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드니에 와서 느낀 건 생각보다 한국 가게들이 많았다는 것이었고, 좀 더 생활하면서 깨달은 건 영어를 못해도 살 수 있다는 말이 이거였구나 였다. 동생이 사는 동네는 한국인이 많이 모여사는 동네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점점 그곳까지 한인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었다. 동생이 지역번호가 02로 시작해서 서울시, 시드니'구'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진짜 이태원에 외국인 많은 것만큼이나 한국사람이 많은 동네였다. 영어공부만을 위해 왔다면 많이 아쉬웠을 환경이었지만 아기를 데려온 우리로선 너무나 좋았다. 호주 자연환경에 한국 생활권이라니!
가장 좋았던 건 가까운 곳에 한인병원이 많다는 것이었다. 초보 부모에게 아기 아플 때만큼 두려운 일이 또 있을까. 물론 당일 예약이 힘든 경우는 많았지만 보통 다음날엔 예약이 가능했고, 급할 땐 예약 없이 가서 기다리면 2시간 이내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예약을 하고 가도 기본 30분에 1시간까지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병원 대기하는 모든 곳에 아기들을 위한 장난감이 있었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한번 진료받을 때마다 50~60불 정도 진료비가 나왔고 매번 보험에서 50% 이상 환급되었다.
아기들은 맞아야 할 예방접종도 많고 나라마다 다 달라 중요한데 이것도 한인병원에서 충분히 설명해주셨다. 우린 한국에서 아기가 6개월까지 맞은 리스트를 보건소에서 영문으로 뽑아서 호주에 갔다. 병원에 이 리스트를 보여주니 호주 필수 예방접종과 비교해주셨다. 추가로 맞춰야 하는 건 없었고 12개월, 18개월 예방접종만 있었다.
다만 한인병원에서 예방접종을 맞을 경우 비싼 진료비를 내야 하는데 내가 사는 지역에 보건소처럼 매우 저렴하게 예방접종을 맞을 수 있는 곳을 알아냈다. 전부 영어로 진행돼서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영어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온다며 매우 쉬운 영어와 직관적인 바디랭귀지를 사용해주셔서 크게 어려움 없이 끝낼 수 있었다. 이때에도 한국에서 떼온 접종 리스트를 가져갔더니 한번 더 체크해주셨다.
예방접종 외에 무료로 아기 건강 정보나 육아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있다. 무료인 데다 횟수 제한도 없고 심지어 필요하면 통역 서비스까지 제공해준다! 통역 서비스는 최대 한 달 전에 미리 예약하는 게 좋다. 우리는 두 번 이용했는데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되고 아기 키, 몸무게, 머리둘레 같은 발달상황을 체크하고, 아기 먹이고, 재우는 육아 정보도 조언해주고, 한국인 육아 모임까지도 알려주었다. 생활 패턴을 일정하게 해야 아기가 다음 일정을 예측할 수 있어 편안함을 느낀다, 돌 이후에 밤에 분유 먹이는 것은 치아에 매우 좋지 않으니 당장 멈춰라, 간식은 간단하게 등등 초보 엄마에게는 너무나 큰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었고 지금까지도 중요하게 지키고 있는 것들도 있다. 글쎄,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는데 익숙한 한국 엄마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들일 수도 있지만 의사와 상담하면서 그 많은 정보들 중에서 내 방법을 정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호주에서 병원에 가면 '블루북'이 있냐고 물어보던데 한국의 아기 수첩 같은 거였다. 그런데 아기 출생 정보와 예방접종 스케줄 정도만 간단하게 적혀있는 한국과 달리 블루북에는 육아 정보가 자세하게 나와있었다. 구버전이긴 하지만 한국어로 된 블루북도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다.