로운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난 한국 대다수의 엄마들과 우선순위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더 이상 무던한 엄마는 아니게 되었다.



6개월 아기와 떠난 우리 가족 호주 일 년 살기 이야기


프롤로그

Part1. 준비단계

- 마냥 쉽지는 않았다.

- 그리고 나머지 다소 쉬웠던 것들

Part2. 호주 생활

- 천국도 겨울은 혹독했다

- 세틀인 쇼핑 정보

- 외국인도 여행객도 모두 웰컴

- 수더분한 외국인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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